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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DA Jan 06. 2023

할아버지,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땅콩이는 아프지 않대요

아이의 뇌파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아침,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 언니, 내가 밤마다 할아버지한테 연락드렸어! 우리 아기 잘 지켜달라고. 그래서 땅콩이 괜찮을 거야!


고구마를 먹고 있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안 그래도 고구마 때문에 목이 메는데 이게 뭐람. 타이밍도 나이스지 정말. 위로차 하는 말이었겠지만 엄마의 촉은 정확하다는 말을 굳게 믿고 싶었다. 


뇌파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남편과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를 데리고 남편 친구네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가까운 아쿠아리움에 가서 물고기를 보고 오고, 산지에서 딸기를 사러 간다며 국도를 한 시간을 달리기도 했다. 


아쿠아리움에 가니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나무가 있어 소원을 적었다. 우리 아이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라는 수조가 있어 무려 오백 원짜리를 던졌다. 우리 아이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 엄마도 자꾸 생각났다. 내가 아팠을 때마다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지금 나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겠구나.


그저 새해니까 우리 가족 추억을 쌓자는 기분으로 한껏 웃고 떠들었지만 돌아보니 마음은 쉼없이 불안했다. 


그리고 대망의 진료날, 교수님은 우리 아이의 뇌파 영상을 유심히 보고 계셨다. 혹시나 우리 아이의 뇌파에 문제가 있어 교수님께서 어려운 용어를 쓰실까 봐 녹음기를 켤까 고민하던 찰나, 교수님은 운을 띄우셨다.


- 요새 아이가 어떤가요?

- 그 뒤로 경련 양상은 없는 것 같아요.

- 그렇죠? 뇌파도 특이사항 없이 정상이네요.


감사합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편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지만 같이 울게 될까 모르는 척했다. 1분 만에 진료는 끝났고 우리 아이에게는 아무런 이상 소견이 없었다.


나는 진료실을 나와 아이에게 말했다. 


- 고마워 아가야, 건강해줘서 고마워.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


병원에 가기 전날, 아이와 함께 작은 삼촌의 생일 기념 가족모임에 다녀왔었다. 삼촌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주시는 거라며 할아버지 지갑에서 오만원권을 꺼내어 아이에게 주셨다. 그때는 그 용돈이 무슨 의미인지 당장 알아채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동생이 할아버지께 매일 밤 연락을 드려서 할아버지께서 땅콩이 진료비를 주신게 분명하다. 우리 손녀,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누구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할아버지께서 주신 용돈을 병원 수납처에 지불했다. 


- 이제 다신 대학병원에 안 올게요, 할아버지. 우리 아이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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