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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Aug 22. 2023

68세 석원 씨, 수영장에 가다 (2)

한낮에 곯아떨어진 수영 강습 첫 날

아빠 수영 강습 첫날. 자식 입학식 보내는 부모 마음이었다. 강습 한 시간 전에 전화를 걸어 잘 다녀오시라 인사를 했다. 다녀와서도 어땠나 전화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빠를 너무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위해,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대신 오후에 엄마랑 다른 일로 통화하다가 "아빠는 뭐 해?" 하고 물으니 "주무셔." 하신다. 하하! 물놀이는 역시 피곤한 일이다. 난 아빠가 심심해서 다리 꼬고 소파에 파묻힌 채 티비 보거나 스도쿠 하는 게 싫다. 그러고 계실 때 내가 전화하면 "그냥 있지 뭐," 하는 말투가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많은 아빠가 어떤 것이건 몰두하며 활력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수영 다녀와서 곯아떨어진 아빠 소식이 반가웠다. 따분해서 든 잠이 아니라 밖에서 당신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하고 오신 것 같아서.




다음 날 아빠에게 수영 어떠냐고 여쭤 봤다. 아빠는 다닐 만하다고 하는데, 자유수영을 한다고 했다. 나는 아쿠아로빅 강습을 등록해 드렸는데 왜 자유수영 레인에 갔을까. 아쿠아로빅은 남자들이 할 게 아니라고,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인지 그 수영장은 엄격하게 제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빠 설명으로 짐작해 보자면, 25m 길이 말고, 수심이 낮은 레인에 가서 이것저것 연습하시는 듯하다.


뭐 어쨌거나 내가 바랐던, 아빠가 활력 있는 움직임이 생겼으니 다행이다. 나는 입문~초급기는 무조건 전문가지도를 받아야 실력이 쑥쑥 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는 강습도 강사가 있기는 해도 결국 스스로 연습 아니냐며, 자유수영 가서 옆사람들에게 알음알음 배우면 된다고 했다. 어차피 7~9월은 수영 인기 시즌이라 신규 반이 개설되지도 않았으니 선택지도 없었다.


언니의 여섯 살 아들(나의 조카, 아빠의 손자)이 마침 수영을 배운다. 매주 손자를 봐주시니 그 아이에게 배우면 되겠다고 하는데, 나는 탐탁지 않은 마음을 누르고 반발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빠의 삶은 아빠의 것이다! 나는 수영복을 사 주었고 첫 발을 딛도록 밑작업을 해 드렸다. 이것으로 내 소임은 끝이고, 아빠가 한 시간을 걷고 오건 둥둥 떠 있다 오건 다치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나는 취미부자, 자기 계발러, 안 해본 것이 없는 여자,라고 종종 불린다. 어릴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컴퓨터게임만 하고 텔레비전만 본 세월에 한이 맺혀 끊임없이 빈 서랍을 채워 넣는 듯하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비교하며 경험의 결핍을 실감하니 어릴 때 나를 아무것도 안 시킨 엄마아빠가 미웠지만, 이제는 그 결핍을 메꾸고도 남을 만큼 여러 시도를 쌓았으니 오히려 결핍이 양분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아가 엄마, 아빠에게도 평생 여유가 없어 생각도 안 했을 경험들을 선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아빠 굽은 허리가 수영장에서 단박에 예쁜 만곡으로 변하진 않겠지만 물에서 자유롭고 시원한 느낌, 숨이 차지만 꽤 기분 좋은 활력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감사하다. 내 욕심에 아빠를 몰아붙이는 것일까 걱정했지만, 집과 더 가까운 수영장 여기저기를 물색하고 있는 아빠를 보니 안심해도 되겠다.


다음 달은 집 가까운 곳에서 자유수영을 다니겠다고 하신다. 아까 듣기로 10월은 신규 반이 생긴다고 하니, 당신 혼자 해 보시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10월은 신규 반을 등록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기대 시나리오. 아빠 앞에서 티 내진 않았지만 아빠 허리가 10도만 펴지기를, 아빠 허리가 1인치만 줄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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