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원시 자연 샹그릴라에서 만난 그 남자

26. 비 오는 샹그릴라, 따뜻한 한 끼, 마지막 인사

by 리우화

안녕하세요, 리우화입니다.


날씨가 하루하루 더워지는 것 같아요.

오늘은 괜찮겠지, 싶은 마음에 창문을 열면

훅- 끼쳐오는 열기에 슬며시 창을 닫습니다.


그래도 여름은 여행의 계절.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한창 어디 갈까-

고민 중이신 작가님들도 있으시겠죠.


저는 생애 첫 여행지가 바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떠난 '베이징'이랍니다.

금빛으로 물든 자금성, 한 없이 펼쳐진 만리장성.


어쩌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별나게 중화권 문화를 사랑하는 배경엔

그 어린 날, 중국 땅을 밟던 강렬한 기억 덕분이겠죠.


올해까지 중국 입국 무비자 정책(30일)이 시행됩니다.

아직 중국을 여행해보지 않으셨다면

이번 여름, 커다란 여행 가방 안에

중국이란 목적지를 살포시 넣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 )


오늘은, 중국 윈난 샹그릴라 마지막 편입니다.




1. 샹그릴라, 운명처럼 마주친 인연


2025년 4월, 늦은 오후의 중국 윈난 리장역. 내 몸 만한 배낭을 메고 낑낑대며 걷고 있는데, 한 젊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와, 배낭 진짜 크다. 너도 백패킹하러 왔어?"


28살의 위천, 그 와의 첫 만남이었다. 자신도 제 몸만 한 배낭을 둘러메고 날 흥미롭게 쳐다보던 그.


"아니, 나는 중국 전역을 여행 중이야. 한국인이고."

"오, 나 한국인 처음 봐! 전혀 몰랐어. 너 정말 조그만데 용감하다."


샹그릴라행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우린 스몰토크를 하면서 샹그릴라에서 묵는 숙소가 서로 가깝단 걸 알게 됐다. 우린 위챗(wechat) 친구를 맺고 '언젠가 기회 되면 만나자'는 약속을 남긴 채 샹그릴라역에서 헤어졌다.



위천과 분명 인연이었을까. 이틀 뒤 오전, 샹그릴라 고전(古镇, 구시가지)에서 그를 정말 우연히 다시 만났다. 한 손엔 감자튀김, 다른 한 손엔 우유차를 들고 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비슷한 나이에 이유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던 그에게 나는 선뜻 다가가 물었다.


"아침부터 감자튀김이라, 대단하네. 오늘 뭐 해?"


"뭐, 딱히 일정은 없어. 넌 오늘 뭐 하게?"


"푸다춰국가공원(普达措国家公园)에 갈 거야."


"나도 거기 가본 적 없는데. 좋아, 같이 가자! 나 가방만 챙겨 올게."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쏜살같이 숙소로 달려가던 위천. 사실 혼자 여행하길 좋아하는 내 대답은 'NO'였지만, 이미 가방을 들쳐 매고 내 앞에서 빵긋 웃고 있는 그를 어쩌랴. 한국에선 그렇게 없던 인연복을, 중국에서라도 한껏 누려봐도 되겠지.




2. 중국 푸다춰 국립공원에서 소원을 쌓다



중국 윈난 샹그릴라에 위치한 푸다춰국가공원(普达措国家公园)은 고원지푸다춰국가공원(普达措国家公园)대의 원시 생태계와 티베트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자연보호구역입니다. 중국 최초의 국가공원 시스템 적용 지역이자 세계 자연보호 목록에 포함된 희귀 생물들(운남소나무, 고산야크, 검독수리 등)이 다수 서식하고 있습니다. 공원 내 차량 운행은 금지되며 전기 셔틀버스로만 이동 가능합니다. 데크 산책로, 나무다리, 전망대 등이 잘 정비돼 있어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푸다춰국립공원은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세월이 서려있다. 고산 초원과 습지, 원시 삼림이 하나의 자연으로 어울려져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하다. 수천 년을 한 자리에 머문 호수는 바람을 따라 졸졸 허밍을 흘리고, 낯선 얼굴의 희귀 잎사귀들은 바람결에 살랑인다.



동물원에 갇히지 않은 말과 야크, 산양들은 유유자적하게 들판을 걷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들강아지처럼 손에 코를 대고 킁킁댄다. 다리에 족쇄가 걸리지 않은 동물들의 자유로운 영혼은 맑은 눈에 담겨 있다.



아쉬운 건 여행 가이드가 각 장소의 의미를 설명해 줬지만, 말 속도가 빨라 도통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위천은 그런 나를 위해 번역기 앱으로 일일이 설명을 번역해 줬다. 이를 테면 윈난성은 과거 바다였고 지질변천으로 상전벽해를 이뤘다는 둥의 이야기를.


"중국 남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 내 취미도 바로 지질학 책 읽기야."


"그래서 네가 아는 지식이 많구나."


"그리고 넌 우리 중국에 온 손님이잖아. 좋은 기억만 갖고 떠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푸다춰 공원을 거닐며 바람에 흩날리는 오색의 기도 깃발(룽타)도 마주했다. 파란 깃발은 하늘처럼 넓은 마음을, 흰 깃발은 공기처럼 투명한 진심을, 붉은 깃발은 불처럼 타오르는 열정을, 초록 깃발은 물처럼 흐르는 연민을, 노란 깃발은 땅처럼 단단한 인내를 말한다.



우리는 티베트 불교문화에서 소원탑을 상징하는 돌탑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위천이 알려준 대로 왼손으로 나무 기둥에 각인된 불교 문양을 쓸고, 같은 손으로 행운의 돌을 주워 돌탑에 올렸다. 수많은 샹그릴라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소원을 담아 쌓아 올린 돌탑은 매해 하늘과 가까워지고 있다.





3. 비 내리는 날의 마지막 식사



거센 비가 내리던 샹그릴라의 마지막날 저녁. 위천은 샹그릴라에서 30년 전통 식당을 안다며 나를 안내했다. 두꺼운 야크 고기와 공심채 볶음, 단출하지만 완벽한 한 끼였다. 식당의 어린 여직원은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며 다음에 또 오라고 나를 꼭 껴안았다.


"우화야, 그간 혼자 여행하느라 맛있는 거 많이 못 먹었지?"


"아무래도 그렇지. 나 중국 음식 진짜 좋아하는데 아쉬울 때도 많았어."


"좋아. 그럼 오늘 나랑 제대로 먹어보자. 윈난에서 먹고 싶었던 거 다 말해! 이 위천이 다 쏠 테니까. 기념품 사는 것도 도와줄게."



위천은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야크우유로 만든 요거트, 윈난에서만 맛볼 수 있는 희귀 포도, 전통 과자 등을 한 아름 사서 내 품에 안겨줬다. 돈을 많이 쓰는 듯해 아무리 말려도, 그는 "외지인을 극진히 대접하는 게 우리 문화야"라며 개의치 않아 했다.


위천은 수더분하고 장난꾸러기 같으면서도 몸에 예의가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기차역에서 그가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우린 영원히 낯선 사이였을 것이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친해졌어. 특히 널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야. 중국 지질학을 네가 아니었다면 조금도 몰랐을 거니까. 고마워, 위천."


"중국인들은 외국인에게 르어칭(热情, 따뜻하다)해. 우리나라에 온 손님이니 세심하게 모셔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리고 넌, 내 인생 첫 외국인 친구야. 오늘 하루는 오래도록 내게도 좋은 꿈처럼 기억될 거야. 고마워, 우화."



샹그릴라 고전 골목에 위치한 작은 노점상. 우린 야식으로 야생화 볶음을 먹으며 토독토독 내리는 빗방울을 구경했다. 그리고 자정이 넘을 때까지 각국 청년들의 고민을 나눴다. 밤바람은 살랑, 투명한 하늘에 별은 반짝. 중국 윈난에서의 여정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4. 잘 있어, 위천. 고마웠어, 샹그릴라.


[어디야? 나 지금 너희 숙소 1층이야.]



다음날 오전 7시, 숙소 짐을 싸서 떠날 준비를 하는데 위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놀라서 내려가니 위천이 방긋 웃으며 비닐봉지를 올려 보인다. 막 구운 듯 쫄깃한 얼콰이(饵块, 쌀로 만든 윈난식 빵)이 담겨 있다. 마지막 날까지 완벽한 그의 '에스코트'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르어칭'은 아침 식사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 배낭을 대신 메고 샹그릴라역까지 배웅해 줬다. 내게 한 없이 다정했으며 자국에서 좋은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중국인 위천. 그 덕분에 나는 샹그릴라를 편하게 사랑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은, 대부분 마지막이란 걸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애틋하다. 수없이 많은 이별을 지나왔어도, 그 마지막 눈 맞춤 앞에서는 어김없이 울고 만다.


중국 쓰촨성 청두로 향하는 기차가 정차했다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역을 울렸다. 언젠가 또 만나자는 말이 허공을 떠돌지 않도록, 나는 한 자 한 자 힘을 주며 말했다.


"谢谢你,伟辰。好好照顾自己"

고마웠어, 위천. 너를 잘 돌봐."


위천도 어느새 벌게진 눈가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流化,慢走。谢谢你"

우화야, 잘 가. 고마웠어."




리우화의 여행지도



[푸다춰국가공원(普达措国家公园)]


푸다춰국가공원은 샹그릴라 고전 중심가에서 빵차(공용 버스)를 탈 수 있는 왕복 티켓 및 입장권(약 250위안)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고산지대이므로 산소통을 챙겨 고산병에 대비해야 합니다. 여름이라도 쌀쌀한 날씨로 긴팔 외투는 필수이며 우기(6~9월)엔 도보 이동이 많아 방문을 비추천합니다.



고원지대라 빵빵해진 과자와 거대한 야크 등 한국의 풍경과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디고 싶다면, 꼭 샹그릴라의 푸다춰국립공원을 찾아주세요.





[야크우유 요거트(牦牛酸奶)]


중국 윈난 샹그릴라와 같은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야크는 고단백, 고지방의 우유를 생산합니다. 이들의 우유를 발효해 만든 요거트는 무설탕, 농도가 진한 수제형이 많고 기름이 분리된 층이 보입니다. 수제로 만든 요거트는 상당히 신 편이며 보통 플레인으로 따뜻하게 마시거나 꿀, 설탕 등을 넣습니다.





[민족복식체험(传统妆造约拍)]


중국에는 각 지역의 소수민족 복장을 입고 유명 관광지에서 전문 사진가와 촬영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중국은 각 지역마다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이 다르고 그들이 갖고 있는 의복 문화도 상이합니다.



그래서 샤오홍슈와 도우인 등 사진 위주 SNS를 이용하는 중국 여성들 사이에선 민족风写真 (민족 스타일 화보) 찍는 게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베이징이나 상해 같은 대도시도 있긴 하지만 주로 윈난, 구이저우, 광시 같은 서남부 지역에서 활성화돼 있어요.



사진 스튜디오에서 헤어, 화장, 의복까지 제공해 주며 가격은 보통 300~600위안(약 6~16만 원) 가량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유명해지며 '중국 여행 필수 코스'로 꼽히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촬영 정보 및 후기는 블로그에 걸어놨습니다.


keyword
이전 25화침묵하는 중국 MZ, 검열과 빈곤 그늘 아래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