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남기고, 마음은 놓친 사회에 대하여
며칠 전, 강남 대치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한 청년의 유튜브 고백을 들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자살을 시도했고, 매일 울었다"고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치동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자랐지만, 그 속에서 느꼈던 불안과 좌절, 외로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대치동 안에서도 또 위계가 있고, 나는 상대적으로 가난했기에 늘 박탈감을 느꼈어요. 부모님의 응원과 지원조차 저에겐 압박이었어요.” 그녀의 말은 단지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많은 아이들의 내면에서 울리고 있는 절규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고통은 과연 그녀만의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교육이 만들어낸 집단적 병리현상의 결과인가?
최근 정신과 진료를 예약하려면 몇 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더욱 충격적인 건, 그 대기열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소위 ‘잘하는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부족한 자신’을 견디지 못해 무너져내리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부모들의 대응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우울하거나 불안해서가 아니라,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에 정신과를 찾는다. 약 처방도 집중력 향상을 위한 도구로 인식된다. ADHD 약물은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하고, 심리상담은 자녀의 멘탈을 조련하는 수단이 된다.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경쟁에서 다시 올라가기 위한 ‘전략’으로 병원을 찾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교육열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의 불안, 조급함, 통제욕,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신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결과다. 오늘날 많은 부모는 이렇게 믿는다.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끝이다.” “세상은 너무 위험하니, 내가 끝까지 아이를 지켜야 한다.” “성적이 곧 능력이며, 학업 성취는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녀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부모는 아이가 넘어지기 전에 울타리를 치고,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기저귀 찬 고등학생’이라는 말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심리적으로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성장을 막힌 채 살아가는 십대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국 교육은 더 이상 ‘삶을 위한 배움’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늘날의 학교는 공동체의 의미도, 인격의 성장도, 호기심의 확장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학교는 이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녀야 하는 곳’, 공부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되었다.
학생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왜 달리는지조차 모른 채 앞으로 내몰린다. 교육이란 이름의 경쟁 속에서 우정은 사라지고, 협력은 금지되며, 함께 성장하는 경험은 추억이 아니라 사치가 되었다. 이 경쟁은 결국 모두에게 패배감을 안긴다. 한두 명만이 웃고, 나머지는 체념하거나 무너진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만든 교육 시스템의 민낯이다.
우리는 교육 문제를 교육 내부의 개혁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교육은 사회 구조의 거울이다. 부모가 불안한 이유는 결국 사회 전체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은 여전하고, 직업 시장은 좁아지고,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내 아이만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자리잡는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부모는 사교육에 몰리고, 이는 다시 교육 격차를 벌리며, 더 큰 경쟁을 낳는다. 이 악순환은 대학 입시 구조와 노동시장 개혁 없이는 멈출 수 없다. 따라서 진짜 해법은 교실 안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해답은 복잡하지 않다.
첫째, 대학 서열 완화와 입시 구조 개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대학만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둘째, 학업이 아닌 다양한 경로에서 자아실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고등학생도 일찍부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직업 경험 기반 교육과 진로 설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부모 대상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바꾸기 전에 부모가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심리 상담과 교육을 병행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마음 건강이다. 예방 중심의 심리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상담교사 확충, 학교 내 정기 심리검사, 심리회복 시간제 도입 등 구체적인 제도가 병행돼야 한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공부도, 인간관계도, 성장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유튜브 속 대치동 키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엄마, 불안해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그러나 정작 그녀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 그 말을 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이들이 괜찮다고 말하게 만들지 말자. 부모가 먼저 괜찮아져야 한다.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어야, 아이들도 스스로를 괜찮다고 믿을 수 있다.
교육의 위기는 단순한 교육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사회 전체가 병들고 있다는 신호다. 공부는 했지만, 삶은 배우지 못한 아이들. 성공은 했지만, 행복하지 못한 청년들. 이들이 결국 또 다른 아이들을 병들게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만 변화의 책임을 미루지 말자. 지금 어른이, 부모가, 사회가 먼저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극장효과'에 갇혀 있다. 누군가 먼저 일어서니, 뒤따라 모두가 일어서고, 결국 모두가 피곤해졌다. 이제는 누군가 먼저 자리에 앉아야 한다. 앞사람을 탓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먼저 박수를 쳐주자. ‘공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언젠가 큰 물결이 될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성적이 아니라, 사람이 성장하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사람’을 놓치고, ‘성과’만 바라보기 시작했는가? 이제는 되돌아볼 때다. 경쟁이 아니라 공존을, 조급함이 아니라 기다림을, 통제가 아니라 신뢰를 선택하자.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 남겨야 할 가장 아름다운 교육 개혁이다.
2025. 7. 27.(일)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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