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만든 ‘완벽한 엄마’ 판타지, 우리 교육을 병들게 하다.
9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픽미(Pick Me)’ 무대는 한동안 전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수많은 10대 소녀들이 무대 위에서 ‘선택받기’를 간절히 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영상을 보면 묘한 불편함이 밀려온다. 인기 순위에 따라 무대 중앙과 주변이 갈리고, 조명이 닿는 아이와 그림자로 사라지는 아이가 나뉜다. 음악이 끝나갈수록 일부 참가자들은 얼굴조차 비추지 못한 채 무대 아래에서 그림자처럼 춤을 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재미있다’고 말했지만, 그 무대는 사실 인간을 철저히 순위와 경쟁으로 상품화한 장치였다. 누가 더 선택받느냐가 모든 가치를 결정했고, 꿈을 향한 아이들의 노력조차 순위에 따라 서열화됐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듯 소비했고, 이제 돌이켜보니 기이하고 서늘하다.
오늘날 TV 프로그램 ‘일타맘’을 보며 같은 감정을 느낀다. 이번엔 무대에 선 것이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다. 자녀를 명문대나 의대에 보낸 엄마들이 ‘최고의 엄마’, ‘일타강사 같은 엄마’로 불리며 마치 숨겨진 비법을 전수해줄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부모의 자격과 성공을 결정하는 척도로 포장된다. 교육은 인간을 키우는 일이지만, 여기서 교육은 다시 ‘픽미’식 경쟁의 무대가 되었다. 이번에도 시청률은 높고 대중은 열광하지만, 10년 뒤 우리의 시선은 과거 ‘픽미’를 보듯 차갑게 식어 있지 않을까?
이 프로그램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자극적이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야 좋은 부모다. 그 방법은 특별한 비법을 가진 ‘일타맘’이 알고 있다.” 방송은 자녀의 성적이 부족한 가정을 비추며 긴장감을 만들고, ‘일타맘’이 등장해 해결사처럼 고액학원, 특별 관리법을 제시한다. 심지어 자녀와의 소통법마저 “부드럽게 설득해 결국 부모가 원하는 공부를 시키는 기술”로 묘사된다.
이런 설정은 부모들에게 강한 압박을 준다. ‘나는 저런 전략도, 인맥도, 자원도 없으니 무능한 부모인가?’라는 불안이 번지고, ‘일타맘’이 제시하는 길만이 유일한 해법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교육은 단순한 공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고, 가정마다 환경과 여건이 다르며,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 역시 시간과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방송은 이런 복잡한 현실을 지워버린 채, 마치 ‘비법’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명문대 입시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허상을 판다.
결국 이 게임은 부모와 아이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취급되고, 부모는 끝없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더 많은 사교육, 더 강한 통제’로 치닫는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 구조적 한계 때문에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없다. 남는 것은 피로와 좌절뿐이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교육을 다루는 방식이다. 교육을 진지한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아닌, 자극적 볼거리로 바꾼다. ‘특별한 비법’, ‘전국민이 놀란 학습관리법’ 같은 자막은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기며, 교육을 또 하나의 오락거리로 전락시킨다. 교육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과정이지만, 화면 속 교육은 오직 ‘점수와 대학 브랜드’로만 환원된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믿음과 지지가 아닌, 프로젝트 관리자와 피관리자의 관계로 왜곡된다.
이런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회 전체가 ‘자녀 교육 = 입시 성패’라는 등식을 당연시한다.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실패로 여겨지고, 공부를 거부하거나 다른 꿈을 꾸는 아이는 ‘부모를 실망시키는 문제아’가 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지나친 통제를 할수록 아이의 자기효능감은 급격히 떨어지고, 청소년기 우울·불안 장애 발병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방송은 이런 부작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강력한 관리와 통제가 성공의 비법’이라는 메시지를 반복 송출한다.
10년 뒤 이 프로그램을 돌이켜보면, 과거 TV 속 성차별적 발언이나 폭력적 예능처럼 “어떻게 이런 것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내보냈을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일부 시민단체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재를 요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방송사들은 ‘시청률이 있으니 문제없다’는 논리로 자극적 콘텐츠를 쏟아내고, 우리는 무감각해진 채 소비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과 학부모, 학교 현장에 남는다.
방송은 늘 시청자의 숨은 욕망을 자극해 시청률을 만든다. 하지만 교육은 흥행 소재가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채워주는 ‘성과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다. 진정한 교육은 아이가 스스로 탐구할 자유를 가질 때 가능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다면, 그 어떤 명문대 합격증도 아이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더 높은 대학에 보낼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꾸릴 수 있도록 믿어줄까?’로 바꿔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길을 대신 걸어줄 수는 없다. 아이가 시행착오 속에서 삶을 배우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지지해주는 것이 진짜 ‘최고의 부모’다.
지금 우리가 가장 잃어버린 것은 교육에 대한 감수성이다. 자녀를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는 감수성, 성장과 행복을 점수보다 앞세우는 감수성이다. 방송사가 이를 무시한 채 자극적인 예능으로 교육을 소비한다면, 사회 전체가 아이들을 ‘성과를 내야 할 프로젝트’로 바라보는 왜곡을 강화한다.
교육은 사회의 미래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공공재다. 그런데 지금처럼 입시 경쟁을 극단화하고, ‘특별한 비법’이라는 허상을 팔아 불안을 조장하는 방송이 판을 치면, 우리는 스스로 다음 세대의 행복을 훼손하는 공범이 된다.
방송사와 제작진, 학부모와 시청자, 교육당국 모두가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예능이 아니다. 교육은 아이들의 삶이다. 지금의 시청률보다, 10년 뒤 우리 아이들이 기억할 부모와 사회의 얼굴이 더 중요하다.
2025. 8. 4.(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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