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생 시절 나의 잠들기 전 의식은 온 방을 돌아다니며 창문과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주택이었는데, 집주인 할머니의 제안으로 원래 우리 집으로 쓰던 공간뿐만 아니라 셋방까지 터 우리가 사용하고 있었다. 거실과 부엌을 빼고 네 개의 방 그리고 외부로 통하는 문이 세 개, 외부 창고로 이어진 문 하나 다락방의 문 하나 이렇게 있었다.
늘 밤이 되면 졸음이 잔뜩 묻은 눈으로 몇 차례나 온 방을 돌아다녔다. 일단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단단히 감갔는지 확인하고 모든 문을 괜히 흔들어 본다. 딸칵하고 잠그는 셋방의 문과 창고의 문은 문고리를 잡아 좌우로 돌리며 ‘철컥철컥’하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듣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방들을 오갈 때마다 다락방 문도 잘 잠겨있나 눈으로 한 번 스캔해 준다.
그때 당시 창문의 잠금장치는 지금과 달리 잠금봉을 구멍에 잘 맞춰 돌돌 돌리는 방식이라 꽉 잠금지 않으면 세게 흔들리는 힘에 의해 잠긴 창문이 풀리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은 손으로 부족한 힘을 다 끌어모아 잠금봉을 돌리고 돌려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음에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돌린 후 문과 마찬가지로 몇 차례 흔들어 본 후 만족스러운 정도일 때 그 행동을 멈추었다.
그렇게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점검 한 뒤 기진맥진한 채 풀썩 이부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다.
‘아빠방(서재) 창문을 확인했었나?‘
눈은 여전히 감은채 마음이 울렁인다.
‘분명 확인했었던 거 같은데 그냥 자자’
‘근데 만약에 내가 제대로 확인을 안 해서…’
느슨한 잠금장치를 가뿐하게 흔들어 풀고 들어오는 누군가가 우리 집의 물건을 훔쳐가고 우리 가족들을 위협하는 끔찍한 상상들이 나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장악한다.
결국 졸린 눈을 힘주어 뜨고 다시 일어난다.
아빠방으로 향했던 발걸음은 또다시 다른 방으로 향하고 그렇게 다시 점검이 시작된다.
무서운 상상이 옅어질 때까지 창문을 흔들어보고 잠긴 문고리를 돌려본 후에야 다시 잠자리에 든다.
엄마 아빠가 몇 번이나 확인했다고 해도 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여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엄마아빠의 만류에 누워서 자는 척을 하다 벌떡 일어나 다시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나를 보며 다들 두 손 두 발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나는 언제나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방범대 노릇을 했고 더 이상 여러 개의 방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벌렁 누우면 온 집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원룸에서도 여전히 이와 같은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도어록과 안전고리가 잘 잠겨 있는지, 창문이 잘 잠겨있는지 때때로 불안이 큰 날에는 방범창이 단단하게 붙어있는지 괜히 흔들어보는 수고도 마다치 않는다.
평수가 좁아져 그만큼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혼자 있는 날이 유독 낯설고 불안한 날은 몇 차례나 잠금장치들을 확인하고도 결국 잠에 들지 못해 불을 환하게 켜고 밤이 지나갈 때까지 잠들다 깨다를 반복한다.
피곤이 머리끝까지 차 올라 견딜 수 없는 날도 전혀 다를 바 없다.
피곤과 불안이 함께 찾아오는 날이면 아무리 확인을 해도 울렁거리는 마음을 종 잡을 수 없다. 그런 날이면 그 조그마한 집에 있는 창문과 문들이 그렇게 미울 수 없다. 잠깐의 분노가 그것들에게 향하다 결국 모든 비난의 화살은 나에게 돌아온다.
‘왜 이렇게 별나지? 왜 나만 유난일까?‘
몇 십 년 동안 품고 살았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의문을 곱씹어본다. 그렇게 또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또 침잠된다.
우울의 늪으로 빠지려는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사실 말이 번뜩이지 그렇게 반사와 같은 반응 속도는 아니다.)
‘이미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냐?’ 라는 생각으로 불안의 꼬리를 자른다. 꽤나 질긴 녀석이라 쉽지 않지만 나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니까. 이 불안이란 놈과 하루 이틀을 같이 한 게 아니니. 제법 다룰 줄도 알게 되었다.
불안이 나를 다 잡아먹기 전에 몸뚱이를 일으켜 문 앞에 선다.
현관의 문은 굳게 잠겨있고 안전고리까지 걸려있다.
“이것 봐 문 잠겄잖아.”
뒤를 돌아 창문으로 향한다. 창문을 손으로 당겨 본다. 마찬가지로 굳이 깨지 않는 이상 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렇지 창문도 잠갔어. 이제부터 나한테 생기는 마음은 다 허상이야. 난 할 만큼 했고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더 괴로울 거야. “
누군가 보면 웃긴 모양새지만 일종의 자기 암시이다.
기나 긴 시간 불안과 함께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다. 소리 내어 읊조리면 그 순간만큼이라도 불안이 조금 수그라드는 기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금방 속 편히 잠을 취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는 생각으로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다독여 본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밤도 문고리를 수십 번 확인하고 창문을 흔들어 볼 것이 뻔하다.그리고 아마 앞으로의 삶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 그렇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 나를 포기하지 말아야지.
여전히 깊은 자기혐오에 빠지는 날이면, 사소한 일에도 휘청거리는 내가 견디기 힘들 만큼 밉다.
그래도 조금은 유별난 나의 한 구석도 사랑할 수 있기를, 오늘도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