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맹랑한 불안에 잡아 먹힌 날
애인인 류와 영화 감상 동아리를 만들었다.
물론 부원은 단 둘이다.
매주 한 번씩 번갈아가며 영화를 골라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종종 짧은 감상문도 카카오톡으로 적어 공유한다.
이번에는 류가 고른 영화를 봤다.
주인공은 신기술이 적용된 장비를 이용하여 폭탄테러 현장 당시로 돌아가 범인을 찾아내는 영화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깊게 집중하여 보고 아주 재밌었다며 이야기도 잘하고 누웠더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갑자기 내일 출근길 지하철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들었다. 기차에 폭탄이 설치된 설정의 영화를 봤더니, 매일 익숙하게 타고 다니던 지하철에 그 걱정이 옮겨 붙은 것이다.
걱정은 걱정을 부르고 뜬금없이 내일 출근하는 류의 차에 누군가 폭탄을 심어두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결국 밀려오는 불안감을 류에게 말했다.
“내일 내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죽으면 어떻게? 그러고 내일 네가 탄 차에 폭탄이 있어서 갑자기 네가 죽으면 어떻게?”
류가 웃더니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저런 테러가 흔하지 않잖아. 그리고 굳이 왜 내 차에 폭탄을 설치하겠어? 그럴 이유가 없잖아 “
류의 웃음에 그리고 단정 짓는 말투에 고집이 생겼다.
“우리나라도 사제 폭탄 있잖아. 그리고 흔치 않은 거지 , 없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모르지 네가 어디서 어떻게 원한을 샀을 수도 있잖아!”
내가 말하고도 기가 막힌 소리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아니란 걸 알면서도 자꾸만 허무맹랑한 상상력이 나를 못 살게 군다. 더 이상 쓸데없는 감정에 압도되기 전에 생각을 멈추려 눈을 감고 안대를 썼다.
잠을 청해 보지만 자꾸만 기차가 폭발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반복 재생된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 슬퍼하는 그런 일련의 장면들.
그 모습 속 슬퍼하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멈추려는 상상은 종 잡을 수 없이 커지고, 내 걱정도 불안도 이해해 주는 하나 사람 없다는 마음에 서러운 눈물이 났다.
더 이상 걱정인지 불안인지 그저 서러움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나를 휩쓸었다
쓰고 있던 안대가 축축해졌다.
류가 어두운 방을 더듬거려 스탠드를 켰다.
류가 말 붙일 새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무서워”
불안과 서러움이 마구 섞인 감정들
우는 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어 더 눈물이 났다.
늘 이런 식이다.
생각지도 못한 것에 마음이 쓰여 공포에 벌벌 떤다.
보잘것없는 것들이 하염없이 커 보이는 순간,
그 불안과 함께 다가오는 자기혐오
‘멍청해. 어린애도 아니고.‘
‘이걸로 울다니 시간 낭비야, 같이 있는 사람도 곤란하게 만들잖아.’
순식간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내가 싫다.
멈출 새 없이 계속 빙빙 굴러가는 상상의 굴레가 너무나 버겁다.
가만히 있던 류가 다독인다.
“그래 너 말처럼 세상에 100%라는 건 없으니까 무서울 수도 있겠다. 무섭겠지만 다른 생각을 해 볼까?
우리 같이 춘천 놀러 가야지. 춘천 가고 싶다 했잖아. 놀러 가서 닭갈비 먹는 생각 해볼까?”
작년부터 노래를 부르던 춘천 여행으로 주의를 돌리려는 계획이었다.
“우리 춘천 가다가 차 사고 나면 어떻게?”
문득 아주 오래전 봤던 고속도로 판스프링 사고가 생각났다.
“아 그렇네. 음…”
잠깐의 침묵이 우리 사이에 흐른다.
야속한 시간은 12시에 가까워진다.
흘러가는 시간에 더더욱 초조해진다.
이런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에 잠에 들어야 한다는 걸 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을 정리하기가 어렵다.
하고 싶을수록 하기 어렵고 하기 싫을수록 너무나 쉽게 되어버린다.
세상은 이렇게 또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음…그러면 우리 집에서 문 딱 걸어 잠그고 집에 있는 재료로 요리해 먹는 상상은 어때? 우리 집은 인덕션이라 불날 일도 없잖아!”
꽤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것 마냥 스탠드 불에 비친 류의 눈이 반짝거렸다.
류는 내가 요리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걱정에 마음을 졸이는지 잘 모른다.
“음…”
입술을 맞닿은 채 소리를 내자 목구멍에서 진동이 일었다. 썩 마음이 드는 해결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세상 그 어느 곳 보다 일단 집 안전한 편일 테니까, 나름 납득이 가는 대안이다.
눈물 채 마르지도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집에서 맛있는 거 해 먹는 게 제일 안전하겠다. 맛있는 거 해 먹는 상상 해볼게.”
한 없이 몸집을 키우던 공포는 너무나 별 것 아닌 말로 날아가버렸다. 이런 과정도 또한 늘 있는 일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불안의 덩어리는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더 이상의 소동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한 얼굴로 류는 스탠드를 껐다.
“잘 자. 꿈에서 만나. 안전하게 집에서 맛있는 거 먹자”
류의 인사말에 안대를 고쳐 썼다.
축축한 안대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아무렴 어때
오늘의 걱정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