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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완 May 18. 2021

내가 요가를 시작한 이유

그리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


"선생님~ 제 휴대폰에 전화 좀 걸어주세요.. 어디 놔뒀지?"



병원 근무 중에 잠깐 휴대폰을 분실했었다. 당시 옆에 있던 3일 차 된 간호조무사 선생님께 내 폰으로 전화를 부탁드렸다. 다행히 A4 용지 밑 응큼하게 숨은 폰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조무사 선생님의 번호가 "요가쌤"으로 저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빠릿한 사람이라면 새로 온 동료 번호를 바로 저장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병원 선생님을 요가쌤으로 저장할 일은 없다. 그때 불현듯 10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요가하면 키 큰다던데? 같이 다니자!" 이 말을 뱉은 친구 놈이 막바지에 말을 번복한 덕에 나는 중3 때 홀로 요가원을 다닌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한 달만에 그만뒀지만 말이다.



"선생님 혹시 요가하시나요?"

"네~ 요가센터 운영하고 있어요. 병원은 고정수입이 필요해서 다니고 있고요."

"아~ 혹시 가르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15년 정도 됐어요."

"!! 혹시 조흥그린 밑 상가에서 가르치셨나요?"

"네! 거기가 1호점이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신기한 인연이다. 나도 그렇고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생김새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10년 전에 스쳐 지나간 인연을 기억하기란 누구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촉발시킨 내 삶의 변화는 명확했다. 이 선생님을 통해 다시금 요가에 대한 관심이 부풀었고, 실제로 저번 주부터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신과에서 근무하다 보니 요가, 명상 등의 활동요법으로 불안을 완화하고 심신을 안정시킨다는 내용을 심심찮게 접했다. 그럴 때마다 '다음에 기회가 나면 배워야지'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다음'이 이렇게 금방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행동이 촉발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나는 몸을 쓰는 무언가를 배워놓고 싶었다. 그러나 딱히 끌리는 건 없었다. 몇 년 전에는 격투기에 관심 가졌으나 도장을 찾아갈 정돈 아니었고, 헬스장은 2년 이상 다녔으나 큰 근육, 강한 힘을 원했던 건 아니라서 홈트로 대체했었다. 어쩌면, 헬스나 주짓수처럼 굉장히 대중화된 운동은 나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반면 요가는? 상당히 힙하게 느껴졌다.



사실 몸을 만드는 최적의 운동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맞다. 그러나 나는 심신 안정과 내적 성장을 이루고 싶었다. 이러한 점에서는 요가가 최적이다. 근처 요가원에 전화를 했고, 다음날 무료 수업을 예약했다. 요가를 다시 만나기 전 날 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나랑 정말 잘 맞았으면 좋겠는데. 생각보다 별로면 어쩌지?' 이러한 근심은 다음 날 요가 수업 후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미쳤네. 이게 진정 내가 바라던 거다.' 내적 충만감이 가득해졌다. 얼룩덜룩한 정신이 명료해졌다.



이제 요가를 다닌 지 2주 차다. 이것도 사실 주 3회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더 감질난다. 요가를 하지 않는 날은 더욱 요가가 생각난다. 요가원의 고요함을 느끼고 싶다. 강사님의 동작을 수련생들과 함께 따라 한다는 사실이 그들과의 유대감을 제공한다. 무언갈 배우고 있다는 자체가 좋다. 이제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앞으로도 즐겁게 요가를 수련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2년 뒤에는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고, 요가 강사로도 일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열심히 수련해야지! 2주 차 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가 2년 후 미래를 바라본다. 이 사실이 부끄럽고 우습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



지금 읽는 책을 완독한 뒤에는 '요가의 과학'을 읽어봐야겠다. 올해 1월에 출간된 따끈한 책이면서, 아마존 북 리뷰에서 상당히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요가를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머릿속이 너무 시끄럽다면, 쉬는 시간이 죄악같이 느껴진다면 요가를 경험해보자. 50분 간의 수련 후, 두 눈을 감은 채 두근거리는 심박을 느껴보자. 진정되어가는 호흡에 집중하는 5분 간의 명상은 정적인 짜릿함을 제공한다. 우리가 요가에 투자한 1시간이 24시간의 불필요한 노이즈를 줄이는 데도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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