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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린 건 평범한 날들이었다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by 심월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호시노 토미히로의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사연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삶의 진실이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지요.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이 움직입니다. 오전엔 좋았다가 오후엔 나빠지고, 희망이 보였다가도 곧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밉다가도 금세 좋아지기도 합니다. 시인은 마치 “그게 인생이야” 하고 담담히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삶을 이루는 요소는 참 많습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미움과 사랑 같은 것들. 원하든 원치 않든 이 감정의 굴곡은 삶의 일부이며,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는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때로는 삶의 틈을 메우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기도 하지요. 시인은 바로 그 사소한 평범함 덕분에 삶이 굴러간다고 말합니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물 한 잔, 현관문을 열자마자 감탄하게 하는 나무들, 호기심을 담아 바라보는 풀 한 포기, 어떤 말로도 담기지 않는 저녁노을 같은 순간들 말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특별한 사건에 집중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감격과 상처 같은 극적인 장면에 더 마음이 머물지요. 일기장을 보면 분명합니다. 특별했던 날은 굵은 글씨로 쓰여 있고, 평범한 날은 아무 기록도 없습니다.

이건 우리의 기억의 방식과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큰 사건은 뇌가 오래 붙잡아 두지만 평범한 일들은 배경으로 밀려나 보이지 않게 됩니다. 마치 공기처럼 늘 곁에 있으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평범한 순간이 삶을 지탱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소해서’가 아닐 겁니다. 큰 사건이 삶의 방향을 바꾼다면, 작은 순간들은 삶의 리듬을 만듭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 균형을 잡아주는 안정적인 힘이 바로 평범한 순간들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극적인 장면보다 조용하고 반복되는 순간에서 더 많은 회복을 얻습니다. 바람이 스치고, 익숙한 길을 걷고, 노을을 바라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소한 풍경들이 우리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다줍니다. 평범한 순간은 작아 보여도 삶의 밑바닥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토대 같은 것입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 『우리 딸은 어디에 있을까?』는 딸의 여러 모습을 동물에 비유하여 보여줍니다. 딸은 어떤 날은 토끼처럼 얌전하다가도, 악어처럼 날카롭고, 사자처럼 으르렁대다가도 양처럼 순하기도 합니다. 물고기처럼 조용했다가 수탉처럼 시끄러워지기도 하지요. 그림책 작가는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는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말합니다.

그림책은 손바느질로 꿰맨 천의 앞뒷면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앞면은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뒷면은 실밥이 튀어나오고 흐트러져 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앞면 뒤에 언제나 매듭과 헝클어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작가는 아이의 변화무쌍함이 결함이 아니라, 그 아이를 이루는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시노 토미히로의 시가 말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지요.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어쩌면 삶은 흔들림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시인은 그 흔들림이 비극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흔들림을 감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기에 삶이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림책 또한 아이의 얌전함과 거침, 고요와 소란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앞면만큼 뒷면도, 토끼만큼 사자도 “그 아이답다”라고 말합니다.

삶은 웃음과 눈물, 희망과 좌절, 사랑과 미움을 오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그 사이를 묵묵히 채우는 작고 평범한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큰 파도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삶을 이루는 평범한 순간들에게 감사하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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