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없어서는 아니 될 하나의 길이 된다.
― 이해인, 〈길 위에서〉
이해인 수녀의 시는 삶의 무게를 다른 눈으로 보게 해 줍니다. 슬픔도, 갈등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해도 모두 내 길의 일부라고, 나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그것들을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끄덕이며 받아들입니다. 때로는 무력하고 초라했던 날조차 지금의 나를 이루는 데 꼭 필요했다고 위로하지요. 이 단순한 끄덕임이야말로 자신에게 베푸는 다정함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인색합니다. 작은 실수에도 오래 괴로워하고, 사소한 실패조차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다른 이에게는 “괜찮아”라는 말을 건네면서도, 정작 자기에게는 그 한마디조차 아끼지요.
그러나 시인은 말합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길이라면, 나를 미워할 이유는 없다고. 오히려 다정하게 품고 갈 이유만 남는다고.
햇빛은 나에게도
그림자를 줍니다.
나를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크기,
똑같은 색깔의 그림자를 줍니다.
― 오승강, 〈햇빛은 나에게도〉
오승강 시인의 목소리는 특수학급 아이의 눈을 빌려 세상을 봅니다. 놀림을 받는 아이가 주눅 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입니다. 잘난 아이, 서툰 아이, 건강한 아이, 몸이 불편한 아이, 누구에게나 같은 크기의 그림자를 건네는 햇빛처럼 세상은 차별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도 그런 다정한 눈길을 권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만이 타인에게도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림책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는 이러한 메시지를 아이들의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책에는 다섯 명의 친구가 등장합니다. 구멍 난 몸을 가진 아이, 꼬깃꼬깃 접힌 아이, 늘 졸음을 참지 못하는 아이, 거꾸로 걷는 아이, 찌그러진 공처럼 엉망인 아이. 처음에는 모두 쓸모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흐를수록 그 결핍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힘이 됩니다.
구멍 난 아이는 화가 나도 금세 연기처럼 사라지고, 주름투성이인 아이는 주름 속에 추억을 품습니다. 거꾸로 걷는 아이는 남들이 보지 못한 풍경을 보고, 엉망처럼 보이던 아이는 실패 끝에 무언가를 해냈을 때 누구보다 크게 기뻐합니다. 부족함은 무용지물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이었습니다.
다섯 친구는 서로의 모자람을 감추거나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즐겁고 충만해집니다.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할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힘이 자랍니다.
우리도 조금씩 어딘가 부족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누구나 속으로 자기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입니다. 그 다정함이 쌓일 때, 우리는 타인의 부족함도 자연스럽게 존중하게 되고, 세상과의 관계도 조금씩 부드러워집니다.
자기를 향한 다정한 마음은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걸음입니다. 나를 조금 이해해 주면, 남의 그림자에도 같은 햇빛이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이 보이고, 서로의 부족함 또한 그 사람만의 결로 받아들여지지요. 그러다 보면 지나온 날들도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작은 길로 느껴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다정한 시선이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오늘을 조금 더 가볍게, 서로에게도 조금 더 따뜻하게 건너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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