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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Feb 16. 2022

프롤로그:가난해서 여행 못 가본 알바생의 청춘기행(2)

    



  예전에는 좀처럼 관심 갖지 않았던 에세이를 쓰고, 읽게 되기까지 내게 영향을 준 여러 일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평소에 존경해왔던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책을 읽은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의 이유’ 책에서 작가는 ‘여행’을 뜻하는 영단어인 ‘travel’의 어원이 고대 프랑스어에서 ‘노동’ ‘고생’ ‘고역’을 뜻했던 ‘travail’이라고 설명한다. 비행기도 열차도 배도 없었던 시절에는 여행이 고역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존의 여행보다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여행의 의미를 인생에서 더 따르기라도 한 것처럼, 책 안에는 우리가 인스타 여행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휴양지’ ‘맛집’ ‘저녁 파티’ 같은 이미지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유년 시절에 집안 사정으로 여섯 번의 강제 전학을 하고, 성인이 돼서는 세계 여행을 통해 자신의 오랜 신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해외 체류 중 우울증을 겪기도 하면서 얻게 된 고생담과 그로 인한 깨달음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가의 사연에 공감하고 좋은 느낌을 받은 나는 어쩌면 진정한 여행은 ‘고생 체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되었다. 단지 주관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부터 뭐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해보게 되었다. 살면서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해본 적 없는 주제에 나만의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자라는 것도 느꼈다.

     

  살면서 남들이 놀라고 부러워할 만한 장소를 여행한 적은 없지만, 진정한 여행은 ‘고생 체험’이니까 이제껏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청춘 시기를 통과하는 여행을 했다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또 여행 컨텐츠만을 좋아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설적인 메시지를 책에 담으면 어떨까. 차라리 이제껏 겪은 고생스러운 알바로 여행한 셈 치면 어떨까.      


  고1 때 수련회에서 당한 집단폭행과 그로 인한 망막 파열. 아빠에게 오랫동안 들은 직간접적인 폭언과 몇 차례의 구타. 엄마의 집담보 대출로 인한 대학 진학 포기. 10년 가까이 해온 소설 쓰기를 포기해야만 했던 사연 등. 살면서 고통스러웠던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책 한 권 분량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내게 고난과 어려움, 그리고 깨달음을 안겨 주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머릿속에 남는 건 늘 알바했던 시절의 일들이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알바한 일을 위주(혹은 알바와 직접 상관이 없지만 알바 현장이 배경이 되었던 일) 써야겠다고 그때부터 마음 먹었다.       



  인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일을 무의식적으로 잊으려고 한다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말처럼 나 또한 내가 알바를 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그 무렵에 깨닫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예전 기억을 고통스럽게 복귀하고 나서야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20대에 많은 알바를 했던 이유는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도무지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집이 폭삭 망하는 꼴을 지켜봤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원래부터 풍족하지 않은 차상위 계층의 가정이어서인지 구성원들 사이에 돈과 관련된 부정적인 다툼이 끊이질 않았지만, 열아홉 살 겨울 방학 때 집 안에 생긴 사건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와 가족에게 큰 악영향을 주었던 게 분명하다. 그 사건에 대해서 처음 듣게 된 것은 그 무렵에 꼭 입금해야만 했던 대학등록금 얘기를 처음 꺼내고 나서였다. 그날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서 내뱉는 말들을 통해 엄마가 최근에 집 담보 대출로 3천만 원의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년 전부터 화장품, 휴대폰, 건강 매트 등의 다단계를 전전하면서 성격이 뻔뻔하게 변한 엄마는 나중에 다 해결할 테니 일단은 돈을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해 보라는 말만 아빠에게 전할 뿐이었다. 그러면 손가락과 허리에 산업재해를 당한 탓에 오랫동안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아빠는 엄마에게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과 욕설을 토해내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비난만 늘어갈 뿐 누구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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