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이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는 어쩌면 여행에 대한 반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누구나 다 여행 가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쭉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살면서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다녀 왔을 뿐만 아니라 고2 때는 돈 아까운 제주도 수학여행을 안 가려고 개기다가 부적응을 염려한 담임이 엄마한테 연락한 일도 있다. 수능을 마치고 졸업여행 간 친구들이 윗지방에서 스키 타고 있을 때는 나 혼자 학교에 나와 교감이 시키는 대로 봉사활동을 하고 빈 교실에서 책을 봤다. 어른들과 친구들은 의아해했지만, 내 딴에는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주변 눈치가 좀 보이긴 했어도 학창시절에는 별문제 없이 넘어갔는데, 그때만 해도 시간이 지나 더 난감한 일들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모두가 알다시피 언제부턴가 추석에 힘들게 고향에 내려가는 것보다 해외여행 가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하필 연예인들이 국내로 해외로 여행 가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늘어서인지 자국의 위상이 예전보다 높아져서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 내 주변에 해외여행 안 다녀온 사람이 없었다. 특히 그들은 여행을 가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게도 권유하고 설교하려고 들었다. 그런 사람 중에 내 집안 사정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본가의 소파나, 에어컨 등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을 정도로 부모님이 오랫동안 빚에 허덕이고 있지만, 그 사실을 늘 숨기고 살다 보니 다들 나를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애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온종일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무슨 좋은 영감이 떠오르겠냐고,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고생해봐야 보는 눈이 달라지지 않겠냐고, 그래야 글도 더 잘 써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남들에게는 할 일이 많아 갈 시간이 없었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돈 때문에 여행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현실을 애써 숨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단지 극단적인 성격을 가진 애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실 돈 문제를 떠나서 살면서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없었다. 그러니 딱히 억울할 것도 없었다. 여행 못 갔다고 해서 남들보다 재미 없고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도 안 해봤다.
물론 어쩌다가 패키지 여행 이벤트에라도 걸린다면 마지못해 한 번 정도는 해외로 나가서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고 현지인들 구경이라도 좀 하고 돌아올 의향도 있긴 하지만, 굳이 내 돈 주고 가고 싶진 않았다. 열아홉 살 때부터 알바로 내 아까운 청춘의 시간을 소모해가면서 번 돈을 허투루 쓰고 싶진 않았다. 여행 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건 뭔가 이제껏 지나온 과거를 배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답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마치 겉보기에는 볼품없지만 내 몸에 딱 들어맞는 옷을 내팽개쳐 두고,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낑낑대며 입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행 잘 다니는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하고, 나조차도 때로는 과거에 수련회에서 겪은 안 좋은 일의 트라우마 영향 때문은 아닌지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오래전부터 유지해왔던 가치관이었다.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유지해왔던 가치관의 이유를 시간이 지나 스스로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내 경험으로 에세이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부터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