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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r 04. 2022

그 시절의 회의감 뽐내던 소설 쓰기(1)

순수하지 못한 소설 쓰기 vs 순수한 토익공부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주인공의 말과 작품 속 세계관이 이해가 안 돼서 몇 장 읽다가 말았어.“


  오래전 학교 식당의 배식대 앞에서 줄 서고 있을 때 그 말을 한 사람은 내 앞에 있던 형이었다. 형은 함께 일하는 여섯 명의 토익사관학교 조교 중 내 소설을 처음 보여달라고 말한 사람이기도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서 토익 실력과 아무 상관 없는 복사 심부름과 받아쓰기 채점 등의 단순 반복적인 조교 알바를 하면서 다른 조교들과도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내가 맡은 학생들을 자습시키는 동안에 볼 소설을 프린트하고 있는데, 어느새 복합기 옆으로 다가온 형이 관심 있게 물어보았다. 직접 쓴 소설을 프린트해서 읽고 고치는 작업을 한다고 하자 형은 흥밋거리를 발견한 것처럼 휴게실에 있던 다른 조교들한테도 알려주었다. 생소한 문예창작학과 전공인 데다, 80, 90년대에나 유행했던 신춘문예를 준비한다고 말하는 내가 신기해 보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공무원 시험 준비하면서 문학 지문도 많이 봤다는 형의 말과 다른 남녀 조교들의 궁금해하는 반응에 못 이겨 결국 나는 내가 쓴 단편 소설을 인원수대로 프린트해서 나눠주었다. 어쩌면 한 명쯤은 내 소설을 관심 갖고 다 읽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조금은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부질없는 기대였을 줄은 몰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5일이 지났는데도 휴게실에서 아무도 소설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을 자각하고, 그날 점심시간에 형의 직접적인 말을 듣고 나서였다.


  “그럴 수도 있죠. 그냥 기념으로 보여드린 거지 다 읽길 바라고 보여드린 건 아니어서 괜찮아요.”


  “자기 몸을 자해하는 행위로 뭔가 현대사회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려 한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그 이상 알기 힘들었어. 나처럼 평소에 순수문학이나 사회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은 혼자 해석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순간 괜히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건 내 소설이 어렵게 느껴졌다는 말 때문은 아니었다.


  “진입 장벽이 없진 않죠. 많이 읽고 아는 만큼 더 많이 해석할 수 있는 분야인 것 같긴 해요.”


  말은 자신 있게 했지만, 요즘 들어 소설을 읽고 많이 공부할수록 남들과 확연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심란해질 때가 있었다. 가뜩이나 토익사관학교 조교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매일 5시간의 강의가 끝난 이후에 저녁 늦게까지 남아서 영어 단어를 300개도 넘게 외우다가 귀가하는 토익사관학교 대학생들을 간혹 학교 후문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하기 마련인 어학 시험공부와 각종 스펙 쌓기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어느 순간 회의감을 차가운 방어구처럼 몸에 두르고 사는 인간이 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살게 된 데에는 사회 참여적인 소설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오랫동안 내게 영감을 주었던 사회 참여적인 소설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사건들도 간접 체험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상에서 문제의식을 더 많이 갖게 된 게 분명했다. 돈을 숭배하다시피 하는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무한경쟁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모자라 특히 사회 부조리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취업과 노동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느끼게 된 것 같았다. 실제로는 살면서 써먹을 일이 극히 드문 영어를 단지 경쟁하기 위해 억지로 공부해야만 하는 실효성 없는 평가 방식이나,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채 밥 먹듯이 야근시키거나 때로는 비정규직들끼리 은근히 경쟁시켜서 자연스레 열정페이를 유도하는 편법들, 기계속의 톱니바퀴가 되어 창의성 없이 시키는 일만 할 수밖에 없는 노동 소외 문제를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왠지 자신의 인격을 죽이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막상 나 또한 다른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슬슬 취업 준비할 나이가 되고 나서는 취업 시장에 뛰어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사회 문제 따위에는 신경 끄고 경쟁 시스템을 낙관하며 취업을 준비해도 잘 될까 말까인데, 회의감 때문에 어떤 동기부여도 얻지 못하다 보니 내 경우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생활 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모든 사회 문제의 원흉인 돈을 원래부터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 보니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쉬운 건 없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선택지를 갖지 못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소설을 읽고 글을 쓰면서 얻은 문제의식과 회의감을 연료로 삼아 소설가가 되는 게 가장 나은 판단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매회 300~400대 1을 선보이는 신인문학상과 신춘문예 경쟁률을 심사평에서 찾아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교수님과 앞서 등단한 선배들에게 대부분 다 실력 없는 허수일 뿐이라는 얘기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투고한 소설이 본심은커녕 예심에도 오르지 못한 것을 알 때마다 외줄 타기 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었다. 합평 시간에 애써 쓴 소설이 교수님과 동기들에게 난도질당하듯 지적받으면 매달린 줄 아래로 추락하는 것 같은 암담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내게 거의 종교와도 같았던 소설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돌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맹목적으로 믿고 합리화라도 해서 계속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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