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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r 25. 2022

문란한 인간을 가려낼 수 있다는 착각(1)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제가 서울 가기 전에 만나서 밥이라도 같이 먹는 건 어때요? 미안하니까 제가 살께요.”


  대학 재학 시절에 내게 교정 일을 맡긴 의뢰인으로부터 단둘이 만나 밥을 먹자는 제안을 문자메시지로 받은 적 있다. 전남의 변두리 지역을 떠나 서울로 이주해서 살게 된다면 앞으로 교정 일을 맡길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안해서 밥이라도 사겠다는 것이었다.


  계약 유지나 파기에 대한 명확한 답을 아직 듣지 못한 나로서는 의뢰인의 식사 제안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뜻 받아들이는 게 좋았을 테지만, 막상 문자나 전화 상이 아닌 실제 만남을 갖는다고 생각하니 내키지 않아 고민하게 되었다. 의뢰인이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보다 스무 살 가량 나이가 더 많은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도 없진 않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은 의뢰인이 19금 웹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 또한 유교 문화 중 남녀상열지사의 잔제가 아직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당시만 해도 19금 웹소설을 저급하게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19금 웹소설을 쓰는 사람은 왠지 일반인보다 성생활에 더 개방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뢰인이 쓴 글과 의뢰인이라는 사람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지 못하고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의뢰인이 매일 웹소설 사이트에 개재하는 글을 지난 3개월간 꼼꼼하게 읽어오면서 머릿속으로 의뢰인의 과감한 상상력이나 표현력을 변호하려고 애써보기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의뢰인의 글 속에 주로 등장하는 야한 묘사들, 이를테면 상대방의 중요 부위를 손가락이나 혀로 괴롭히는 기술에 대한 상세 설명이나 주인공인 모태쏠로 여성이 침대 위에서 힘 센 연하남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즐기는 이중적인 내면 묘사 같은 것들이 전부 타켓 독자층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애써 납득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허구인 소설 속의 묘사들이라고 해도 의뢰인이 일상에서 실제로 갖게 된 느낌과 생각, 욕망들을 재료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었다. 혼자 심각하게 글을 읽다가 급기야 의뢰인이라면 스무 살 차이가 나는 내게도 성적인 호감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의뢰인이 하필 워크넷이나 알바천국이 아닌 우리 대학교 게시판에 구인 글을 올렸다는 사실을 수상쩍게 여기기도 했는데, 그때만 해도 과도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는 자각은 하지 못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교정해야 할 소설이 하필 19금 소설이라는 사실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부터 나는 ‘저급한 일에 참여하려는 게 아니야’라고 속으로 암시하면서도 암만 생각해도 ‘저급한 소설’을 만드는데 계속 협력하고 있었으므로 어찌 보면 이중잣대이기도 했을 것이다. 의뢰인이 써서 보여준 19금 소설이나 내 의심과 무관하게 의뢰인이 여태껏 전화상으로 전한 말들 중 집적대는 말은커녕 일 외의 사적인 질문도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과도한 의심이 분명했다. 어떤 명백한 피해를 받은 일도 없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내 쪽이 오히려 더 이상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내가 의뢰인에게 편견과 의심을 가졌던 것처럼, 만약 작가가 쓰는 글의 종류로 작가의 내면이나 욕망을 파악할 수 있다는 논리가 타당하려면 반대의 경우도 성립돼야 말이 될 것이다. 19금 웹소설이 아닌, 이를테면 순수문학의 글과 그 글을 쓴 작가 사이의 연관성도 충분히 확인돼야만 할 것인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보다는 사물 안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 갖고, 부조리한 현실 속의 숨겨진 냉혹한 진실을 파헤치는데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어서 흔히 정신적인 세계에 속해 있다는 인상을 주는 순수문학 작가들도(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충분히 성폭력을 일삼는 추잡한 세계에 속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2016년의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문단계 성폭력 사건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관련 기사들을 찾아본 나 또한 문단이라는 세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이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사람으로서 실망하긴 했지만, 의외로 크게 놀라거나 뜻밖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 매체에서 연일 보도 되었던 문학계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보다도 더 큰 성폭력 사건을 접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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