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 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초창기에 ’알바‘라는 뚜렷한 컨셉을 잡고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십여 가지 종류의 다양한 알바를 섭렵했기 때문에 이 기회에 고생한 것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혼자 자신감도 가졌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바 소재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저절로 하게 됐던 것 같다. 열심히 글을 쓰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의 알바 경험은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 경험이 과연 가치가 있을지 가늠해보고 싶기도 해서 참고삼아 책, 커뮤니티 글, 영상 매체 등에서 다양하게 찾아보았는데, 그 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유투브 영상이었다.
거기에는 남들이 쉽게 경험해보지 못한 소위 말하는 ’극한알바‘ ’이색알바‘ 체험자들의 인터뷰, 현장 취재, 썰 풀기 영상들이 무궁무진했고, 그중에는 편당 수백만의 조회수를 얻으며 소비되는 것들도 있었다. 애초의 동기와 무관하게 일반 대중들의 관심이 글에서 영상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다시 자각하게 된 나는 내 글이 단순히 독자들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 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치면 안 된다고, 그래서는 차별화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알바‘ 하면 단박에 떠오르기 마련인 ’노동취약계층‘ ’부당한 대우‘ ’차별과 멸시‘ ’단순 반복 노동‘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사회 참여적인 맥락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좀 빤하다는 생각도 그 무렵에 하게 됐던 것 같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내가 체험한 ’알바‘를 중심에 두고 얘기를 풀어내는 것을 조금은 경계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쓰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매번 새로운 글을 구상했던 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알바‘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내가 20대에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들이나 그때의 감정, 생각들에 대해 쓸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저절로 비중을 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살면서 순수문학이 아닌 ’에세이‘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라도 문학에 관한 신념 상실이나 꿈 포기, 불우한 가정환경, 짝사랑 문제 같은 내밀한 소재를 꺼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부끄럽고, 서럽고, 불쾌한 감정들도 내면의 어두운 장롱 안에 꼭꼭 숨기지 말고 죄다 풀어 놓아야 한다고, 때로는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감정들, 행동들에 대해서도 해석해서 독자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과거에 수련회장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고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는 사실을 노출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묻는다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더 과감하고 적나라하게 쓰지 못한 게 한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준비가 늘 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영상 속의 인터뷰 말과 자막으로 접하게 된다면 오히려 상상하며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는 내면 묘사들을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되기까지의 경로들을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이어지는 문장으로 생생하게 전해야만 차별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글쓰기에 대한 태도와 글감들을 선정해서 써나가다 보니 힘없는 알바생이 겪게 되는 정통적인 노동 문제들 외에도 당시에 예민한 작가 지망생이었던 내가 냉정한 알바 세계에 뛰어들면서 겪게 된 가치 혼란과 알바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배운 배려와 인생 교훈, 일하면서 혼자 찌질하게 키워나간 짝사랑이나 정들었던 아이들과의 헤어짐과 불편한 재회 등의 이야기도 끄집어내게 되었다. (모든 작품에 크건 작건 ’알바‘라는 소재가 포함되기 때문에 ’연작‘이나 ’시리즈물‘로 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바‘라는 소재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면, 차라리 각각의 글들을 어떤 얽매임도 없이 자유롭게 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의문에 대해 한동안 계속 생각하며 글을 써왔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도 내 선택은 언제나 ’알바‘라는 연관성을 최소한이라도 갖는 쪽이었다. 28년의 인생을 살면서 머릿속에 저장 된 수 없이 많고 난잡한 사건들 가운데서 무엇을 끄집어내서 써야 할지를 매 순간 고민하는 부담을 덜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일관성은 갖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들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친숙함을 주기 위한 나름의 의도도 없진 않았던 것 같다.
’김 작가‘처럼 일관된 컨셉을 가져야만 마땅히 좋은 에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세상에 충분히 많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각자의 취향에 따른 선호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삶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게 쓰는 장르가 에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솔직함을 잃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억지로 컨셉에 맞게 가공해서 꾸며 쓰고 싶지도 않다. 글에 대한 평가 문제를 떠나 단순히 지난 2년간 써온 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짚어 읽어 보면 암만 생각해도 내가 가진 그릇의 밑바닥까지 다 까발려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혹여나 어떤 냉정한 말을 듣더라도 상처 받지는 않을 것 같다. 한눈에 봤을 때 독자들에게 확 끌리는 책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인내심을 갖고 묵묵히 읽어준 누군가에게 묘하게 자신과 닮은 구석을 발견한 것 같은 기시감 같은 공감을 보답으로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