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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May 06. 2022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그 흔한 말(2)

식당 사장이 주는 음식을 쉽게 받지 말아야 하는 이유

  첫날 이후로는 일하는 시간에 마음의 부담이 비교적 덜했다. 일은 조금 더 익숙해졌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데다가 둘째 날부터는 점심뿐만이 아니라 그날에 남은 미트볼이나 미역줄기볶음, 두부무침 같은 반찬도 받게 돼서 일이 좀 더 괜찮게 느껴졌다.


  사모님은 놔두면 어차피 버린다고 하면서 나에게 남은 음식들을 싸주면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지 매번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이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주방 이모가 봉지에 싸주는 것들을 받아 갔다. 내가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사모님은 종종 가족처럼 생각해서 주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작은 의심도 하지 않았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게 내 실수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그 말이 조금은 싸하게 느껴진 것은 일한 지 보름쯤 지나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렇게 느끼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모님의 비난의 말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모님은 재촉하듯 이곳저곳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예전 알바생들에 비해 행동이 느리다며 비교의 말을 했다. 때로는 한 번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 부탄가스 장착이나 종이컵 교체를 시키고 나서 이런 것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르냐는 무시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내 딴에는 첫날과 다름없이 매일 속옷이 땀에 푹 젖을 정도로 쉴 틈 없이 홀을 내달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울함을 느꼈다. 몇 개월씩 일한 사람과 이제 겨우 보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낱 피고용인인 나는 그런 생각과 감정을 사실대로 내비칠 수가 없었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나이가 들면서 생긴 갱년기 스트레스를 만만한 나에게 푸는 것이라고 애써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일하기 위해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 마감 시간에는 전처럼 인내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가뜩이나 그 날은 여느 때와 다르게 손님들이 300명도 넘게 찾아오는 바람에 평소보다 1.5배는 더 힘든 날이었다. 20분도 넘게 기다린 끝에 밥을 겨우 리필해서 들여놓자마자 또다시 동이 나거나 탕수육 대신 임시방편으로 동그랑땡을 내오는 등 계속 문제가 생긴 것은 순전히 사람들이 한 번에 너무 많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누명을 뒤집어씌우듯 사모님과 주방 아주머니는 내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욱 피로감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내 속사정을 조금도 알지 못한 사모님이 마감 시간에 행동이 더 빨라야 한다는 잔소리를 다시 늘어놓았을 때 나는 더는 참지 못했다. 오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힘이 든 것은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말대꾸를 했다. 그렇지만 사모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앞으로 일하다 보면 오늘보다 손님들이 더 붐비는 날도 있을 텐데 고작 이 정도로 약한 소리를 하면 어떡하느냐고 하면서 도리어 나를 질책했다. 나는 그동안 억눌러 왔던 것을 쏟아내듯 늘 쉴 틈 없이 일하는데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사모님은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다소 정색하는 어조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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