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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01. 2023

꿈이었나? 꿈같아. 꿈이 아니었어?

잠이 보약이었네

꿈이었나?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을 더듬어본다.

 

2023년 11월 28일

순두부에 누룽지가 아침상이었다.

그간 손님을 치르고 남은 콩자반과 멸치볶음, 장조림, 콩나물무침을 반찬으로 올렸다.

아침상이 끝나고,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와, 집안을 둘러봤다. 손님 오시기 전 정리한 집이 맞나 싶다.     


우체국에서 택배가 온다는 문자다. 서울에서 출발했다던 아이들 장학증서가 산천으로 들어왔나 보다.

전화가 온다. 자동차 공업사에 맡겼던 나의 아침이 수리를 마쳤다는 소식이다.

서류정리도 해야 하고, 며칠 새 미뤄두었던 일이 한둘이 아니다.  


점심을 먹고 자동차 공업사를 찾았다. 일주일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하던 정비사님이, 다행히 잘못된 전기회로를 빨리 찾아 차 수리가 일찍 끝났다. 직원들이 보이지 않아 소파에 앉아 정글에 법칙을 오랜만에 봤다.  정비사님이 들어오고, 비용을 지불하고 차 키를 받아 집으로 왔다.     


우선 설거지를 끝내고 늘어진 물건을 대충 치우고 식탁에 앉아, 서류를 떠들어보는데 집중이 안 된다.

5시가 안 됐다. 두부가 오기 전에 눈을 조금이라도 붙여야겠다.

이불을 깔고 누웠다.

동생 두부가 집에 온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2023년 11월 29일

눈을 떴다.

조금밖에 못 잤나 싶어 핸드폰을 켜고 시간을 봤다.

세상에 나, 15시간이나 잤다.

6시간 아니 많이 자면 8시간 정도 자는 내가 15시간을 움직이지 않고 잤다.   

일단 화장실이 급했다.  

서둘러 수업일지를 작성했다.

오늘 해야 하는 수업 정리하고 알람을 맞추고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1시, 알람이 울린다.

이불에서 밍기적거리다 부랴부랴 학교에 갈 준비를 했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의 수업은 순조로웠다. 텃밭에서 따온 채소들을 이용해 유부, 만두전골을 만들었다.

그전 수업에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모셔둔 라자냐도 꺼내 데워 먹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했고, 교장 선생님과 인사하고, 아이들과 장학증서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집에 돌아오니 또 졸리기 시작한다.

동생을 기다려야 하는데...

몸을 데우려 이불에 들어갔다.

두부가 조용한 발걸음에 길동이 이야기를 전했던 것 같은데.     


2023년 11월 30일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잤다.

밥은 먹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또 잤다.


동생이 올 시간이다.

어제 만들어 온 유부, 만두전골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 졸린다.  

   

두부가 들어왔다.

“두부야, 맥주 사 올래?”

“응. 그런데 언니 괜찮아?”

“난 괜찮아. 할 일은 쌓였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두부가 맥주를 사서 들어오고, 전골을 식탁에 올리고 앉아 동생을 바라보았다.

“나 너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일 봤잖아?”

“기억이 안 나. 어렴풋이 너에게 뭐라고 말한 거 빼고는. 꿈같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었나 싶어.”     


난 원래 이 산천에 사는 사람이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요리선생님.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은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     

“언니 많이 피곤했나 봐.”

“꿈꾼 거 같아.”     


.

.

.

.

.

.

.                                             

그런데 술이 술술 잘 들어간다.

전골 국물에 죽까지 만들어 먹었다.

동생과 이야기하다 소화가 다 됐는지 또 졸린다.

“언니 텃밭에서 배추 따와야 하는데.”라며 식도를 들고 서 있는 내 동생 두부.

텃밭에 나가, 실한 놈으로 두 놈을 골라 싹둑 뿌리를 잘라 왔다.     


찬바람 때문인지, 잠이 달아났다.

덩달아 술기운도 달아났다.

며칠 동안 잘 잔 덕분에 온몸의 장기가 좋아졌는지 소화도 잘되고, 해독도 잘되나 보다.


역시 잠이 보약인가?     

몸이 가뿐하고 마음도 평안하다.

이런 기분 처음이다.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천장은 멀뚱멀뚱 바라보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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