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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Dec 03. 2023

이제야, 무 맛을 알 것 같아

귀촌 이야기

‘심봤다!’

아니

‘무봤다!’     


사이사이 잘 크지 못한 무를 뽑으며, 나의 게으름을 탓하고 있었다.


10월 무씨를 잔뜩 뿌렸다. 처음 올라온 무순을 먹으려 촘촘히, 무잎으로 샐러드와 쌈으로 사용할 거라며 조금 더,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막 올라온 무순을 먹기 시작했지만 자라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와 다르게 채소를 싫어하는 동생 두부와 그 많은 어린 무잎을 처리하기엔 버거웠다. 그렇다고 매일 무잎만 먹고살 수는 없어, 외면하며 지나쳤다.     


무를 제때 속아주지 못해, 아이들이 조그마하다. 역시 욕심은... ‘안돼.’     


오후에 이웃 노랑 집에 놀러 가는 김에 무와 미니당근, 청경채, 상추 그리고 쌈 배추를 챙겨주러 텃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건 친구 “넌 손가락이 없냐? 왜 전화 안 하냐?”를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뭐 하냐?”

“텃밭, 무가 작은 게 많네. 청경채, 상추 뜯고 있지.”

“우리 부모님 그쪽으로 여행 갔다 오셨다네.”

“그럼 말하지. 한 보따리는 못 해도 텃밭  작물 좀 챙겨 보내드렸을 텐데.”

“나도 이제 알았어. 울 엄마도 좋아했을 건데. 요즘 뭐 해 먹냐?”

“요즘 며칠째 라쟈냐 먹었다. 학교 실습도 있고, 손님도 오고 해서.”

“오리지널?”

“응, 라구소스하고 베샤멜이 너무 잘 됐어.”

“나도 먹고 싶다.”

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겉어 온 채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잎을 정리하고, 미니 당근을 다듬으며 잘라놓은 작은 무에 연신 눈길이 갔다.

‘맛만 볼까?’ 저런 작은 무에서 무맛이 날까 하는 생각으로 주방으로 들고 와 깎아 아주 조금 베어 물었다.

베어 물고 남은 무를 다시 보았다.

‘너 이런 맛이 났어?’     

“너 뭐 먹어?” 친구가 통화 중에 딴짓을 한다며 짜증을 낸다.

“무, 일단 끊어봐. 다시 전화할게.”

친구와 통화를 멈추고 남은 무를 입에 넣고 와그작 씹으며 칼을 들고나갔다.   

  

작은 무를 마저 더 뽑았다.

‘오늘 저녁은 너다!’     


내가 이 산천으로 귀촌하지 않았다면,

전 주인과 말썽 없이 살았다면,

텃밭을 만들자는 나와 마당을 공구리 치자는 동생과 싸워 이기지 못했다면,

올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무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난 이 맛을 몰랐을 거다.     


무 맛이 난다.

달다.

맵지는 않지만, 끝에 올라오는 맵싸한 향과 맛이 입안 가득하다.

아삭거리지만 부드럽다.    

 

지금까지 무란 커다랗고 반듯한 것, 당연히 겨울 찬 서리를 맞으며 자란 것이 맛있다고 알고 있었다. 손가락 두 개나 세 개 정도의 두께는 상품성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이렇게 작고 귀여운 무의 맛은 키워본 사람이나 알 거라며 내 손에 들린 앙증맞은 무를 사랑스럽게 쓸어 흙을 털어주었다.    


잎을 떼어낸 무와 당근을 들고 주방으로 왔다.

 

일단 무의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되겠지만, 벗겨본다.

당근도 흙을 털어 껍질을 벗기고 씻었다.

샐러드용으로 텃밭에서 뽑아 온 어린 시금치도 손질을 한다.

동글동글한 모양 그대로 썬다. 무와 당근 모두

소금과 후추 그리고 마늘 약간, 크러쉬드 레드 칠리 조금, 탱자즙 살짝, 레몬즙 살짝 마지막 엑스트라버진 오일에 무쳐 그릇에 담고.

발사믹 글레이즈를 뿌리고.

고소하게 볶은 잣을 빻아만 든 가루를 뿌리고.     


그래 사진을 찍어두자.

요리조리 사진도 찍어보고.     

이제 한 입.


오. 오. 맛있어. 맛있어.

무가

당근이

시금치가

달다.     


눈을 감았다. 주방에 가득한 어린 무의 향이 퍼져있다.

‘너 잘 자랐구나. 기특한 것’  


좌:위 러시피 대로, 우:딜, 코리엔더와 느억맘소스가 들어간 동남아식

   

내일은 모두 뽑아다, 그 모양 그대로 동글동글하게 잘라 깍두기를 담아 볼까? 아니면 무조림을 해볼까?

뭘 해도 맛있을 것 같다.


산천으로 귀촌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좀 있으면 저 끝까지 무청이 매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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