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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21. 2023

우아한 전원생활이라 말하지만, 겨울준비에 바쁜 시골생활

귀촌 이야기

동생 두부가 드디어 마당 한가운데 모셔두고 1년 6개월간 숙성시켜 놓았던 모래를 펼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난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 밖에 설치된 외등을 모두 켜고 풀을 뽑기 시작했다.

이 깜깜한 밤에 안경도 쓰지 않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데 무슨 짓이냐며 얼른 들어가자는 그녀의 말이 들리지가 않는다. 그녀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마당에 집시처럼 마구잡이로 자라난 잡초를 모두 뽑을 것이다.

    

저 망할 놈의 모래를 마당 한가운데 쌓아놓은 이유는 작년 5월 초, 두부에게 모래를 사 와야 한다고 말을 한 내 입 때문이다.     


거친 황무지 같았던 마당을 괭이와 삽으로 파고 호미로 나무 덩굴처럼 굵직하고 더덕같이 튼실한 잡초 뿌리를 걷어내고 잔디를 심었다. 그 밑 작업을 하기 위해 작업계획을 세우던 중 “골재상에서 모래를 어떻게 파는지 물어봐야겠어.”라는 말을 흘렸고, 그 말을 들은 동생이 골재상에 들러 주문하고 왔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난 마땅한 가운데 생긴 작은 언덕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열 평 남짓한 잔디밭에 뿌릴 모래를 한차 싣고 온 두부. 양을 보아하니 골재상 사장님이 덤으로 더 주신 듯한 모래 언덕이었다.    

 

이미 고양이들이 모래 언덕 주변을 뱅뱅 돌아가며 파고 오줌똥 마구마구 싸놓고 뒤엎은 현장이 곳곳에 보이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당황해 바로 두부에게 전화하고, 자신이 다 치울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모래언덕은 파란 천막 비닐에 덮여 고양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고 있다.     


엊저녁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손의 감각만으로 땅을 마구잡이로 퍼 재껴 몸에 탈이 난 걸까? 그래도 난 오늘도 열심히 잡초를 파내고 깨끗한 마당을 두부에게 선사할 거다. 그래야 ‘어머 언니 마당이 깨끗해서 할 수 없이 모래를 펴야겠네.’라고 말하겠지. 그렇지 않다면 ‘언니 마당에 풀이 많아서 다음으로 미뤄야겠어.’라고 할 것이다. 난 후자의 말은 듣지 않기로 결심했다.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그럼 일단 집안일이...

그래도 며칠 차가운 바람과 비 덕에 쉬었다고 오후가 되니 몸이 말짱하다. 사실 나도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바깥일은 대충 텃밭만 관리하며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차가운 바람이 싣고 떠났고, 따뜻한 바람이 다시 날 밖으로 밀어냈다.    

 

아차차.

주방 싱크대 주변에 누렇게 변색된 실리콘을 다 뜯어 자리 마감부터 해야겠군.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2m 70cm 길이의 싱크대에 실리콘을 쏘았다. 그리고 마감용 실리콘 스파출라로 쓰윽 밀어주었다. 옆 틈새에도 조심스럽게 실리콘을 쏘고 스파출라로 마감. ‘오호~ 잘했는데.’라는 셀프칭찬하며 동생에게 전화했다.



“두부야, 퇴근하고 올 때 실리콘 하나 더 사와.”

“언니 어떻게 했어?”

“그냥 했어. 그런데 나 정말 잘한 거 같아.”

“하나만 사가면 돼?”

“응, 욕실도 해야겠어.”     

셀프 칭찬은 그만하고 밖으로 나가자.


몸빼 위에 방역복을 덧입었다. 방역복이 여름엔 모기를 막아주더니 이젠 추위와 먼지를 막아주고 있다. 요놈은 시골 생활에 필수 아이템임을 다양한 상황에서 보여주고 있다.

바구니와 호미 그리고 앉은뱅이 방석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내 눈에 들어온 모래더미. 아무리 마당을 깨끗이 치우면 뭐 하랴. 동네 모든 고양이와 개들의 화장실이 되어주고 마당 한가운데를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울 엄마의 부인병에 좋다던 질경이를 정말 열심히 캐고, 씻고, 말려서 드렸었는데 오늘따라 질경이도 쓸모없는 풀데기로 보인다.


와~ 엊저녁에 나 뭐 한 거야. 모래 주변을 파내고 엄청난 풀을 뽑았었나 보다. 초토화돼 있다.      

꼬박 3시간을 앉아서 풀을 뽑았나 보다. 해가 져버렸다.

다행히 빗물이 흘러가는 고랑 주변을 빼곤 잡초를 다 뽑아 버렸다.

그래도 다행히 겨울이라 잡초도 살겠다고 뿌리들이 깊이 들어가기 전에 캐내어 다행이다. 어차피 한 번은 뽑아야 하는 일이었다.



두부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밥은?”

“나 밥 못해, 이제 정리 끝내고 들어가려고.”

“뭐 먹을까?”

“짜장면.”

“알았어! 사서 들어갈게.”     

집에 들어와 누워있을 틈도 없이, 길동이 씻기고 밥 주고 실리콘이 잘 굳었는지 확인하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두부가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들어온다.

짜장면, 탕수육에 군만두, 볶음밥까지 사 왔다. 내가 포장을 뜯고 있는 사이 두부가 싱크대 실리콘 마감을 보더니, 감탄한다.



“언니, 진짜 우리 집 지어도 될 것 같아.”     

그러게 이놈에 손이 문제다. 왜 가만히 있질 못하는 거야!

이젠 정말 집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슬슬 든다.

“나 오늘 냉장고 청소는 못 할 것 같아.”

“내가 할게. 언니는 좀 쉬어.”

    

예전엔 손이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자꾸 생채기가 생긴다. 그것도 왼손만. 나 왼손잡인데

정말 누워있고 싶었다.

잠시 주방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데, 우리 반려묘 노랭이가 추운지 문 앞 신발에 앉아있다.

그러니 어쩌겠어, 난 두부가 안 입겠다고 구석에 박아둔 니트를 꺼내 노랭이 방석을 만들었다.

“노랭아, 집에 들어가지 왜 나와 있어. 올해도 우리 따뜻하게 살자.”   

  

분위기 잡고 전원생활이라 말하고 싶지만, 농사만 안 지었지,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부처님, 하느님, 알라, 예수님, 별님, 달님 하여간 모든 신님 이번 주까지 겨울 채비가 끝나게 해 주세요.   

  

노랭아 무서운거 아니야

https://brunch.co.kr/@ginayjchang/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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