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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Nov 14. 2023

나, 아무래도 미장에 소질 있나 봐.

귀촌 이야기

에구. 에구. 에~구구구구구


어깨에 커다란 어깨 뽕을 백만 개는 매달고 누워있는 내 몸은 뜨뜻한 방바닥에 찰싹 들러붙었다. 틈만 나면 자다 깨고, 다시 누웠다 자고, 이러다 겨울잠에 빠질 것 같아 몸을 일으켜 식탁에 내 몸을 옮겨 놓았다.     


정신 차리고 앉아 노트북을 열고, 다시 멍하니 바라보다 어제 치우지 못한 철판이 생각이 난다. 식탁을 손으로 디디고 팔에 힘을 주는데 그냥 구부러져 잘 펴지지 않는다.

아놔~ 아직 한창때인데 노인네 마냥 에구구구구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온다. 이 꼴을 동네 할머니들이 보면 “젊은것이...”라는 말이 뻔할 텐데.      

어제 온 손님이 “아니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하고 쯧쯧쯧 혀를 차며  한참 바라보는데, 말은 “그래도 해 놓고 보면 뿌듯하잖아요.”라고는 했지만, 내가 좀 극성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제부로 두부와 나의 겨울맞이 집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김장?이지 않을까 싶지만, 그것도 여기저기서 챙겨주는 김장김치가 생긴다면 동치미 정도 담지 않을까 싶다.     


아침 댓바람부터 텃밭으로 나갔다. 배추, 무, 당근, 시금치, 쪽파, 대파, 치커리, 상추, 청경채, 유채까지 잘 자라고 있고, 볏짚을 덮어 준 2년생 아스파라거스도 잘 버티며 살아주고 있다. 그동안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입씨름이 되기도 했고, 요 며칠 쌀쌀한 날씨가 심상치가 않아, 나무가 된 토마토, 가지, 고추를 뽑아버렸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할머니들이 우리 집 앞을 지나다니며 “잘혔네. 진즉 뽑았으야제.”라는 말을 하고 가실 게다.     


여름 내내 따먹고, 이틀 전에도 수확했었는데 토마토, 가지, 고추 수확량이 제법 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고춧잎과 애기고추로 만든 볶음 나물을 오늘 저녁 손님상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빨간 고추는 말리고, 파란 고추는 다져서 냉동실에 보관.     


방울토마토는 썬드라이드 토마토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건조기에 말려 엑스트라 올리브 오일에 담가 저장. 아직 익지 않은 토마토는 반은 소금에 절이고 반을 소스를 만들어 샐러드용으로 쓰기로 결정.     


가지는 만두용으로 몇 개 남기고 모두 건조하기로 했다.    

토마토, 가지, 고추를 뽑은 자리에 두부가 퇴비를 뿌려 삽으로 흙을 뒤집고, 나는 호미로 흙과 퇴비를 섞어가며 두둑을 만들었다. 그 위에 봄동, 시금치, 완두콩 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묻어주고, 조금 남은 자리에 무씨를 뿌려줬다. 사실 무는 지금 저 옆에서 잘 자라고 있지만, 날씨가 뒷받침되어 준다면 쌉싸름하고 부드러웠던 무잎에 뜨끈한 밥 한술 올려 갈치속젓 척 얹어 다시 먹고 싶다는 얍삽한 마음으로 조금 뿌려 보았다.      

시멘트와 모래가 섞인 몰탈을 개겠다고 왔다 갔다 하던 두부가 조용했다. 불안한 마음에 호미로 땅을 골라주다 말고 동생이 있는 곳으로 조용히 가봤다.

도로 쪽 벽 앞에서 두부가 커다란 고무통에 몰탈과 물을 넣고 온몸으로 낑낑거리며 섞고 있었다. 몰탈을 물과 섞는  보통 일이 아니다. 몰탈 한 포대만 섞어도 몸살이 나는데 작년엔 시도 때도 없이 작업을 했었다.      


“두부야, 물이 너무 많은데! 황토가 덜 들어갔다. 조금 더 넣어봐. 가루 접착제 넣었어?”

“이제 넣으려고.”

“주방 세제는?”

“넣을게….”

아니 저 뜨뜻미지근한 반응은 뭐지?

“다되면 불러.”

“응”   

  

난 다시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향했다. 텃밭 정리와 마당 정리가 끝나가는데도 부두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어 녀석에게 가봤다.     

 

웃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몸을 옆으로 구부려 가장 큰 흙손에 잘 섞인 몰탈을 올려 작은 흙손으로 바르려는데 잘 안되는지 ‘왜 안 되는 거야!’라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뚝뚝 떨어지는 몰탈을 두부가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핸드폰에 저장하려 살금살금 다가가는 나의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던 두부.     

 

“언니, 흙손에서 시멘트가 잘 안 떨어져.”하고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날 바라보던 녀석이 다시 벽을 쳐다봤다.

“줘봐. 혼자 하려고 했어?”

“언니 힘들까 봐.”

“잘 봐. 위에서 아래로 내리지 말고 밑에서 올려봐.”   

   

사실 전에 살던 주인이 나무를 덧대 만든 창고 벽이라 여름내 온 비와 뙤약볕으로 나무가 들떴다. 그리고 작년에 그 위로 미장했던 몰탈까지 들떠 간당간당 위태로운 상태였다. 조금만 힘을 가해도 군데군데 시멘트가 부스러져 떨어지는 벽에 덧칠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자 이렇게. 어때 붙지. 넌 밑 부분만 해 위쪽은 언니가 할게.”  

 

아무래도 나, 미장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작년 아무것도 없던 벽에 미장할 때보다 작업 부위는 작았지만, 작업시간은 비슷했다.

아직도 잘 안되는지 심드렁한 표정을 한 두부에게 거의 방치 상태로 삐져나온 옆집 장미 나뭇가지를 자르라고 하자, 대답도 안 하고 후다닥 달려갔다.


고무통에 가득 차 있던 황토 시멘트 믹스는 어느새 반으로 줄었고, 벽도 다 칠했다. 한 포대가 넘는 양을 반죽해 놓은 덕에 남은 반죽 처리가 남았다. 뭐 하지?

“두부야, 고무통 수돗가로 옮기자.”

“왜? 수돗가도 덧칠하려고?”


난 고개를 끄덕이고 고무통 한쪽을 들고 두부에게 들으라는 몸짓을 했다.

남은 반죽을 수돗가에 덕지덕지 처발라도 남았다. 한참을 반죽을 바라보던 나에게 “언니 내가 저기 전봇대에 부어놓을게. 손님 올 시간 다 돼간다.”

뒤를 부탁하고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텃밭이 걱정됐다. 이놈에 고양이 노랭이가 새로 작물을 심은 곳을 파헤쳐 꼭 똥을 싸 놓고 간다.

얼른 이불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수돗가에…, 고무통이 그대로 있다.

두부, 이 녀석 또 까먹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섞인 몰탈이 좀 이상하긴 했어!

주방 세제 넣는 거 까먹은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며 집 쪽을 바라봤다.

산책을 다녀온 두부와 길동이 소리.     


이미 다 했는데 따져서 뭐 하겠어.

겨울날 준비를 끝낸 우리는 이제 따땃한 방바닥을 굴러다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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