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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an 13. 2024

시골 마을에 주민 5년 차, 동네 언니가 생겼어요

귀촌 이야기

신리마을엔 볼이 붉어라 한 이장님과 소녀 소녀 한 이장님 부인이 살고 있습니다.


가끔 저 멀리서 이장님의 음성이 들릴락 말락 합니다.

“신리 마을 주민 여러분, 오늘은 oo어르신 생신이십니다. 마을회관에 오셔서 같이 식사하시고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리마을 주민 여러분, 내일 oo어르신 장남 결혼식입니다. 마을회관에 oo시까지 모여 출발할 예정입니다. 모두 참석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신리마을 주민 여러분, 보름맞이 윷놀이 대회가 있습니다. 시간을 내시어 대회도 참석하시고 선물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점심 준비가 되어있으니 오셔서 식사하시기 바랍니다.”

“신리마을 주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멘트를 담은 마을 방송은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사는 시골이라 핸드폰으로 발송한 문자를 잘 안 보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방송은 필수입니다.


“이장님 우리 집은 잘 안 들려요.”

“나도 아요. 근디 방송은 해야되라. 문자 발송도 갈 것인디.”라며 붉은 볼이 미안함에 더 붉어지는 이장님입니다.

가끔 이장님과 친해 보려 농담 같은 소리를 던지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착한 이장님이십다.  

    

거기다 이장님 부인은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니는 회사에 월차를 내고 모든 음식 준비를 홀로 만드시는 분이죠.

마을 분들과 점점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도와드리고 싶어요.”라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려요.

“뭐더러 힘들게 한다요. 혼자 싸복싸복 하믄 된디. 여기 와서 살아주는 것만도 감사하요.”라며 인상 한번 쓰지 않고 장만해 오신 그 많은 음식에 숟가락을 얹을 때마다 두부와 나는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두부와 나는 마을을 위해 애쓰시는 이장님 부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어요.     


무생채

텃밭에서 잘 자란 무를 얇게 채를 썰어 쪽파와 당근을 무와 같은 크기로 썰어 볼에 담아놓았다.

벗긴 무와 당근 껍질을 푸드 프로세서에 넣고 양파와 사과도 썰어 넣어 위이잉, 위이잉 갈아 베보자기에 넣어 즙을 짠다.

즙을 짜아 넣은 볼에 고춧가루, 갈아 놓은 빨간 생고추, 다진 마늘과 생강, 매실액, 탱자즙, 설탕, 액젓, 절구에 간 새우젓을 넣은 양념장을 만든다.

무와 당근, 쪽파가 들어있는 볼에 양념장을 넣고 잘 버무린 후 간을 보고 갈아 놓은 깨를 넣어 무생채를 만든다.  

   

시금치, 청경채 볶음

텃밭에서 땅딸보 시금치와 청경채를 뽑아내 뿌리를 떼어내고 손질한다.

깨끗이 씻어 뜨겁게 달군 웍에 기름을 두르고 먼저 다진 마늘과 생강 그리고 갈아 놓은 매콤한 마른 고추를 빠르게 볶은 다음 양파와 당근을 넣고 웍을 돌립니다.

이젠 땅딸보 시금치와 청경채를 넣습니다.

여기에 액젓, 간장, 설탕을 넣고 재빨리 섞어줍니다. 조금만 늦어도 간장과 액젓이 타버려 쓴맛을 낼 수 있습니다.

불을 끄고 갈아 놓은 깨와 참기름을 넣고 섞어줍니다.  

   

채소무침

가시가 많은 청오이의 가시를 숟가락으로 드르륵 밀어 벗긴 후 물에 한번 씻어 줍니다.

청오이를 길게 썰고 다시 도마에 올려 어슷어슷 얇게 썰어줍니다.

텃밭에서 뜯어 온 상추가 작아서 씻어 물기만 제거해도 될 정도의 크기입니다.

파는 길쭉길쭉 가늘게 썰어줍니다.

채 썬 당근과 듬성듬성 썬 달콤한 쪽파도 넣습니다.

고춧가루, 조선간장, 양조간장, 매실액, 식초, 물엿을 넣고 버무려 줍니다.     


달걀, 오이, 양배추, 아보카도 샐러드

달걀을 삶아 껍질을 깝니다.

양배추를 채를 썹니다.

오이 가시를 숟가락으로 긁어내고 씻어 길쭉하게 어슷하게 썹니다. 그리고 소금을 뿌려둡니다. 5분 후 물기를 꼭 짜냅니다.

볼에 달걀을 넣고 손으로 으깨줍니다. 거기에 양배추와 오이를 넣습니다.

마요네즈를 넣는데 재료가 버무려질 정도의 양만 필요합니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합니다.

어차피 버린 손으로 섞어줍니다.

거기에 껍질을 까고 깍둑깍둑 썬 아보카도를 넣어 살살 돌리듯 섞어줍니다.  

   

바지락이 들어간 배추 우거짓국

배추를 절일 때 떨어진 빳빳한 배춧잎으로 만든 우거지입니다.

짠물을 빼고 총총총 썰어줍니다.

다시마로 국물을 낸 육수에 된장을 풀고 다진 마늘과 우거지를 넣습니다.

한소끔 끓으면 바지락을 넣습니다.

간을 봅니다. 싱거우면 소금이나 간장을 넣습니다.     


밥과 달걀찜

기장과 조, 보리가 들어간 쌀을 씻어 1시간 정도 불립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솥에 쌀을 넣고 그 위에 소금 후추 강하고 풀어놓은 달걀 위에 송송 썬 쪽파를 섞어 넣은 사기 볼을 올립니다.

한 5분에서 7분 정도 끓이면 보글보글 올라옵니다.

불을 줄이고 10분 정도 둡니다. 아니 달걀찜이 들어갔으니 3분 정도 더 올려야겠네요.

불을 끄고 한 5분 뜸을 들이고 뚜껑을 열어 밥을 풉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준비해 봤는데 이장님 부부가 좋아하실지 걱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금을 뿌리고 올리브오일을 바른 두꺼운 부챗살 앞뒤 옆 모든 면을 뜨거운 무쇠 팬에 구워냅니다. 다시 접시에 담아 레스팅 시켜줍니다.    

 

이제 이장님 부부가 오셨습니다.

세상에 두부가 총회에서 술을 잘 마셨다 해도! 너무 많이 사 오신 건 아닌지.

참이슬과 맥주 두 상자가 생겼습니다.      

“뭘 이렇게 많이 차렸다요.”

“뭐 차린 게 별로 없어서.”

“이거 아보카도 지라?”

“좋아하세요?”

“이것이 이상하게 맛나요.”라는 말로 대화는 시작됐지요.    


레스팅 한 부챗살을 썰어 한 점 한 점 천천히 구웠습니다.

"한번 구워 내서 그런지 맛나네."

"불향이 조금 배어있어서 그래요."


처음으로 이장님 부부와 마을 일이 아닌 일상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이장님 부부가 처음 만난 날부터 큰아들과 쌍둥이 아들, 아들만 셋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애들이 장성해 IT 희사를 차렸고 개발한 웹이 히트해 구글에서 20억을 보너스로 받았다고 이야기하시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오히려 이장님 부부는 동네 분들은 아들이 컴퓨터 고치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다며, 아들의 대단함을 알아주는 우리를 더욱 반겨주셨습니다.   


이번엔 목살을 무쇠 팬 위에 올렸습니다.

"무쇠판이 좋긴 좋아요이. 다음엔 우리 집서 장작불에 한번 구워 먹게요."

"저희는 좋아요."

  

밥을 먹는 동안, 이장님 부인과 언니 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해 든든한 동네 언니가 한 명 생겼습니다. 그리고 언니의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며 다음 모임에 초대까지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초대에 응해주셔 감사하다는 말에, 오히려 시골 마을에 젊은 사람이 이사 와서 마을 일에 신경을 써줘 고맙다는 인사를 도리어 하십니다.

우리는 자주 오가자는 말로 아쉬움을 달래고 이장님 부부를 배웅하고 들어왔습니다.  

   

“언니, 초대하길 잘했지.”

“응, 나도 이제 든든한 언니가 생겼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산다는 게 별거 있나요. 오가며 쓸데없는 이야기도 주고받고, 웃으며 하루 잘 지내라 인사해 주는 이웃이 있다는 게 좋은 거지요.   

  

두부와 나는 시골에서 참 잘 살고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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