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임 Dec 31. 2023

명실공히 산천 마을 주민으로 참여한 총회

귀촌 이야기

마을 분들이 모두 모이는 날.

해가 가는 12월, 마을 분들이 모두 만나 한 해 동안 지나간 마을 일어난 크고 작은 일을 이장님과 노인회장님 그리고 부녀회장님이 설명을 듣고,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다음 해를 무사히 지내기를 기원하는 자리다.     

이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2023년 OO마을 총회
일시: 12월 23일 오전 10시
장소: 마을회관
*가구당 15,000원 (적십자회비, 불우이웃 성금) 잔액은 음식 준비   

  

문자를 받고 이장님께 전화했다.

“이장님, 저희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특별히 준비하는 건 없응께 신경 쓰지 마쇼.”

“그럼 부녀회장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다시 부녀회장님께 전화했다.

“내일 음식 준비 도와드리려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총회 날 그냥 오쇼. 9시까지 오면 돼요.”

통화를 마친 두부가 “언니, 그날 9시에 오라는데.”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전에도 보니까, 어르신들 모여 음식 장만하고 한잔 하는 것 같던데. 우리 오면 불편해서 안 부르나 보다. 그날 좀 일찍 가지 뭐.”     


그리고 마을총회 날.

우린 마을 특성상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관계로 아침 일찍 서둘러 마을회관으로 출발했다.

내 나이가 10대나 20대도 아니고 30대도 아닌 50대이면서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한다는 건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난 이 마을에서 다시 ‘아가씨’라 불리고 있다. 더군다나 나와 사는 두부는 30대,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애기’다.     


마을회관에 도착하며 이장님을 만났다.

“일찍 왔다요. 음식은 우리 집사람이 다 해놓았소. 요거나 날라주쇼.”

이장님 차에서 내린 음식과 음료, 과자, 과일 그리고 그릇을 주방으로 옮겨 놓았다. 커다란 가스스토브에 솥을 올리는 이장님께 양은 대야에 받은 물을 주방 창문을 통해 건네주며 떡국을 끓일 준비도 마쳤다.

“커피 한잔하소.”라며 정수기 쓰는 법과 커피가 있는 곳을 알려주신다.

“참 요거, 집사람이 갔다주란디.”

“우와~ 김치네요. 감사합니다.” 먹음직스러운 김장김치가 우리에게 왔다.     

우리가 마을회관에 처음 온 것도 아닌데, 올 때마다 이것저것 자세히 알려주는 자상한 이장님. 두부가 세 잔의 달달한 커피믹스를 타오고, 방에 앉아 할머니들이 오길 기다렸다.   

  

10시가 지나도 잠잠하다.

이장님이 “항상 제시간에 오는 사람이 없소이.”라며 마이크를 켜시고 “아. 아. 10시에 마을총회가 시작됩니다.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셔서 점심도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더니 “일찍 와줘서 고맙소.”라고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10시 30분이 지나서야 한분 한분 들어오시고, 우리는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다 아예 주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밖에서 떡국을 끓일 준비 하는 이장 사모님에게 다가갔다.

“이 많은 걸 혼자 다 하셨어요? 저희 부르시지.”

“허버 하도 않았네요. 어제저녁에 혼자 싸복싸복 했지.”

“어제저녁에 전화드렸을 때 오라고 하시지.”

“전화 안 왔는데!”

“어! 이장님에게 부녀회장님 전화번호 알려 달라고 해서 통화했는데.”

갑자기 말을 멈추신 이장 사모님이 “나 부녀회장 아니야.”라며 손가락을 입에 대고 있다.

“정말요. 매일 음식 장만해 오시기에, 부녀회장님인 줄 알고...”

“이런 날은 제가 음식 준비해요.”라며 수줍게 말씀하신다.

마을 주민 하나하나를 살피시는 이장님의 파워 뒤엔 조용히 내조를 아끼지 않으시는 사모님이 계셨던 거다.      


“참, 김치 감사해요. 바쁘셨을 텐데 저희 것까지 챙겨주시고. 요리하시는 모습 사진 찍어도 돼요?”

“뭐 특별한 것도 아닌데. 근디 사진은 찍어 뭐한다요?”

“제가 마을 이야기를 쓰고 있거든요.” 사모님께 브런치에 올린 마을 이야기를 보여드리자.

“작가고만.”

“작가는 아니고 어쩌다 보니 쓰게 됐어요. 혹시 불편하실까 봐 마을 이름은 안 적었습니다.”

“우리 마을 이름을 왜 안 써? ‘신리’라고 밝혀야지.”

“그래도 되나 몰라요.”

“나쁜 얘기 아니고 좋은 얘기면 써도 되제.”

“그럴까요.”라며 새로 들어온 마을 사람에게 살뜰하게 챙겨주시는 그녀에게 감사했다.

     

“떡국은 뭘 넣어서 끓이나요?”

“굴이랑 소고기를 마늘, 간장으로 간해서 미리 재워둬요. 그리고 떡은 저 솥에 물이 끓기 전에 뜨거운 물에 담그고. 굴이나 떡은 오래 끓이면 맛이 없잖아. 그런 다음 물이 끓으면 양념한 굴과 소고기를 넣고 간을 해요. 이제 반을 떠서 주방 가스레인지로 보내고 나머지는 여기서 끓이면 돼요. 물이 끓죠? 이제 떡을 건져 넣어요.”

마을 주민이 다 먹을 많은 양의 떡국을 끓이는 데도 탱글탱글한 떡에서 그녀의 노련함이 전해졌다.     


난 안으로 들어와, 젊은 60대 언니들 그리고 가장 나이가 어린 두부와 수육과 마늘, 고추, 새우젓 그리고 콩나물무침, 시금치 무침, 무나물, 김치, 마지막으로 과일과 디저트용 젤리와 사탕을 그릇에 담아 상을 차렸다. 두상은 마을 할아버지들, 두상은 방에 계신 할머니, 또 두상은 마루 한쪽에, 그러다 늦은 마을 분들을 위해 다시 한 상을 차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때 하하, 호호, 소리에 섞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웃음소리에 둘러보니, 볼이 벌그죽죽해서 제일 나이가 많았던 왕할머니 옆에서 콧소리를 내가며 재롱을 떨고 있는 두부 발견.


그러더니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안 돼요. 왜 이래요. 묻지 말아요~”라며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손을 휘저어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모두 두부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왕할머니가 두부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술을 따라주고 있는 것이었다. 동생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한잔하자고 부르기 시작하고, 급기야 총각을 소개해준다는 이야기가 나와 시집갈뻔한 두부를 구출해 나왔다.    

 

“나 소주 한 병은 마신 것 같아.”

“응, 그래 보여. 난 안 마시길 잘했지.”

“옹, 헤헤.”

“똑바로 걸어.”

“언니, 우리 진짜 마을 사람으로 인정해 준 거 같지.”

“응, 이제야 인정해 주는 것 같더라. 더 잘하고 살자.”

“그래야지. 시골에서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는 게 정말 힘들다던데.”

“고생하신 이장님 부부 초대 한번 할까?”

“좋은 생각이네. 전화 한번 해보자.”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드넓은 논이 펼쳐지고 아직 배추가 쌩쌩하게 살아있는 마을 길을 걸으며, 훈훈했던 마을 분들과의 한해를 지내며 재미있던 일들을 곱씹어 본다.     

이젠 명실공히 마을 사람도 됐으니,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귀촌 이야기'아닌 '신리 이야기'로 써야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