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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5. 2024

처음이라

14. 교육세는 걷어서 어디에 쓸까?

아이들을 보내고 쓰러질 듯 탕비실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위에 몸을 쭉 뻗어 펼쳤다.

"수고하셨어요. 아이들은 즐거워 보이던데."

"첫날이라 그래요. 아이들 하나하나 보느라 신경 써서 그래. 작년 한 해 못 봤다고 아이들이 고새 달라졌네요."

"하루하루가 다르죠."

"선생님은 애들 좋아하는 게 보여."

"제가요?"

"진짜 웃음을 짓는 게 좋아서요. 인상 쓰면서도 웃잖아."

"저도 화나면 무서워요."

"그럴 것 같아."     


나는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시원한 커피를  만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 식재료 주문 이야기를 할까요?"

"그 문제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교육원에서 들어온 동아리 지원비는 담당 선생님 통장으로 들어온다. 고로 모든 식재료는 윤 선생님이 구매해야 한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라고 볼 수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둘 다 할 말이 없어 눈치만 보고 있다.

   

"일단 비용면에서 인터넷 주문은 택배비가 만만치가 않아요. 마트에서 사야겠죠."

"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럼 윤 선생님이 힘들 텐데. 주변에 마트라고는 하나로 하나죠? 게다가 공산품 외에는 물건도 없고."

"가보셨어요?"

"월요일, 선생님 만나고 가는 길에 들러봤지. 택배비 아껴서 애들 돼지고기라도 사서 먹여야지요. 에고."

"제가 주말에 집에 갔다 오는 길에 사 오면 될 것 같아요."

"뭐 그럼 그렇게 합시다. 주말 전에 문자로 사야 할 물건 목록 보낼게요."

"네."


또다시 정적이 흐르고...

"참 기가쌤한테 가마솥이랑, 도마, 부르스타 사달라고 했는데."

"그냥 동아리 예산에서 살게요."

"그래요. 리트릴장갑도 필요한데..."

갑자기 윤 선생님 눈이 번쩍 뜨이더니 "그건 과학실에 많아요. 대·중·소 하나씩이면 되겠죠?"라며 목소리가 높아진다.

사실 우리가 돈 때문에 서로 눈치 볼 일이 아닌데. 동아리에 필요한 물품구매에 대한 미적지근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2시간 안에 요리가 완성될까요?"

"오래 걸리겠죠."

"작년엔 어땠어요?"

"10~11시쯤 끝나고 갔어요."

"일단 해보고 결정하죠. 애들 라면이라도 끓여 먹였어야 했는데."

"공부방에서 먹을 거예요."     


에 놓인 컵을 만지작거리며 대화하는 우리를 지켜보던 봉쌤이 옆에서 '허. 참. 허, 참'을 반복하고 있다.

"아니 왜 둘 다 기운이 없어?"

"돈이 없잖아!"

"맞아요."

"그건 그렇지."

그렇게 우리는 각자 앞에 놓인 잔을 만지작거렸다.    

 

가방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윤 선생님 구매할 재료는 내일 문자로 보낼게요. 봉쌤 나간다. 다음 주에 봐."

"다음 주 뭐해요?"

"죽순 덮밥."    

 

금요일.

주방 식탁에 앉아 다음 주 수업에 필요한 요리재료 목록을 작성 중이다.

죽순 덮밥을 하려면 쌀을 사야지. 당근은 큰 놈으로 3개, 양파 중 1망, 통마늘 중 1망, 브로콜리 주먹 크기로 3개, 참기름 1병, 소금은 고운 천일염, 통후추, 설탕, 대파 반 단, 가니쉬용 쪽파 반 단, 주키니 호박 2개, 굴소스, 간장, 돼지 앞다릿살 기름 적고 잘게 자르지 않은 통고기로 900g 그리고 seoginkitchen@com 8인용 가마솥이라 쓴 문자를 윤 선생님에게 문자로 보냈다.     

윤 선생님에게서 질문 없이 깔끔하게 “네.”라는 대답이 왔다.

정말?    


일요일

윤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간장은 어떤 간장을 사야 하나요? 국간장, 진간장, 양조간장 간장 종류가 너무 많아요.’

엥, 갑자기. 바로 답장을 해줬다. ‘양조간장이요.’

윤 선생님 문자

‘브랜드는요?’

‘마늘은 통마늘을 말하는 거죠?’

‘참기름 브랜드는 어떤 걸 살까요?’

‘소금은 작은 용량으로 살까요?’

‘굴 소스가 여러 가진데.’

'선생님 도마는요?'


재료 하나 살 때마다 문자가 계속 온다.      

재료 리스트만 보내주면, 편할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하게 됐다.     

그나저나 마트에서 답답해할 선생님을 위해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통화 가능해요?’

선생님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생각보다 복잡해요. 종류도 많고, 용량도 가지각색이고,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금은 ㅁ에서 나온 2kg. 간장은 ㅅ, 860ml. 굴 소스는 ㅎ에서 중간 치수하고 큰 크기 있지요? 큰 거. 마늘은 알 굵은 놈으로다가. 쥬끼니가 작다고요? 그럼 3개 사 와요. 양파는 큰 사이즈 중간크기 망에 들은 거. 네. 네. 참기름이요. ㅊㄱ라고 유리병에 들어있는 거 찾아봐요. 있어요? 브로콜리? 작다고요. 그럼 두 팩 사 오세요. 통후추는 ㅇ에서 나온 통 흑후추라고 있거든요. 네 노랑 뚜껑. 450g 맞아요. 도마는 읍에 있는 기물점에 내가 얘기해 둘게요. 부루스타? 문자로 사이트 보내줄게. 수고하셨어요. 조심해서 와요.”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한참을 바라봤다.

큰일이다. 앞으로 주말마다 선생님의 문자를 기다려야 하나?

    

동생이 옆에서 “물건 살 때마다 이럴 거야?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언니 교육청에 돈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런데 왜 자원봉사를 해!”하며 씩씩거리고 있다.

“처음이라 그래.”


계속 구시렁대는 동생 말을 못 들은 척 마당에 돋아난 풀을 뽑고 있지만 나도 이해가 안 간다.

멋지고 비싼 나무도 심고, 잘 쓰지도 않는 시설이나 학교 물건엔 돈도 많이 쓰는데, 왜 아이들 교육비용엔 찌질 찌질 돈을 쓰는지.

사실 겉보기는 뻔지르르해 보여도 아이들 하나하나에 들이는 교육비를 보면 왠지...

이 지역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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