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셨어요. 여기 가마솥이요.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아직 안 왔어요. 오후에는 올 것 같은데.”
“오겠죠. 아직 시간 있으니까. 아이들 프린트물은?”
“제가 수업 시작 전에 가지고 올게요.”
냉장고를 열어 선생님이 사 온 재료를 확인하는데, 브로콜리가 활짝 피어나 있었다. 돼지고기는 비계가 너무 많아..., 주키니 호박이 작다고는 했지만 이렇게나 작은 주키니 호박은 처음 봤다. 뭐... 파프리카 넣으면 되지.
“제대로 봐온 거 맞나요? 마늘이 안 좋아서 마트를 두 군데나 갔어요. 양파는 집에서가져와서 상태가 별로죠.”
비계 많은 부위면 어때, 이렇게 신경 많이 써주는 선생님이 있는데.
“잘 사 왔네. 가끔 요래 생긴 못난이들이 나올 때가 있다니까. 거기다 품질은 안 좋은데 비싸. 잘 산 거야.”
난 윤 선생님의 손을 잡아주고 밖으로 나갔다.
자루를 들고 대밭으로 왔다.
어느새 죽순을 탈피하고 쭉쭉 뻗어 올라가기 시작한 대나무가 여기저기 보이고 숲 안쪽으로 죽순들이 우후죽순 모여있다. 아무래도 햇볕이 잘 드는 평지에 있어 금세 커버리는 죽순을 주말에 다시 한번 와서 따 놓아야 재료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요것이야말로 자기 무덤 자기가 판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인데 오동통한 죽순이 자루에 들어갈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분명 나는 전생에 소주방에서 일하던 나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죽순을 자루에 가득 채워 차에 실어 놓고 기가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쌀 포대를 테이블 가운데 모셔두고 둘러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 쌀이 왔어요.”라며 모두 쌀을 가리킨다.
“그래, 오늘은 밥 먹고 가자.”하며 아이들 어깨를 토닥여줬다.
냉장고 문을 열고 죽순을 꺼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제 요리를 해 먹어도 되는 죽순이 여기 왔습니다. 나머지 재료들도 다듬고 씻어서 ‘죽순 덮밥’을 해 먹을 거야.”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은 밥 먹고 가요?” 아침에 안 씻고 나온 것인지 아니면 뛰어놀아 그런 것인지 몸에서 오래된 향취나 풍기는 양준이가 눈을 반짝이며 내 팔을 잡고 얘기한다.
“응. 밥 먹고 갈 거야. 먼저 선생님이 너희에게 당부할 이야기 하나를 할 거야.”
“첫째. 동아리는 너희가 만든 거다. 선생님은 도와줄 뿐. 너희가 책임진다.”
“둘째. 2인 1조로 요리한다. 서로 도와줘며 같이 호흡을 맞춘다. 하지만 조리할 때는 개인전이야.”
“셋째. 선생님보다 요리를 잘하기 전까지는 선생님 말씀을 잘 따라야 해.”
“넷째. 팀장은 팀원들 잘 살펴주고, 팀원들은 팀장을 잘 보조해 준다.”
“다섯째. 이론과 실기를 같이한다. 다 외워야겠지?”
“여섯째. 요리하는 날은 샤워하고 깨끗하게 학교에 오는 거야.”
“6명이니까, 하나씩 기억하고 서로 안 지키는 팀원이 있으면 친절히 알려주는 거다. 알겠지?”
“네.”
“우리 이제 시작해 볼까. 여기 프린트물 하나씩 가지고 앉아. 쌀을 씻어 밥 짓는 방법을 알려 줄 거야. 그리고 칼 잡는 법을 배우고 채소를 다듬어서 써는 방법도 알려줄 거야.”
아이들은 프린트에 적힌 납작 썰기, 깍둑썰기, 채썰기, 다지기, 막대 썰기, 나박 썰기, 반달 썰기, 어슷썰기, 통썰기 등 썰기에 대한 글을 돌아가며 읽어보고 볼펜으로 손 모양과 잡는 방법을 흉내를 내며 “나 잘하지?”라며 엄청난 요리사처럼 손을 움직이고 있다.
“자 쌀을 씻어 볼까?”
“이 쌀은 지역 농협에서 일괄 수매해서 판매하는 쌀로 이 지역 대표 쌀이야.”
우리가 구매한 ㅎ쌀은 이 지역 대표 쌀 브랜드다. 품종은 히도메보레라는 품종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많이 재배하는 쌀 중 하나. 21.550㏊ 면적 논에 쌀을 재배하는 지역답게 군 최고소득원인 쌀로 밥을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쌀 포대를 풀어 쌀을 네 컵을 볼에 담았다.
“네 컵이면 우리 다 먹을 수 있겠지? 너희 밥 몇 공기 먹어?”
“그리가 많이 먹어요. 두 공기는 먹을걸요?”
손을 들고 일어선 재범이가 “저도 두 공기 먹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럼 반컵 더."
볼에 담은 쌀을 개수대로 가져가 물을 넣어 흔들어 씻고 물을 빼준 다음 손으로 박박 문질러 씻지만, 너무 손에 힘을 주지 말라고 설명하고 아이들에 한 번씩 쌀을 씻어 보도록 했다. 그다음 물을 넣고 헹구기를 서너 번 반복하도록 했다.
“따뜻할 날씨엔 30분, 추운 날씨엔 1시간 정도 불려줘야 해. 하지만 비가 오거나 날이 더운 날에는 잘라질 수 있다.”하고 나는 열심히 설명하고 아이들은 쌀만 들여다보고 있다.
“다음 수업엔 너희가 씻어서 불리고 밥을 지어야 해 잘 기억해라.”
“네.”
“그리고 여기에 밥을 할 거야.”라며 아이들에게 가마솥을 들이밀었다. “우리 저기에 있는 쿠쿠에 밥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쿠쿠가 있는 벽장으로 디엔이가 달려가 쿠쿠를 꺼내 들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