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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5. 2024

첫 수업, 설레는 마음을 감추고

15. 윤쌤 잘했어. 사다 보면 물건 보는 눈이 생길 거야.

“잘 사 왔겠지...

첫 수업, 아이들에게 줄 레시피와 썰기에 관한 프린트물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조리복으로 갈아입었다. 앞치마를 가방에 넣고 집에 사두었던 빨강, 노랑, 주황색 파프리카와 전처리를 해둔 죽순까지 챙겨 집을 나와 차에 가방을 실었다.

학교로 향하기 전 텃밭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가슴을 쓸어내린 뒤, 차에  올랐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중국 공장들이 문을 닫아 미세먼지가 줄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인가 요즘은 재를 넘을 때 맑은 날에만 보이는 바다가 저기 저 멀리까지 보인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솜사탕 같이 앉아 있고, 푸릇푸릇한 한 나무가 만들어준 자연이 형상한 그림자 그림을 밟고 지나가면, 나도 왠지 저 녀석들처럼 맑게 살아야 하나라는 꿈같은 말을 되뇔 때가 있다.     

쓸데없는 생각은 저리 가 훠이 훠이


살균기에서 실내화를 꺼내 신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본 후, 기가 실로 향했다.

지나가며 마주친 선생님이 “일찍 오셨네요.”라고 인사한다.

“첫날이라서요. 죽순도 따야 하고, 마음이 급하네요.”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제가 나중에 와서 마실게요.”라며 목인사하고 기가실로 들어갔다.   

  

곰탱이 기가쌤이 있다.

“선생님, 과학 선생님이 가마솥이랑 도마, 부르스타 다 사셨다는데요.”

“그랬다네. 여기 어디 있을 건데. 가마솥이...”

“더 사야 하는 기물은 없나요?”

“왜 없어요. 프라이팬 사야지, 웍 사야지, 우든 스푼 사야지, 계량스푼 사야지, 계량컵도 사야지, 뒤집게 사야지, 집게 사야지, 국자 사야지. 살게 어마어마한데. 천천히 말할게요. 기가쌤 고마워~”

“아~ 네. 선생님, 여기 도마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택배 상자를 찾는데 윤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 오셨어요. 여기 가마솥이요.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아직 안 왔어요. 오후에는 올 것 같은데.”

“오겠죠. 아직 시간 있으니까. 아이들 프린트물은?”

“제가 수업 시작 전에 가지고 올게요.”     


냉장고를 열어 선생님이 사 온 재료를 확인하는데, 브로콜리가 활짝 피어나 있었다. 돼지고기는 비계가 너무 많아..., 주키니 호박이 작다고는 했지만 이렇게나 작은 주키니 호박은 처음 봤다. 뭐... 파프리카 넣으면 되지.

제대로 봐온 거 맞나요? 마늘이 안 좋아서 마트를 두 군데나 갔어요. 양파는 집에서 가져와서 상태가 별로죠.”

비계 많은 부위면 어때, 이렇게 신경 많이 써주는 선생님이 있는데.

“잘 사 왔네. 가끔 요래 생긴 못난이들이 나올 때가 있다니까. 거기다 품질은 안 좋은데 비싸. 잘 산 거야.”

난 윤 선생님의 손을 잡아주고 밖으로 나갔다.


자루를 들고 대밭으로 왔다.

어느새 죽순을 탈피하고 쭉쭉 뻗어 올라가기 시작한 대나무가 여기저기 보이고 숲 안쪽으로 죽순들이 우후죽순 모여있다. 아무래도 햇볕이 잘 드는 평지에 있어 금세 커버리는 죽순을 주말에 다시 한번 와서 따 놓아야 재료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요것이야말로 자기 무덤 자기가 판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인데 오동통한 죽순이 자루에 들어갈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분명 나는 전생에 소주방에서 일하던 나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죽순을 자루에 가득 채워 차에 실어 놓고 기가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쌀 포대를 테이블 가운데 모셔두고 둘러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 쌀이 왔어요.”라며 모두 쌀을 가리킨다.

“그래, 오늘은 밥 먹고 가자.”하며 아이들 어깨를 토닥여줬다.


냉장고 문을 열고 죽순을 꺼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제 요리를 해 먹어도 되는 죽순이 여기 왔습니다. 나머지 재료들도 다듬고 씻어서 ‘죽순 덮밥’을 해 먹을 거야.”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은 밥 먹고 가요?” 아침에 안 씻고 나온 것인지 아니면 뛰어놀아 그런 것인지 몸에서 오래된 향취나 풍기는 양준이가 눈을 반짝이며 내 팔을 잡고 얘기한다.

“응. 밥 먹고 갈 거야. 먼저 선생님이 너희에게 당부할 이야기 하나를 할 거야.”

    

“첫째. 동아리는 너희가 만든 거다. 선생님은 도와줄 뿐. 너희가 책임진다.”

“둘째. 2인 1조로 요리한다. 서로 도와줘며 같이 호흡을 맞춘다. 하지만 조리할 때는 개인전이야.”

“셋째. 선생님보다 요리를 잘하기 전까지는 선생님 말씀을 잘 따라야 해.”

“넷째. 팀장은 팀원들 잘 살펴주고, 팀원들은 팀장을 잘 보조해 준다.”

“다섯째. 이론과 실기를 같이한다. 다 외워야겠지?”

“여섯째. 요리하는 날은 샤워하고 깨끗하게 학교에 오는 거야.”

“6명이니까, 하나씩 기억하고 서로 안 지키는 팀원이 있으면 친절히 알려주는 거다. 알겠지?”

“네.”     


“우리 이제 시작해 볼까. 여기 프린트물 하나씩 가지고 앉아. 쌀을 씻어 밥 짓는 방법을 알려 줄 거야. 그리고 칼 잡는 법을 배우고 채소를 다듬어서 써는 방법도 알려줄 거야.”

아이들은 프린트에 적힌 납작 썰기, 깍둑썰기, 채썰기, 다지기, 막대 썰기, 나박 썰기, 반달 썰기, 어슷썰기, 통썰기 등 썰기에 대한 글을 돌아가며 읽어보고 볼펜으로 손 모양과 잡는 방법을 흉내를 내며 “나 잘하지?”라며 엄청난 요리사처럼 손을 움직이고 있다.     


“자 쌀을 씻어 볼까?”

“이 쌀은 지역 농협에서 일괄 수매해서 판매하는 쌀로 이 지역 대표 쌀이야.”

우리가 구매한 ㅎ쌀은 이 지역 대표 쌀 브랜드다. 품종은 히도메보레라는 품종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많이 재배하는 쌀 중 하나. 21.550㏊ 면적 논에 쌀을 재배하는 지역답게 군 최고소득원인 쌀로 밥을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말하고 쌀 포대를 풀어 쌀을 네 컵을 볼에 담았다.

“네 컵이면 우리 다 먹을 수 있겠지? 너희 밥 몇 공기 먹어?”

“그리가 많이 먹어요. 두 공기는 먹을걸요?”

손을 들고 일어선 재범이가 “저도 두 공기 먹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럼 반컵 더."


볼에 담은 쌀을 개수대로 가져가 물을 넣어 흔들어 씻고 물을 빼준 다음 손으로 박박 문질러 씻지만, 너무 손에 힘을 주지 말라고 설명하고 아이들에 한 번씩 쌀을 씻어 보도록 했다. 그다음 물을 넣고 헹구기를 서너 번 반복하도록 했다.

“따뜻할 날씨엔 30분, 추운 날씨엔 1시간 정도 불려줘야 해. 하지만 비가 오거나 날이 더운 날에는 잘라질 수 있다.”하고 나는 열심히 설명하고 아이들은 쌀만 들여다보고 있다.

“다음 수업엔 너희가 씻어서 불리고 밥을 지어야 해 잘 기억해라.”

“네.”


“그리고 여기에 밥을 할 거야.”라며 아이들에게 가마솥을 들이밀었다.
 “우리 저기에 있는 쿠쿠에 밥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쿠쿠가 있는 벽장으로 디엔이가 달려가 쿠쿠를 꺼내 들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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