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아. 요 쿠쿠의 조상이 가마솥인 걸 알아? 열전도율이 높은 쇠솥에 요렇게 무겁고 오목한 무거운 솥뚜껑을 올리면 밥이 끓어오르면서 생기는 수증기가 솥과 뚜껑 사이에 거품처럼 막을 형성해 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주지. 그 뚜껑 위를 차가운 행주로 살살 닦아주며 안쪽은 뜨겁고 겉이 차가워지며 압력이 상승해, 짧은 시간에 쌀을 익혀서 밥맛이 좋아지는 거야. 이런 원리로 만들어진 압력밥솥이 가스가 아닌 전기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든 게 쿠쿠야. 그렇다면 1+1이 2라고 배우는 것처럼, ㄱ. ㄴ. ㄷ. 한글 배울 때 자음부터 배운다 생각하면 돼.”
“그래도 쿠쿠가 편한데. 눌러 놓고. 기다리면 밥이 되고.”
전기밥솥을 들고 물러날 기세 없이 앞에서 툴툴거리고 있다.
“쉿~ 한번 해보고, 다시 얘기해 볼까?”
양파와 마늘을 볼에 담아 테이블로 가져와 아이들에게 페어링 나이프(일명 과도) 사용법을 알려주려 테이블 앞에 섰다. 칼끝이 위로 오고 날이 앞으로 방 향하도록 칼손잡이를 손바닥에 올려 집게손가락부터 새끼손가락을 모아 거머쥐게 한 뒤 잡고 엄지손가락이 앞면이 보이도록 과도를 쥐는 방법을 알려줬다.
엄지손가락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다른 한 손에 마늘을 잡고 놓아주는 연습을 시키는데 마늘이 데구루루.
“떨어진 마늘을 집을 때는 칼을 내려놓고 잡는다. 절대 칼끝이 옆이나 앞에 있는 사람에게 향해있으면 절대 안 된다.”
아이들이 “네에~에에” 하며 두 눈동자를 가운데로 모으고 얼굴이 점점 마늘과 칼을 집은 손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다가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늘 깐 거 사 오면 안 돼요?”
“선생님이 어느 날, ‘어머! 벌써 다 깠어’라고 소리치면 그때 얘기해 줘, 깐 마늘 사줄게. 약속.”
“양파는 도마에 올려놓고 뿌리 부분을 자르고 반대쪽 줄기가 있던 부분을 자른 다음 길이로 살짝 칼집을 넣어준 후 까는 겁니다.”
여전히 디엔이는 툴툴거리고, 마늘 몇 개 까고 양파 하나를 집어 뿌리 부분을 자르더니 힘들다고 한숨짓고, 그 뒤를 이어 날 힐끔 쳐다보고 다리를 두드리는 재범이. 정말 스으으을로오우 모션으로 두 번째 마늘을 들고 고전하는 그리가 삐걱거리는 디엔이와 재범이를 보고, 빠르게 칼을 도마 위에 올리고 “선생님, 힘들어요.”라며 두 눈을 깜빡거리며 전혀 힘들지 않은 얼굴로 날 바라본다.
“다른 재료도 씻고 당근 껍질도 벗겨야 하는데, 이만하고 다음 달에 모일까? 래도는 어떻게 생각해?”
“보통 깐 마늘하고 양파 사서 하지 않아요?. 편하게 대충대충.”
"너희 모르는구나! 요섹남의 기본은 재료손질이야. 대충대충 하면 요섹남 못된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대학생에게 4학년 2학기 수업으로 주방 실무 교육이라는 주제로 이론과 실기 가르칠 때였다.
하루 실습 스케줄에 청소만 40분을 넣었다.
“교수님, 청소를 40분이나 해요?” 재료 다듬는 것과 관리 그리고 요리보다는 청소에 집중시키는 나에게 학생들이 내뱉는 불만이었다.
어설픈 요리사 흉내를 내는 학생들에게 취업해서 사람을 홀리는 일회성 요리 후 들통나는 기초 없는 실력보다 차근차근 오랫동안 지켜나갈 기본을 알려주고 싶었다.
“너희, 취업하면 뭘 할 것 같냐? 너희가 4년제 조리 과를 졸업했다 해서 취업과 동시에 조리대 앞에 세워놓고 따다다닥 썰고, 팬 돌리면서 요리시킬 것 같아? 청소, 잡일부터 시키거든. 내가 미쳤다고 양파랑 마늘을 벌크로 사겠어! 너희가 보관하면서 알아가라는 거지. 우리나라 음식에서 파, 고추, 마늘, 양파를 빨리 못 까고 써는 놈을 누가 써줘. 항상 주위를 깔끔하게 청소 잘하고 재료 손질 잘하는 기본에 충실한 놈을 옆에 두고 가르치는 거야.”
커다란 대학생들도 이러할진대 요 쪼꼬만 녀석들은 오죽할까!
“래도야, 집에서 깐 마늘을 써? 너희는 농사를 안 짓는구나.”
“아니요. 농사짓는데. 집에서는 엄마랑 할머니가 까는데.”
“너희는?”
“할머니가 까는데요.”
“너희는 할머니 안 도와주고. 얘들아, 선생님은 가르쳐 주고 도와주기만 할 거야. 다 해주지 않아. 오늘 재료만 손질하고 선생님이 내일 다시 오는 한이 있어도, 너희들이 다 해야 해. 요섹남이 되는 그날까지 쭈우우욱.”
한숨을 쉬고 다시 칼을 들어 남은 마늘과 양파를 까는 아이들의 손이 바빠진다. 그 모습이 웃기지만 웃을 수 없어 참다 보니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 얼굴을 본 양준이가 “선생님 저는 다 했어요.”라며 뽀얀 마늘과 양파가 들어있는 볼을 내 앞에 놓는다.
“양준이가 형들보다 잘하네. 널 안 받아줬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저는 누나랑 같이 밥 해 먹어서 잘해요. 청소도 하고요. 그래서 오늘도 누나가 못 왔어요.”
“괜찮아. 오늘은 윤 선생님이 사진 찍어 준다고 했어. 저기 재범이 형 도와줄래?”
개수대에서 주키니를 씻고 내가 알려준 방법대로 파프리카를 손질해 씻는 재범이가 답답하고 기운 없는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겨우겨우 마늘 21개와 양파 4개를 쪽파 반 단, 파 반단, 당근 껍질을 벗기고 씻어 놓기까지 하루가 다 지나간 것 같았는데 1시간도 안 걸렸다.
“자자. 싱크에 남아있는 음식물 찌꺼기와 설거지한 다음 화장실 갔다 오고, 물도 마시자. 참! 너희 부모님께 늦게 간다고 전화는 드렸지?”
“선생님, 전화 안 해도 돼요. 우리 늦게 가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놀다 들어가는 게 더 좋아요.”
얘들 뭐라는 거야. 아이들이 킥킥대고 웃으면서 나보고 신경 쓰지 말란다.
“안돼. 전화해서 먼저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시지요.”
아이들이 하나둘 전화를 하는가 싶더니
“선생님, 저는 아버지가 끝나면 전화하래요.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나범이다.
래도는 아버지가 잠잘 시간 전엔 들어오라 했고, 디엔인 할머니에게 늦게 간다며 허락이 아닌 통보로 끝내고 '거 봐요. 늦게 가도 된다니까요."
그리의 식구들 중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가 핸드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리야, 어떻게 하지?"
"늦게 가도 돼요. 아빠랑 둘이 있는데, 제가 나가는지 들어오는지도 몰라요."
"어, 그래. 오늘 그리가 조금만 힘을 내주면 일찍 끝낼 수 있을 거야."라는 헛소리를 하며 눈이 마주친 그리에게 너무도 당황해 다음말을 못 이어나가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재범이가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전 핸드폰 없어요." 말로만 들어본 전화 없는 아이가 있다.
재범이에게 내 핸드폰을 건넸다.
“안 해도 되는데.”라고 구시렁거리더니 인상을 쓰며 할머니와 통화하던 재범이가 ‘알았어요! 끝나고 간다니까. 여기서 밥 먹을 거야!’라며 짜증을 내고 통화를 멈추더니 갑자기 웃는 얼굴로 핸드폰을 나에게 전해주며 "전화했어요."하고 뒤돌아선다.
1학년 꼬맹이 양준이는 부모님과 연락이 안 돼 나보다 걸고 또 걸어도 핸드폰 건너에선 조용하다.
“양준이는 누나에게 연락해 봐”
누나와 통화를 한 양준이가 “엄마 아빠는 전화를 안 받아요. 누나가 알았데요. 죽순 덮밥 먹고 간다니까 부럽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