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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Feb 17. 2024

아이들이 만든 죽순 덮밥, 왜 맛있지!

17. 우리 아이들에게 숨겨진 재능 찾기

손질한 재료를 커다란 쟁반에 담아 테이블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얇은 행주가 없어 종이타월을 적셔 물기를 짜고 나무 도마 밑에 깔아 아이들이 조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자, 칼. 조심해서 다뤄야 해. 잘 안 썰린다고 들고 흔들고 친구랑 얘기할 때 들고 있어도 안돼. 항상 제자리에 두어야 해. 도마 위쪽에 올려놓는다.”

“네.”

“칼을 들어 칼등이 위로 오고 날이 밑으로 끝은 앞으로 향하게 방향을 잡고 손잡이를 잡는다. 중지에서 새끼손가락까지 세 손가락으로 칼 뒤 끝에 대고 손잡이를 감아쥡니다. 그리고 엄지의 첫마디가 손잡이와 이어진 칼 끝부분에 대고 검지를 반대 부분에 대고 꼭 잡는다. 요렇게.”

아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하고 있지만, 막상 재료를 썰라고 하면 월매나 투덜댈라나...

“엄지와 검지를 조금 더 칼 가까이 다가가야 흔들리지 않는다. 자 이제 반대 손. 도마에 내리고.”


아이들이 심각한 얼굴로 내 손을 노려보고 있다.

“손가락 끝을 세운다. 아니 손가락 끝, 손톱이 있는 살을 도마에 대고 세우라고. 옳지. 손가락을 구부리며 손 안에 달걀이 하나 들었다고 상상하며 손을 내려봐. 손가락 첫마디는 안으로 좀 더 들어가고 두 번째 마디는 수직으로 반듯하게.”

아이들이 손가락을 바들바들 떨면서 나를 바라보며 ‘잘했다고 해줘요’라는 표정으로 애원하고 다. 체육 실기 시험을 보는 것처럼 자세를 멈추고 평가받기를 기다리며 벌을 스는 듯 멈춰있다.


“손을 풀었다 다시 잡고 하면서 연습해야지. 왜 가만히 있어.”

“움직여도 돼요?”

“응. 다시 고양이 손.”

“그런데 선생님 왜 고양이 손이에요.”

“나도 몰라. 고양이가 발톱 감췄을 때 모양이랑 비슷해서인가 봐. 우리는 호랑이 손이라고 할까?”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자 한 손은 호랑이 손 그리도 또 한 손은 칼을 잡고 도마 위에 편하게 내려봐. 칼이 가운데로 놓아도 살짝 삐뚤어지지. 너희는 오른손잡이니까. 오른쪽 발을 뒤로 조금씩 움직여 돌아봐. 선생님처럼 움직여서 칼이 반듯해지면 멈춤.”


아이들이 로봇처럼 다리를 구부리지 않고 몸을 툭툭거리면서 움직이며 키득거린다. 뭐가 저리 재미있을까?

내가 사내아이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겐 동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메마른 어른이 되어서인가?     


“다시, 칼을 움직이는 방법이다. 칼날부터 도마에 대고 내리면서 칼 뒷부분이 내려 도마에 닿을 때까지 밀어내는 거야. 천천히.”

아이들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방향과 자세를 잡아 칼이 흔들리지 않도록 자리를 잡아주었다. 아이들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움직인다. 아이들이 이렇게 조용하고 집중하는 걸 처음 본다.     


“손을 풀 겸 밥을 해볼까? 자 손 풀고... 털어 털어. 가마솥에 쌀을 넣고 물을 쌀과 같은 양을 붓고 뚜껑을 덮어 강한 불로 5분에서 중약 불에서 10분 불을 끄고 5분 뜸을 들인다. 타이머 가져와봐.”

아까는 쿠쿠로 밥을 하겠다는 녀석들이 모여들어 서로 해보겠다고 난리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심부름을 재범이 혼자 다하느라 동분서주 바쁘다. 아이들은 내가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재범이를 쳐다본다.

“왜 재범이 혼자 심부름하지?”

“팀장이잖아요.”

“팀장은 심부름꾼이 아니야. 같이 하는 거야.”라는 말에 재범이는 묵묵하게 서 있고 디엔이와 문제아 3인방이 모여서 숙덕거린다.

뭐지?


“이제 재료를 썰어 볼까?”

양파를 반으로 썰어 나눠주고 2cm 정도 정사각형으로 썰라고 알려주고, 파프리카는 양파와 은 모양으로 주키니는 반달 썰기, 대파는 어슷썰기, 쪽파는 송송 썰기, 브로콜리는 한입 크기로 썰기, 죽순은 빗살 모양 썰기 샘플을 만들어 보여주고 냉장고에서 돼지고기를 꺼내왔다.

“우리 고기도 있었어요?”라며 재범이가 달려와 내가 들고 있던 돼지고기를 받아 간다.

통으로 된 돼지고기를 7조각으로 나누고 가장 못난이 부분을 들고 얇게 저며 2.5cm 정도 납작 썰어 보여줬다.

“이제 마늘과 생강을 다집니다. 생강은 선생님이 다져 논 걸 가져왔고. 마늘 칼등으로 지그시 눌러 납작하게 만들고 총총총 썰어서 다지는 겁니다.”

     

아이들이 샘플을 하나씩 가져가 써는데, 아무래도 한숨을 자고 일어나도 될 것 같은 속도다. 그리는 아예 재료들과 칼을 들고 눈싸움 중이다. 언제 시작할지 궁금하다.

“칼 반듯하게 일자로 잡고, 호랑이 손. 호랑이. 허리 펴고.”

이러다 먹고 갈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다.

어라, 거북이와 내기해도 느려터져 간을 뺏길 것 같은 녀석들이 정성 들여 조심조심 들쭉날쭉하지만, 모양을 내 썰고 있는 품새가 그럴듯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리는 인상을 쓰고 땀을 훔치며 재료와 씨름 중이고 아이들은 앉아서 그리를 쳐다보며 빨리하라고 재촉 중이다.

“그리 짝꿍 재범이, 선생님이 서로 도와가며 하라고 했지. 그리가 힘들어하면 도와줘야지.”

“전 다 했는데요.”

“재료 준비부터 조리까지 같이하는 거다. 이리 와서 그리 도와줘.”

재범이가 흐느적거리며 귀찮다는 듯 다가오는데 그리는 재범이의 눈치를 보며 손을 빨리 놀려 보려 하지만 마음대로 안 돼 보인다.

“그리야, 천천히 손 다치지 않게. 어차피 늦은 거 조금 더 늦자. 밥은 먹고 가야지.”

다른 아이들도 그리에게 다가와 같이 썰어주고 마늘을 다져 주고 있다.  

   

“얘들아, 밥이 너무 잘됐다. 먹어볼래?”

배가 고픈지 한 숟가락씩 떠서 반찬도 없이 잘도 먹는다.

“선생님, 밥이 맛있어요.”

“앞으로 계속 맛있을 거야.”     


재료 손질이 끝난 그리가 칼과 도마를 들고 개수대로 가져가 깨끗이 닦아놓고 의자에 털썩 앉아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고 있다.

“그리야, 조금 쉬었다 할까?”

숙였던 고개를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더니 “아니요. 할 수 있어요.”라며 벌떡 일어나 내가 서 있는 자리로 다가온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웍을 올리고 뜨겁게 달군 후 기름을 넉넉히 둘러, 불을 줄이고 총총 썰어둔 대파 하얀 부분을 볶는다. 마늘을 넣어 볶은 후 불을 강하게 올려 돼지고기를 넣고, 양파, 당근과 주키니를 먼저 볶고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를 넣어 볶는다. 간장, 설탕, 후추, 굴소스를 넣어 볶은 후 물을 한 컵 넣어 끓인다. 여기에 전분을 푼 물을 부어 걸쭉하게 만들어준 후 불을 끄고 참기름과 갈아놓은 깨를 넣어 마무리한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네.”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올 것 같다. 진짜 배고픈가 보다.    

 

우당탕탕 난리가 났다.

재범이가 요리 스푼을 들고 흔들며 “아니 파기름부터 낸다잖아.”라며 그리를 가르치고 있다.

“형 볶아야지. 탄다. 타.”라며 양준이가 앞에 있는 래도의 팬에 스푼을 넣고 저어준다.

“너 죽순이 안 들어갔잖아.”

여기저기서 난리 들이다. 귀여워~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온갖 재료들이 하얀 테이블보 위에 추상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미술작품을 만들어놨다.


저 구석에서 검은 물체가 조심스럽고 빠르게 움직인다.

“재범아, 같이 먹어야지. 가서 윤 선생님이랑 봉쌤 불러와.”

재범이가 고새를 못 참고 구석에 앉아 먹고 있다.     


한입한입 아이들이 만든 ‘죽순 덮밥’ 맛을 보는데 ‘맛있다.’ 나도 배가 고픈 것인가? 너무 힘들어 입이 까끌까끌해 입맛이 없는데 맛있다. 욕심이 많아 많이 넣어야 맛있을 거라며 만들던 재범이의 느끼하고 짭짜름한 밥만 빼고 5명의 아이가 만든 덮밥이 5가지의 맛을 내준다.

어떻게 볶았는지 불맛이 나는 래도, 간이 잘 맞는 그리, 적당히 잘 볶아 재료가 살아있는 양준이, 예쁜 모양으로 담아 온 재범이, 엉망진창일 것 같았던 디엔이까지. 솔직히 기름과 굴소스가 조금만 덜 들어갔었다면 재범이 덮밥도 맛있는 편이었는데.

이것은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는 건지는 다음에 두고 보면 알 일이다.


두 선생님이 기가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뒤꿈치를 들어 선생님들을 향해 조용히 입 모양으로 ‘맛있어!’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테이블에 오던 길에 숟가락을 들고 온 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맛있어. 진짜 맛있어.”라며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숟가락을 들고 있던 봉쌤이 “설마. 왜 맛있어?”라며 드시더니 “진짜 맛있네. 선생님이 해줬지”라고 하자, 아이들이 “우리가 했어요.”라며 큰소리로 외친다.     


“자. 자. 오늘 너무 수고했고. 너희도 알다시피 선생님이 매주 못 와. 그래서 한번 올 때 많은 걸 가르쳐주고 갈 수밖에 없어. 다음 주에는 선생님이 가르쳐준 걸 잘 기억했다가 조심해서 요리해야 한다.”

    

설거지까지 장장 6시간 동안 진행된 수업을 마치고 몸을 질질 끌어 차에 태웠다.

그나저나 다음 주엔 아이들끼리 잘할 수가 있을까?

수업 시간만 많았다면 아이들을 저리 고생시키지 않아도 될 텐데.


3주 후엔 뭘 가르쳐야 할까 고민하며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재를 넘어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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