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자격이 없는 게 아니라 준비가 덜 되었을 뿐입니다

미 육군이 ‘예비신병준비과정’으로 바꿔낸 병역의 정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자처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첨단 무기, 세계 곳곳에 주둔한 병력, 압도적인 예산까지. 그러나 최근 미국 육군은 하나의 커다란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그 위기는 총기 부족도, 기술 낙후도 아닌, ‘사람’의 부족이었다. 병력 충원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미달되었고, 그 결손은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니라 미래 군 전력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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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 육군은 정규 병력 충원 목표를 6만 명으로 설정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고작 4만 5천 명만이 입대에 성공했고, 이는 미국이 모병제를 시행한 이래 가장 큰 충원 실패로 기록되었다. 문제는 그 이면에 있었다. 미 국방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청년 4명 중 3명(77%)이 군 입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의 사유는 다양한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비만과 정신 건강, 그리고 범죄 기록이었다.

단순히 더 많은 사람을 모집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희망자’가 ‘자격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 육군은 발상의 전환을 시작한다. 자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격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군이 직접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그것이 바로 FSPC(Future Soldier Preparatory Course), 예비신병준비과정이다.


FSPC는 군 입대에 필요한 기준에 미달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최대 90일간 체력, 학력, 정신력 등 기본 역량을 집중 강화하는 훈련 과정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훈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단절되고 낙인찍힌 젊은이들을 위한 ‘다시 연결하는 제도’이며, 동시에 미국 육군이 보여주는 ‘포용적 병역전략’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훈련 대상은 ‘포기된’ 청년들이 아니다. 오히려 ‘입대를 희망하지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은 체지방률이 너무 높거나, ASVAB(군 입대 자격 시험) 점수가 낮거나, 기초 체력이 부족하거나, 생활 습관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입대에 대한 ‘의지’다. 그리고 FSPC는 바로 그 의지를 바탕으로 다시 문을 열어주는 제도다. (이 글을 보고 있는 군 정책 관계자가 있다면 생각을 달리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배워야한다. )


훈련은 두 가지 코스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신체 조건 개선 과정이다. 참가자들은 포트 실(Fort Sill), 포트 잭슨(Fort Jackson) 등 육군 기지에서 강도 높은 체력 훈련과 철저한 식단 관리, 정신 건강 훈련을 받는다. 달리기, 근력 운동, 기능성 코어 트레이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병행되며, 참가자들은 평균 3주~6주간의 과정에서 주당 약 1.7%의 체지방을 감량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는 ‘몸을 만드는 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훈련은 단순한 체력 향상이 아니라, 규칙적인 생활 리듬과 공동체 속의 유대감, 그리고 자존감 회복을 함께 제공한다.
비만이던 훈련생이 처음으로 1.5km를 완주하고, 그를 옆에서 함께 뛰며 응원하는 동료를 만났을 때, 그는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의 팀원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변화이자, 군 입대보다 더 중요한 성장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 과정은 학업 능력 향상 프로그램이다. 미국 육군은 단순히 체력만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군 입대를 위한 자격시험(ASVAB)의 통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초 학력이 부족한 청년들은 이 시험에서 쉽게 탈락한다. FSPC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맞춤형 학습 지원을 제공한다.

수학, 영어, 과학 등 기초 교과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문제풀이 전략 교육, 튜터링, 그룹 학습이 함께 제공된다. 무엇보다 훈련소라는 군 특유의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 학습은, 이들이 ‘군대에 적응할 수 있는 학습 습관’을 만드는 데 큰 효과를 가져온다. 점수를 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군이라는 조직의 리듬과 규율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모두 예비신병 신분으로 등록되며, 군인으로서의 정식 계급이나 월급은 받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숙식, 교육, 장비는 전액 미 육군에서 지원한다. 이는 ‘병역 부담의 이전’이 아니라, 국가가 먼저 다가가 청년에게 손을 내미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성과도 놀랍다. FSPC가 시행된 첫해인 2022년 8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총 8,500명이 참여했고, 그 중 72.8%에 해당하는 6,188명이 수료에 성공했다. 그들은 모두 군 입대 기준을 충족했고, 이후 정규 훈련소에 입소해 각자의 군 생활을 시작했다. ‘실패자’라 불렸던 이들이 이제는 미 육군의 미래 전력을 구성하는 구성원이 된 것이다.

군은 강한 자만이 가는 곳이 아니라, 강해지고 싶은 자가 가는 곳이어야 한다.
FSPC는 바로 그 신념을 제도화한 프로그램이다.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공공이 지원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는 병역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도 평가받는다.

FSPC는 단순히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한 임시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가 가진 병역제도의 철학을 바꾸는혁신적인 시도이다. 군대는 더 이상 ‘뽑는 곳’이 아니라, ‘키우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입대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을 ‘문제’가 아닌 ‘잠재력’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병역의 미래라는 점을 FSPC는 보여주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도 병역자원 감소와 복무환경 논란, 여성 병역 확대 문제, 군 복무 가치 변화 등 복합적 병역 이슈에 직면해 있다. 이 가운데 FSPC는 단순한 미국의 제도를 넘어, 우리 사회가 ‘청년을 대하는 태도’, ‘병역을 바라보는 철학’, 그리고 ‘군 조직이 성장의 공간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제시해준다.

병역은 이제 더 이상 ‘의무’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이제는 지원과 성장의 관점에서 병역을 재설계해야 하는 시대다. FSPC는 그 첫 번째 증거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제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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