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북 방송 중단이 의미하는 것, 북한 정보전의 후퇴인가 후퇴인가
2025년 여름, 세계의 눈이 북한을 향한 방송 안테나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조용하면서도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이 수십 년 동안 이어오던 대북 라디오·TV 방송을 전격 중단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정책 방향의 변화, 실질적으로는 남북 간 긴장 완화 기조를 고려한 조치로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북한 정보전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대한민국이 스스로 철수한 것과 다름없다.
이 사안을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38 North)’는 “북한이 반(反)정보전에서 큰 승리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외부 평론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폐쇄 체제 내부에서 ‘정보’가 어떤 전략적 의미를 갖는지를 정확히 짚어낸 분석이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는 ‘외부 정보’의 유입이다. 단속을 넘어, 체제 불안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원의 대북 방송 중단은 ‘희망의 메아리’, ‘인민의 소리’, ‘자유코리아방송’, ‘K뉴스’ 등 오랜 기간 송출되던 여러 라디오와 TV 콘텐츠를 한 번에 정지시키는 조치였다. 이 가운데 ‘희망의 메아리’와 ‘인민의 소리’는 각각 1973년과 1980년대 중반부터 남북 간 대치 상황, 정상회담, 군사 충돌에도 끊기지 않고 유지되던 방송이었다. 이 두 방송이 꺼졌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채널이 사라졌다는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과 남한을 직접 연결해주던 ‘정보의 생명선’이 끊어진 것과 같다.
38노스는 이번 중단이 단순한 방송 운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전의 전략적 후퇴라고 진단한다. 실제로 5월 이후 북한으로 송출되는 외부 라디오 프로그램의 총 방송 시간이 8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밤 11시가 되면 북한을 향해 송출되는 방송국이 11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송출 시간으로 보면 하루 415시간이 넘던 대북 방송 총합이 현재는 불과 89시간에 그친다.
그렇다면 이 조치의 배경은 무엇인가. 38노스는 이재명 대통령의 ‘긴장 완화 우선’ 대북정책 기조를 그 배경으로 언급했다. 북한과의 직접적 충돌이나 긴장을 피하고, 군사적 대결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우선시하겠다는 전략은 정책의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전에서의 철수는 단순한 해빙 제스처 이상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전 세계가 북한 내부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에서, 그 내부로 외부 정보를 밀어넣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대북 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정보란, 총알보다 강력할 수 있다. 한 명의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의 소식을 듣고, 생각하고, 흔들리게 되는 것. 그것은 정권 차원에서는 위협일지 몰라도, 인권과 자유의 관점에서는 희망의 첫 번째 불씨다. 이 때문에 북한은 외부 라디오, TV 방송을 ‘정신적 침투’로 간주하며 주민들이 시청하거나 청취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해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정원이 유지해오던 방송은 북한 정권이 가장 경계하던 전략 중 하나였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국정원 대북 방송을 보고 탈북을 결심했던 보위부 요원 출신 이철 씨(38세)는 “대북 정책이 바뀌었다고 수십 년 해오던 방송을 멈춘 건 한심하다”고 일갈했다. 그는 과거 북한에서 남한 영상물 단속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북한의 TV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접한 순간, 체제가 붕괴됐다. 직접 바다를 건너 대한민국에 온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 방송을 보고 탈북한 사람이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그 방송을 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이걸 중단한다는 건, 김정은 체제 안에 갇힌 섬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상징적이다. 정보는 외부 세계를 잇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유일한 창구였다. KBS의 ‘한민족 방송’과 국방부의 ‘자유의 소리’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 중단된다면 대북 방송은 사실상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북한과 세계를 잇는 연결 고리가 모두 끊기는 것을 의미하며, 북한 정권이 가장 바라는 이상적 상황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방송은 왜 끊겼는가? 단지 남북관계의 분위기를 고려한 결정인가? 아니면 정권 차원의 전략 변화인가? 혹은, 탈북자 증가를 억제하려는 묵시적 의도인가? 정보 유입은 정치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외부 정보를 통해 세계를 아는 북한 주민에게는, 그것이 곧 자유와 목숨을 건 선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대북 방송 하나를 껐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에게는 그 하나가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빛줄기였다. 그것은 총탄도 아니고, 무력시위도 아니며, 전단지보다도 훨씬 더 조용하고 깊숙이 침투하는 무형의 힘이었다. 전파는 사라졌고, 대신 정적이 남았다. 그러나 침묵이 꼭 평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침묵은 때로 외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