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우수생들의 비전투병과 이동, 그 안에 숨은 군 조직의 민낯
1. 엘리트들이 전투병과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2025년의 대한민국, 국방의 최전선에서 싸워야 할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더 이상 ‘전투병과’로 모이지 않는다.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그리고 육군3사관학교. 전통적으로 국군의 간부를 양성해 온 이 네 곳의 졸업생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보여주는 병과 선택 경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과거의 정석이었던 ‘보병-포병-기갑’ 등 전투중심 병과 대신, ‘재정-군사경찰-정훈-의정’ 등 비교적 안정적인 행정/지원 병과로 성적 상위권 졸업생들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단지 한 해의 변화가 아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유용원 의원이 확보한 10년간 병과별 평균 졸업성적 자료에 따르면, 상위권 인재의 병과 쏠림은 명백한 추세다. 그리고 이는 군 조직 전반의 가치 기준과 미래를 재점검할 필요성을 던지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2. “워라밸”과 “재취업”이라는 새로운 좌표축
그렇다면, 왜 사관학교 생도들은 전투병과를 기피하는가?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워라밸’, 둘째는 ‘전역 후 경력설계’이다. MZ세대 장교 후보생들은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 안에서도 개인의 삶의 질과 일-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그들에게 전투병과는 여전히 중요한 국가 임무를 수행하는 필수 축이지만, 동시에 격오지 근무, 반복적 훈련, 육체적 소모, 인사이동 등의 리스크가 지나치게 큰 병과로 여겨진다. 이와 달리, 재정·의정·정훈 등 비전투병과는 수도권과 인접한 근무지, 비교적 예측 가능한 복무, 적은 야외훈련, 다양한 위탁교육 기회 등을 제공한다. 특히 재정 병과는 일정 복무 후 공인회계사(CPA) 1차 시험 면제 혜택을 제공하고, 항공 병과는 군 내 조종사 자격으로 민항 진출이 가능하며, 의정 병과는 위탁 의대 교육으로 의사 자격까지 취득할 수 있는 점에서 전역 후 민간 커리어와 연결된 ‘경력 사다리’로 작동한다.
3. 병과별 성적 변화가 말해주는 것
수치로 이 현상을 더 명확히 들여다보자. 2016년 육군사관학교 포병 병과의 평균 졸업등수는 175등(상위 74.2%)이었다. 2025년에는 181등(상위 80.4%)로 떨어졌다. 기갑도 마찬가지다. 75등(31.7%)에서 126등(56.0%)으로, 병기·병참·공병 등 기술병과도 비슷한 하락세를 보인다. 반면 재정 병과는 88등에서 33등(11.8%)까지 성적 우수자가 몰렸다가 2025년에야 소폭 하락했으며, 항공 병과는 무려 31등(상위 13.8%)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공군사관학교 정훈 병과 역시 60등에서 17등으로, 정보 병과는 97등에서 26등으로 상승하며 성적 상위자가 몰리는 대표적 인기 병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전투병과는 성적이 낮은 생도들이, 비전투병과는 성적이 우수한 생도들이 선택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4. 군사적 ‘핵심’이 군 내부에서 외면받는 아이러니
병과 선택은 단순한 직무 선호가 아니다. 그것은 군의 방향성과 문화, 제도에 대한 생도들의 무언의 투표다. 그리고 현재 그 투표는 “전투병과는 피하겠다”는 집단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합리적 판단일 수 있으나, 동시에 우리 군이 전투병과에 필요한 자원을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제도적 결함을 반증한다. 전투병과가 고생만 많고 보상은 적은, ‘소모적 자리’로 인식되는 구조에서 아무리 사명감을 강조해도 인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민간에서 선택 가능한 다른 안정적 커리어 옵션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병과 선택은 냉정하고 현실적인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5. 육군3사와 해사, 동일한 흐름의 재확인
육군3사관학교의 경우 2016년 기갑 병과 평균 등수가 170등(34.1%)에서 214등(58.2%)로 떨어졌으며, 방공·공병·보병 등도 모두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2025년 졸업생 기준 전체 1~5위 병과 중 4개가 비전투병과였으며, 재정(1위), 의정(2위), 군사경찰(3위), 정훈(5위), 항공(4위)이 해당된다. 해군사관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항공 병과는 2016년 평균 등수가 64.2등으로 함정병과와 비슷했지만, 2025년에는 36.3등으로 함정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다시 말해 전역 후 민간 진출이 용이한 항공 병과가 명확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6. 제도와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군은 변하지 않는다
이 모든 데이터는 사관학교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교육받은 이들이 자신의 경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매우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그 합리가 군 전력 운영에 있어 ‘역행’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군은 이제 선택의 자유를 줄 것이 아니라, 전투병과에 자원할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의무화하거나 보직을 강제하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전투병과 복무 시에도 명확한 보상, 커리어 연결성, 근무환경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7. 결론:
사관학교 성적 우수생들의 비전투병과 선호는 단지 개인의 이기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군이라는 조직이 인재를 유지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로 보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총체적 경고이다. 엘리트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이 머물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 이 변화는 단지 병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군 조직의 생존 문제이며, 방위력 유지의 근간을 흔드는 구조적 경고다.
군이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 인재는 다른 곳에서 국가를 떠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