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방송 중단과 남북 정보전의 구조적 변화

2025년 여름, 대한민국은 조용한 전선에서의 ‘후퇴’를 선언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52년간 이어온 대북 라디오·TV 심리전 방송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이 조치는 단순한 기술적 종료나 운영 축소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대북 정책사에서 상징적으로 이어져 온 ‘심리전의 물줄기’를 끊은 전환점이며,
나아가 한반도의 정보전 환경에 구조적인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20250723_163003.png

국정원은 6월 취임한 이종석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난 7월 초부터 ‘인민의 소리’, ‘희망의 메아리’, ‘자유FM’, ‘케이뉴스’, ‘자유코리아방송’ 등
라디오 주파수 5개와 TV 주파수 1개, 총 6개 채널의 대북 방송 송출을 일괄 중단했다.
이로써 1970년대 중앙정보부 시절 시작된 반세기의 심리전이 막을 내렸다.

국정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일방적인 중단이 아닌,
북한의 ‘대남방송 송출 중단’에 대한 상응 조치였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은 이제 두 개의 국가’라는
노선을 천명한 뒤, 자국이 송출하던 14개 주파수의 대남 방송을 일괄 폐지했다.
‘통일의 메아리’와 ‘평양방송’, ‘평양FM’ 등의 라디오 송출을 멈추고,
‘우리민족끼리’, ‘려명’ 등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와 SNS 계정도 폐쇄했다.
이는 명백한 남북 간 심리전 구조의 단절이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이 변화에 대한 남북 양측의 대응 속도 차이다.
북한은 2023년 1월 이미 모든 대남 심리전 채널을 조기 폐쇄했음에도,
윤석열 정부 당시 대한민국은 대북 방송의 강도를 오히려 높였다.
“북한 정권의 종말”이라는 직접적 발언, 고출력 확성기 재가동 검토,
심리전의 전략화 등이 이어지며 심리전의 무게추는 남측으로 기울었다.

그로부터 1년 반 뒤, 이재명 정부 들어 대북방송이 중단되면서
양측의 ‘심리전 라운드’는 결국 침묵으로 봉합되었다.
고위 정보 소식통은 “극심한 체제 대결 시대를 끝내고자 하는 판단 아래,
북한의 방송 중단에 대한 뒤늦은 상응조치로 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를 안고 있다.


첫째, 정보전에서의 철수는 전략적 공백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 체제는 정보 차단을 체제 유지의 핵심 기제로 삼는다.
그에 맞서 대한민국은 방송을 통한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북한 주민의 인식 변화와 체제 균열을 시도해왔다.
따라서 이 방송의 종료는 ‘우리의 의지에 따른 중단’이 아니라,
‘북한이 정보를 차단한 뒤 얻어낸 전략적 승리’로 평가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실제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38 North)’는 이 조치에 대해
“북한 검열관들이 이 행운을 믿기 어려울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는 정보전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일방적으로 이긴 국면이라는 분석이다.


둘째, 심리전의 역할은 단순한 체제비판을 넘어 인도적, 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대북 방송을 통해 외부 세계의 정보에 접속한 북한 주민 중 일부는
탈북을 결심하고, 남한 사회에 편입되기도 했다.
많은 탈북자들이 “국정원 방송을 보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고 회상하며,
그 전파가 자신들의 삶에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창’이었음을 말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단순한 정세 완화의 제스처가 아닌,
북한 주민을 향한 하나의 ‘창문을 닫은 것’이기도 하다.


셋째, 조직 개편과 역할 재정의가 뒤따르지만 그 방향은 불분명하다.
국정원 측은 기존의 대북심리전 조직을 “조기경보 및 글로벌 안보 공감대 확산 기구”로
재편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기존의 심리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정보 침투’에서 ‘외교 공감’으로의 전환은 명분상 합리적이지만,
대북 정보전이라는 실질적 기능은 공백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평화’로 가는 길인가, 아니면 ‘무장 해제’인가?

심리전은 총성이 없는 전쟁이다.


전파와 이미지, 뉴스와 소리가 무기가 되고,
정보가 곧 전선이 된다.
그 전선을 접었다는 것은 곧 한 시대의 전략 철학을 접었다는 의미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 한다면,
그 첫걸음은 ‘침묵’이 아니라 ‘의미 있는 교류’여야 한다.
방송이 정제된 말과 음악이었다면, 다음은
정책과 실천이 그 자리를 대신할 차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