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었던 나는 임신과 동시에 '약자'가 되었다. 대중교통을 탈 때에는 '교통약자'가 되고, 길을 갈 때면 배려를 받는 대상이 된다. 저출산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는 요즘 나이 있으신 분들은 임신한 나를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토닥여주시기도 했고, 임산부라면 당연히 배려받아야 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럼에도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있고, 누가 봐도 수박만 한 배를 안고 다니는 임산부인 게 한눈에 보이는 주수가 되어서도 배려는커녕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지하철 임산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으면서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자는 척을 하던 아주머니도 있었고, 서있기가 힘들어서 임산부석을 양보해 달라고 하는 내 말에 투덜거리며 일어나면서도 눈빛을 쏘아대던 젊은 남자도 있었다.
그중에도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따뜻한 이들이었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마주칠 수 있었던 타인의 마음씨가 있었다.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버스에 오를 때 또 내릴 때도 내 캐리어를 들어주시던 아주머니, 길을 오가며 임신 몇 개월째인지를 물어보고 고생이다, 힘들겠다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셨던 분들. 지하철에서도 괜찮냐며 빈자리를 열심히 찾아주셨던 분. 어떻게 저렇게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싶었던 그런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임신 기간 중에 느낄 수 있는 행복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단단하고 따뜻한 응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 먼저 타고 계시던 깔끔한 하늘색 정장에 모자를 쓰신 할머니가 말을 거셨다. 임신한 지 몇 개월이 되었는지, 언제 출산하는지를 물으시더니 할머니는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시면서 한 마디를 하셨다.
'순산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걷는 길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고 힘들겠네, 고생이네요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할머니의 단단한 위로가 마음으로 전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할머니가 해주신 말이 행운 부적처럼 느껴져서 꼭 순산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났다.
한 주먹만큼의 산딸기
신혼시절에 자주 가던 망원동의 국밥집에 들렀다. 단골집이긴 했지만 벌써 이사를 떠난 지 3년이 넘어서 우리를 기억해 주시길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저 사장님 부부가 그곳에서 아직 정갈하게 장사를 하고 계심이 그저 감사했다.
배가 부른 날 보며 여사장님께서 출산 예정일을 물으셨고, 8월 말이라고 하니 자기 딸도 작년 7월에 출산을 해서 여름출산이라 고생을 많이 했다며 날 걱정해 주셨다.
그 마음만으로도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정겹고 감사했는데,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던 길에 사장님께서 갑자기 나에게 손을 내밀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곤 내 두 손 가득 산딸기를 내어주시곤 '출산 잘해요'라는 말을 덧붙여주셨다. 과거에 단골이었는지조차 기억도 나지 않을 한 번의 손님으로 다녀가는 타인에게 전해주신 그 마음에, 빨알간 산딸기가 달았다.
타인의 마음까지 생각한 배려
출근길이었다. 임산부석이 있는 지하철 칸에 탔지만, 만원 지하철에는 이미 임산부석도 꽉 채워져 있었다. 앉기를 포기하고 서있었던 내게 한 젊은 여자분이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에는 '괜찮으세요? 자리 피해달라고 이야기해드릴까요?'라는 텍스트가 쓰여있었다. 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대신 말해주고 싶어도 혹시나 그녀의 행동이 나를 오히려 불편하게 할까 봐 고민하다가 텍스트로 물어봐준 것이었다.
출근하는 길 내내 그녀의 사려 깊은 배려에 마음이 따뜻했다. 임산부를 앞에 두고 임산부석에 앉아서 가는 일반 사람을 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수 있다. 그리고 앉아있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거나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혹시 자신의 행동에 배려받는 사람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거기까지 타인을 위해 고민해 주는 마음이 감사했다.
임신 중에 이런 따뜻함을 만날 때마다 난 아기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아가야, 너도 타인에게 다정함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나 자신만 생각하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보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뻗어주는 사람이 되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임신 중에 만났던 이런 다정한 배려에 대해서 늘 이야기했기 때문일까. 남편 현이는 아이의 이름에 '다정한 사람이 되어라'는 의미를 주고 싶다고 했고, 동의했다.
임신 기간이 끝나고 다시 일반인이 되었을 때 나도 받았던 배려만큼 타인에게 따스함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도 그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