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 수를 만났다. 언니는 최근에 정신과에서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언니는 일상에서 자주 '불행'을 예측해보곤 한다고 했다. 지금 임신 중인 아기가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남편이 사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의사 선생님은 이런 모든 생각들을 '건강하지 않은 사고방식'이라 명명했다고 했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꽤나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언제든 불행이 생길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방식이 내가 슬픔을 이겨내면서 얻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내가 낙관적이기만 했기 때문에 아빠의 컨디션이 안 좋아진 전조증상을 가벼이 여겼고 그래서 아빠를 잃었다고 끊임없이 후회하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에 어떤 나쁜 일이던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이 하나의 명제가 내가 깨달은 불행의 방어막 같이 느껴졌었다. 어떤 상황이던 낙관하면 안 되었고, 내가 주어진 평범한 일상을 보석같이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깨달음이라고. 남편 현이가 하루 이틀 집을 떠날 때면 '지금 보는 게 마지막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고,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지금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언젠가 사라질 행복이 슬퍼서, 가만히 혼자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불행을 당연히 여기는 마음이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후, 최근에 내가 느꼈던 불안의 원인이 건강하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수 언니는 첫 임신에서 25주 차에 아기가 심각한 신체적 기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첫째 아기를 임신중절로 하늘나라에 보냈고 아기가 세상에 없었지만 다른 산모들처럼 출산, 산후조리를 겪어내야 했다. 지금은 다시 생긴 둘째 아기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와 잘 크고 있었고, 셋째 아기도 건강하게 임신을 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5개월 동안 품었던 첫째 아기를 잃었던 아픔은 쉬이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언제든 그런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언니의 마음은 수많은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언니가 어릴 때 겪었던 불행이 언제든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첫째 아기를 잃는 경험이 '불행이 예측한 대로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는 데에 더욱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하셨다.
수 언니가 정신과에 찾아갔던 것처럼 나도 심리 상담을 고민하고 있었다. 최근에 가만히 있는데도 무언가가 압박하는 기분이 들어 불안장애를 의심하고 있었다. 임신 21주에 접어들어 조산 위험으로 입원을 한 후, 어쩌면 나에게도 언니와 같은 불행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이 증폭되었다. 뱃속의 아기가 12주가 되고 처음 정밀검사를 했을 때, 또 20주가 되고 기형아 검사를 했을 때마다 난 태연하게 '아기가 정말 건강할지는 알 수 없으니까'라고 말하곤 했다.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있다가 태어날 텐데 왜 그런 생각을 하냐는 엄마의 말에, '세상에 무슨 일이 나한테 생길지는 모르는 거니까'라고 당연한 듯이 이야기했다.
돌이켜보니 이건 나의 방어기제였다. 불행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 진짜 불행이 일어났을 때 내가 조금은 덜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아픔을 겪어오면서 나는 그 정도 인생이 내리는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들이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오히려 내 마음 밭을 더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제야 당연한 것들이 보였다.
불행은 예측할 수 없다. 우리가 행운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예측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불행에 아무리 대비한다고 한들 내 마음은 새롭게 등장하는 아픔과 시련을 방어하고 준비할 수 없다. 최대한 나쁜 일들이 찾아오지 않도록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고, 검토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예상치도 못한 무수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삶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불행을 끊임없이 예측하는 것이 아닌, 삶을 그대로 낙관적으로 긍정하는 것. 마치 단 한 번도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것처럼 앞으로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내게 나쁜 일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루하루를 긍정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겨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삶은 때론 끔찍하게 잔인하다. 그리고 눈물 나게 아름답다. 그걸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이 아픔을 겪어낸 나에게 남았을 뿐, 앞으로를 살아갈 나에게 불안을 안겨주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아픔을 몰랐던 과거의 나처럼 다시 낙관적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그 마음가짐만으로도 가슴속 응어리가 풀어졌다. 지금 내 뱃속에서 열심히 꼬물거리는 이 존재도 분명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나 또한 아무 일 없이 건강할 거라고 낙관해 본다. 그리고 이내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