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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온우 Aug 31. 2023

[Love is] #1. 우리의 첫사랑 이야기

20살에 마주한 첫사랑

낯선 나라 독일에서 룸메이트로 만난 시미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가족 중 첫째로 태어나 동생이 한 명 있다는 점,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다는 점, 언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세상에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고, 사뭇 삶에 대해 진지하다는 점, 늘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가장 똑같다고 느꼈던 건 20살부터 사귄 첫사랑이자 3년 된 남자친구가 있다는 점이었다.


20살의 연애는 서투르기 그지없어서 그 나이에 1년 사귀는 커플도 흔치 않았고 그때부터 주욱 3년이나 사귄 커플은 내 주변에도 시미와 나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친구를 두고 다른 나라로 와서 롱디(Long distance realtionship)를 하고 있다는 점도 같아서 우리는 남자친구와 언제 처음 만났는지, 처음 외국에 간다고 했을 때 그가 뭐라고 했었는지, 그리고 지금 얼마나 서운해하고 있는지.. 까지 하나하나 다 서로 공감이 되었다.


어느 하루는 한국에 있는 내 남자친구가 술을 잔뜩 마시고선 전화를 걸어 왜 지금 독일에 가있냐며 하소연을 해서 1시간 내내 달래줘야 했고, 또 다른 날엔 슬로바키아에 있는 시미의 남자친구가 연락이 와서 화를 냈다. 한국에서 내 남자친구가 한국 과자며 라면을 한 박스 보내줬고, 슬로바키아에서는 시미의 네임스 데이(슬로바키아에서는 365개의 이름이 있어서 생일 외에도 자신의 이름날이 있다)에는 한아름 선물이 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울고 웃으며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건 큰 위로였다.


22살의 우리는 처음 경험하는 연인과의 롱디를 견디며 서로를 의지했다. 우리의 남자친구는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인연이자 세상에 하나뿐인 첫사랑이었다. 그런 우리의 연애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 보려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빠질 수 없이 중요한 뜨거운 사랑 이야기에 대해서.





나의 첫사랑 이야기



처음 남자친구를 만난 건 100:100 미팅에서였다. 


100:100 이라니 무슨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여대를 다녔고 우리 과는 특히나 사람이 많아서 한 학년에 120명이 되었다. 내 남자친구는 남녀공학이지만 180명 중 3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인 공대 중에도 기계과였다. 그래서 서로 다른 학교였지만 학기 개강을 앞두고 술집 하나를 통째로 빌려 선착순으로 1학년 100명을 모집했고 이른바 '연합 개강파티'를 했다. 4:4 미팅이 이미 정해진 사람들끼리의 만남이라면, 100:100은 앉는 순서에 따라 한 테이블에 남자 4명 여자 4명이 앉아서 만나는 랜덤 미팅이다.


누구보다 사랑에 진심이었던 난 대학에 진학하면서 세운 첫 번째 목표는 단연 남자친구 사귀기였다. 학창 시절에 나의 부모님은 종종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셨는데 그때마다 일기장에 써놓던 이야기가 있었다. 

"I keen ye bonibee"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인디언 출신인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내에게 하는 말이다. 여기서 keen은 체르키족 언어로 understand(이해하다) + love(사랑하다)를 합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이해합니다"라는 말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니,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도 싸우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더더욱 이 단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렸던 나는 부모님이 중매결혼을 했기 때문에 서로 사랑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보다는 '연애',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난 꼭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과 연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꼭 대학에 가면 이런 사랑을 해야지 하고.


다시 100:100 미팅으로 돌아와서 그 랜덤 한 만남에서 내 첫사랑은 나의 파트너였다. 사실 삐쩍 마른 외모에 수줍음 많은 남자친구에게 한눈에 사랑에 빠졌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운 좋게도 남자친구가 나를 좋아했고 그 후에 계속 연락을 줬다. 그 수줍음이 많았던 아이는 연락은 열심히 하면서도 혹시나 내가 맘에 안 들어할까 걱정에 만나자고는 못하고.. 그렇게 실제로 만난 건 2번쯤, 2달 동안을 내내 매일 카톡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띄엄띄엄하기 시작했는데 내 고등학교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얘길 나누었던 게 우리에게 중요한 타이밍이 되었다. 매일 연락은 하는데, 만나자고는 안 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는 내 말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에게도 확신이 필요할 거야, 좋아하는 마음도 오래되면 지치기도 해'


그 이야기를 들은 난 바로 만나자고 연락을 했고 그 다음날 용기를 얻은 그 아이에게 고백을 받아 사귀게 되었다. 난 어쩌면 좋아함을 받기만 하는데 익숙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가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이니까. 그래놓고 그 아이가 먼저 만나자고 하지 못한다,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투덜대고 있던 거였다.


그래서 내 첫사랑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면 사랑에 진실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 아이의 이런 면을 가장 사랑했다. 처음 고백을 했던 날에도 내가 '좋다'라고 승낙한 순간부터 '지금 너무 좋아서 침대에서 방방 뛰고 있다'라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친구였다. 좋아하는 마음을 보여주는데 솔직했고 숨김이 없었다. 그 반면에 나는 상처받기가 두려워서 상대방을 상처 주고 그럼에도 그 사람이 날 사랑해 주는지를 시험하곤 했다. 하루는 어떤 일로 남자친구가 서운하게 했는데 화가났던 나는 전화기를 꺼버리고 잠적을 해버렸다. 자취방 앞으로 찾아온 남자친구에게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1시간 넘게 기다리게 했었는데, 문을 열어보니 장미꽃 한 송이를 사들고 와서는 미안하다며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 그 아이가 내 첫사랑이 아니었다면 난 나쁜 연애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난 이기적이었고 내 감정을 전달하는데 솔직하지 못했으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 숨어버렸다. 그런 나를 남자친구는 달래고 혼내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털어놓는 연습을 시켜주었다. "I keen ye(너를 이해하고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연애를 하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둘 다 행복한 연애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는 점도. 특히 연애에 있어서 나의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이기심을 무너뜨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거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심이 깔려있어야 한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사랑을 배웠다고 했지만, 난 대부분의 사랑하는 방법을 그 아이에게서 배웠다.


처음에 내가 외국으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가고 싶다고 하자 남자친구는 나랑 같이 가겠다며 함께 영어 시험 준비를 했다. 그러다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가서는 필요 학점을 이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자친구는 나와 함께 가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외국에 꼭 가야겠냐며 매달리다가 결국엔 독일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왜 자기를 두고 갔냐며 취중 하소연을 하고 있는 거였다.


첫사랑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떨어져 있는 4개월의 시간은 정말이지 억겁의 시간 같이 느껴졌었다.





너의 첫사랑 이야기..+

시미의 첫사랑은 같은 고향 친구였다. 남자답고 로맨티시스트였지만 시미의 네임스 데이에 보내준 선물이 시미가 좋아하지 않는 빨간색이었을 정도로 세심하지가 못한 사람이었다. 아쉽지만 내가 기억하는 시미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이게 전부다. 시미에게 다시 물어보고 내용을 채워 넣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미 우리 기억에서는 잊힌 사람이다. 


시미의 네임스 데이 날로 다시 돌아가보면, 시미의 남자친구는 그 즈음 더 자주 화를 냈고 보내온 선물은 시미가 싫어하는 취향의 것이어서 시미는 시미대로 기분이 상해있었다. 사실 우리가 지내고 있던 독일의 Frankfrut Order라는 마을은 시미의 남자친구가 사는 곳에서 5시간이면 운전을 해서 올 수 있는 거리였다. 정말 만나고 싶다면 만날 수 있는 거리였지만 남자친구는 그곳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교환학생 학기가 중간 즈음 흘러갈 때 시미는 첫 사랑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매일 울고 있는 시미를 달래주면서 나 또한 굉장히 괴로웠는데, 한 편으로는 이미 많은 감정을 나눴던 친구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똑같이 3년이나 사귄 친구의 연애가 끝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이런 결말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젊었고 독일 작은 마을에서는 매일 같이 파티가 열렸기 때문에 얼마지 않아 시미도 새로운 연애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의 남자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 하루는 파티에서 만난 독일 청년이 시미에게 데이트를 신청했고 시미는 경찰이었던 그 남자와 경찰차를 타고 데이트를 했다고 했다. 다른 날은 시미와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온 남자가 시미에게 다가와 시를 써주고 사랑 고백을 했고, 또 다른 날은 누군가 플랫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가보니 터키에서 온 교환학생 남자아이가 시미에게 전해달라며 꽃 화분을 선물로 두고 갔다. 철저한 J형 인간인 시미는 어느 날 나에게 진지하게 상의할 게 있다면서 빈 종이에 열심히 정리해 놓은 장표를 보여줬다. 갑자기 남자가 세 명이나 생겨서 혼란스럽다며 어떤 남자가 더 나을 것 같은지 내 의견을 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 독일 경찰: 경찰이라는 게 멋있음. 성격이 좋고 몸이 좋음. 독일어를 배울 수 있음!

- 슬로바키아 같은 과 남자아이: 로맨틱하고 책도 많이 읽음. 같이 이야기하는 게 즐거움.

- 터키 남자아이: 착하고 순수함. 차가 있어서 같이 주변 여행 다닐 수 있음.


그 남자들의 장점과 단점을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해 놓은 장표를 보고 한 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장표 내용이 기억날 정도로 말이다.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삶도 같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무언가 끝나기도 할 때 다시 무언가가 시작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미는 저 남자들 중에 어떤 남자를 만났을까? 힌트가 있다면 시미는 저 남자 중 한 명에게 나중에 프러포즈까지 받게 된다.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구독, 좋아요, 댓글까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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