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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MIYA Nov 10. 2020

맛·기·담_03(完).<웰컴 투 X-월드> 공감의 맛

맛의 기억을 담다_03. / #웰컴 투 X-월드


 글을 써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떠한 음식의 맛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화요일 저녁, 주제로 받은 '어른의 맛'을 알려준 음식이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선옥 작가님의 <행복한 만찬> 마지막 문장, '쓴 내 보다 더 비릿한 인생의 풋내 때문에 몸을 떨어져 할 일이 오게 되고야 말 것을 알기 때문에'를 보면, 아직 저는 인생의 쓴 내를 아직 못 경험해본 것 같습니다. 그런 탓에 먹지 못하는 것을 얼릉 얼릉 삼켜버리지 못하는 것 같달까요.


 머릿속 생각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무엇이 있을까 구글링*을 해봐도 도저히 나오지 않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영감이라도 받아보자 했던 참이었지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고장 난 것 마냥, 종종 추천하지 않았으면 하는 영상들을 잔뜩 추천합니다. 오늘도 유튜브 알고리즘은 제 마음에는 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제 마음을 깊게 후비는 영상을 추천했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엄마에 관한 영상이었습니다. 영상 안에는 편안하게 잠옷을 입은 엄마와 딸이 조곤 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속 주인공인, 모녀입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 웰컴 투 X-월드 >. 남편 없이 12년째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엄마 미경과 그런 엄마를 보며 결혼제도를 싫어하게 된 딸 태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큐멘터리 속 엄마 미경은 나의 엄마와 비슷한 점이 참 많았습니다. 엄마 미경은 감정 기복이 심한 시아버지로 인해 매번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도 가족이라며 시아버지를 묵묵히 모시고 있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집이 답답하다는 이유로 딸 태의의 방문을 떼어버리고, 가족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얼굴만 남겨두고 다 잘라버리고···.


  나의 아빠도 엄마에게 말이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 이따금씩 욱하는 성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실에서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소리가 가끔 제 방까지 들려와 귀 기울여 보면, 거의 대부분은 아빠의 잘못이지만 머릿속엔 아빠의 말에 상처를 받고 주눅 들어있는 모습의 엄마가 그려집니다. 아빠가 나가고,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저와 제동생은 방문을 벌떡 열고 나갑니다.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양쪽에서 엄마를 꼭 안아주면 엄마는 매번 괜찮다고, 아빠 정도면 좋은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래도 아빠인데.... 너희가 매번 엄마 편들어줘서 아빠도 불쌍하잖아..."


 다큐멘터리에 속 엄마 미경은 새벽부터 나가 몸을 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몸이 자주 아픕니다. 아파도 한 시간 반 일찍 일어나서 시아버지의 아침은 꼭 챙기고, 몸살약을 입에 넣은 채 출근을 합니다. 나의 엄마는 방문교사입니다. 낮에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쓰이는 교재를 바리바리 챙긴 뒤, 밤이 될 때까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수업을 합니다. 집에 오면, 온몸의 고단함에 씻지도 못하고 거실에 앉아 먼저 한숨을 돌립니다.


 다큐멘터리 속 두 모녀는 올해 드디어, 할아버지와 분가하게 되었습니다. 딸 태의는 엄마의 첫 독립이라며 축하를 해줍니다. 이제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누군가의 엄마, 며느리가 아닌 미경으로. 그런데 엄마 미경은 딸과 새로 이사를 갈 집을 구한 뒤, 축하파티를 하기 위해 노래방을 가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너네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릴 때 울면 어떡하냐.... 이제 혼자잖아.... 안쓰러워서 어떻게 해...."


 다큐멘터리를 보며, 엄마 미경이 안쓰러운 우리 엄마를 보는 것 같아 정말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엄마들은 그렇게 희생해왔으면서도 왜 또 마음을 쓰고, 눈물까지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엄마들의 너무나도 따습고 여린 마음에 안타까워 눈물이 나는 게 더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어른의 맛을 알게 해 준 음식이 없어, 이리저리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상으로 글을 씁니다. 여전히 저는 어른의 '맛'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공선옥 작가가 말씀한 인생의 쓴 맛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없는 대로 그저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해보니, 이제 '어른의 맛'이라고 했을 때에 떠오르는 음식은 없지만 떠오르는 사람은 생겼습니다. 바로 나의 엄마입니다.


 아마도 엄마의 온몸의 고달픔, 희생,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에 공감할 수 있게 될 즈음이면 '어른의 맛'을 알게 되겠죠? 그리고 훗날, 제가 처음 맛보게 될 '어른의 맛'은 쓴 맛도 아니고 비릿한 맛도 아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엄마들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감의 맛'일 것 같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 - (유튜브에서 사용자 시청기록 데이터를 분석해 자동으로 영상을 추천해주는 기능)

구글링* - (Google 포털에서 검색을 하는 행위)


#웰컴 투 X-월드 ( Welcome to X- world ) / 한태의

한국에서 개봉한 2019년에 개봉한 80분 다큐멘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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