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제라티에서 나헤라
분명 어제 일인실 호스텔에서 잤는데 옆 방 남자와 같이 잔 느낌의 밤이었다. 코를 계속 킁킁대는 옆 방 남자의 소리는 밤새 너무 선명하게 들렸고 예상한 대로 잠이 들자 그 소리는 코를 고는 소리로 바뀌었다. 거슬리는 소리로 예민해졌던 그 밤이 지나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역시 아침에 눈을 뜨자 어제의 짜증스러운 마음은 가시고 새로운 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차 오른다. 어젯밤 그렇게 소리가 거슬렸던 옆 방 남자는 얼마나 밤새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여유 넘치는 아침이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니 옆 방 남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코를 킁킁댄다. 뚱뚱한 몸집을 가진 옆방 남자는 아일랜드에서 왔고 몸이 더 안 좋아지면 돌아갈 거라고 한다. 나도 무릎이 아파서 계속 몸이 하는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게 이 길의 매력일까? 어젯밤은 그 소리가 그렇게 짜증이 났었는데 아침이 되자 같은 걷는 사람 입장에서 안쓰러움을 느끼는 마음이 갖게 해 준다는 것.
호스텔 주인 여자는 길을 나서는 나에게 좋은 동행을 만나면 좋을 하루가 될 것이라 응원해준다. 아직은 약간은 어두운 길을 나서는 데 어제 버스를 같이 탔던 브라질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영어를 잘 못 한다면서 구글번역기와 짧은 영어를 섞어가며 이 길의 즐거운 동행이 되었다. 두 아들의 엄마이고 올해 육십이 되었다는 그녀는 브라질에서도 트레킹을 매우 좋아하여 자주 길을 나선다고 했다. 네 시간 정도를 같이 걸으며 우리는 베이비 토킹이라면서도 브라질의 부패한 정치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했다. 마법의 주문이였을까 마법의 주문문이 마음에 들어와서일까? 호스텔 주인이 얘기했던 대로 좋은 동행을 만나 멋진 하루를 보냈다. 혼자도 좋지만 때때로 마음이 잘 맞는 동반자는 길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든다. 인생도 그렇듯이. 그리고 내가 먹는 마음이 나의 인생을 기분을 좌우한다. 나의 길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임을 다시금 느낀다.
나보다 더 멀리 가야 하는 그녀와 서로에게 즐거운 동행이 된 것에 대해 감사하며 뜨거운 포옹과 함께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헤어진다. 잠깐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닮은 사람을, 합이 맞는 사람을 알아보는 듯하다. 잠깐 말을 섞어도 뭔가 불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어는 잘 안 통해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다. 이 길의 매력은 사회생활과 다르게 불편한 사람은 패스 버튼을 누르고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도 패스 버튼이 있다면 너무 잔인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간 나헤라 공립 알베르게에서 내가 한국인 그룹에게 패스당한 듯하다. 한 무리의 한국사람들이 알베르게 식당을 차지하고 앉아 있길래 반갑게 안녕하세요했는데 중년의 이 그룹 사람들은 나를 한번 훅 살펴보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시쿤등하게 인사하고는 고개를 휙 돌린다. 어떤 사람들은 해물탕도, 닭볶음탕도 해 먹으며 다른 한국인이 보이면 같이 먹자고도 한다는데 이들은 해물탕을 끓일 생각도 나에게 말 섞을 생각도 없는 듯하다. 흥칫뽕, 나도 패스거든요!
나헤라는 중세의 마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곳이다. 황토빛 건물이 오늘처럼 흐린 날에는 우중충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꾸미지 않은 투박한 멋스러움이 있다. 광장의 바에 자리를 잡고 자그마한 핀초스 세 개를 시켜 상큼한 화이트와인 한잔 마시니나니 여유지고 좋다. 어둠이 내리고 불빛이 켜지니 마치 중세의 도시 속에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멋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