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주 31일차 : 야마구치~후쿠오카
어제 신야마구치에서 라이딩을 멈추고 자전거를 주차장에 둔 채, 전철을 타고 야마구치의 캡슐호텔에 가서 숙박했다. 그래서 다시 신야마구치로 돌아가야 했기에 아침 일찍 짐을 챙겨 나왔다. 출근하는 일본 직장인, 등교하는 일본 학생들과 함께 전철에 올라탔다. 참 힘들어서 내가 별짓을 다하고 있구나….
다행히 공용 주차장에 메어 두었던 자전거는 어제 그대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심지어 트렁크백도 귀찮아서 안 떼고 두고 왔었다). 이틀 내에 후쿠오카에 갈 목적이었으나 어제 갑작스러운 펑크로 인해 길게 타진 못했지만, 대신 오늘 170km를 달릴 수 있다면 후쿠오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둘러 호텔에서 가져온 짐들을 다시 트렁크백에 집어넣고 출발 준비를 했다. 신야마구치 역에는 몇몇 라이더들이 자전거를 정비하며 그룹 라이딩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30대보다는 자전거 동아리의 대학생들인 듯한 20대 정도로 보였다. 6주간 오랜 나 홀로 여행으로 외로움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내 마음이 '나도 저 사람들이랑 함께 라이딩하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신야마구치역을 홀로 떠났다. 2년 뒤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일본 학생들과 꼭 자전거를 타리라…
혼슈의 마지막 종착지인 시모노세키까지는 사실상 3번 국도만 타기만 해도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해안가라던지 멋진 경치는 기대할 수 없고, 오늘도 역시 화물 트럭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듯 삭막하고 지루한 국도 풍경만 시야에 되풀이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뭐, 그래도 길은 깔끔해서 좋고, 구글맵을 보지 않고 3번 국도 표지판만 보고 달려도 되어서 편하긴 하다만.
오전 11시쯤 점심을 먹으러 한 가게에 들렀다. <드라이브 인 미치시오>라는 바지락 요리로 굉장히 유명하다는 가게였다. 비젠에서 들렀던 <오사카야>처럼, 이곳도 24시간 국도변에서 운영되면서 야간 운전자들이 쉬어가며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가게였다. 무려 구글 리뷰가 5000개다.
리뷰 개수답게 가게 내부는 일본 현지인들로 바글바글했다. 이름을 가타카나로 대기자 리스트에 써두고 30분 정도는 기다린 것 같았다. 앉자마자 공깃밥과 바지락 된장국 중자를 주문했다. 된장국은 정말 흔한 대파 하나 떠다니지 않고 미소된장만 풀은 듯 심플했지만, 정말 바지락이 푸짐하게 한가득 담겨서 나왔다. 바지락 껍데기가 절반이라 중자 사이즈도 내게는 부족한 양이었다. 어차피 시모노세키 수산물 시장도 들를 예정이었기에 지금 먹는 양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재빠르게 해치우고 가게를 나왔다.
정오 즈음 드디어 어제 도착하고 싶었던 시모노세키를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여기까지는 한국인들이 들르는 관광지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관광지 안내 간판에 한국어가 정말 오랜만에 보여서 반가웠다.
혼슈에서 큐슈로 넘어가는 다리인 간몬교가 간몬 해협과 함께 서서히 시야 멀리에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와 함께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간몬 해협이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나는 혼슈 라이딩이 드디어 끝났다는 벅찬 후렴함과 함께, 간몬 해협의 풍경에 넋을 잃은 채 마지막 혼슈의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간몬교를 지나 큐슈로 넘어가기 전 먼저 가라토 시장에 들르기 위해서 간몬교를 지나쳤다. 길게 이어진 해변공원에 잔뜩 수많은 인파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 오후임에도 가라토 시장은 인산인해로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지나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듯한 길게 늘어선 줄의 유명한 가게들은 단번에 포기하고, 별로 웨이팅이 길지 않은 가게에서 초밥들을 골라 담아 계산했다. 복어가 유명하다길래 복어회도 먹어본 적 없어서 한 접시를 골라 봉지에 담아 나왔다.
쫄깃쫄깃했던 식감의 복어회는 둘째 치고, 가장 맛있었던 것은 생새우초밥. 과장 보태서 일본 전체에서 먹었던 초밥들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가격도 너무 비싸지 않고, 맛이 너무 신선했다.
자전거로 간몬교는 건널 수 없다. 대신에 사람들이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지하로를 통해서 간몬 해협을 건너 큐슈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해협을 지나는 지하로지만 사실 딱히 볼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긴 터널을 사람들과 함께 터벅터벅 걷다 보면 어느새 큐슈에 도착해 있다. 지상으로 나와 바라보는 간몬교 모습도 내가 왔던 곳인 반대편에서 바라보던 모습과 똑같아 꼭 마치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나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큐슈의 첫 시작점인 기타큐슈까지도 거의 오늘 100km를 달려온 상황이었다. 기타큐슈도 이곳저곳 유명한 관광지들이 있지만 그곳들을 들러서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오늘 후쿠오카까지 달린 후에 내일 후쿠오카를 돌아다니며 하루를 쉬고 싶었다. 아쉽지만 멈추는 일 없이 빠르게 시내를 통과하고는 그대로 3번 국도를 다시 계속해서 밟았다.
예상대로 오후 4시쯤이 지나자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늘 역시 긴 거리이니만큼 야간 라이딩은 이제 당연하게 각오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통행량이 많아 차량 불빛들로 도로는 밝았고, 외지고 어두운 곳을 달리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밤이 되면 오히려 터널이 밝아서 낫다. 50km, 40km, 30km… 후쿠오카까지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런 표지판을 볼 때마다 여기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마음속에 일어나곤 했다. 배기음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가며 시끄럽게 도로를 내달리는 폭주족들도 자주 보였다. 국도 1번과 2번, 비와호 이후로 폭주족은 오랜만이었다. 대체로 한 자리 숫자의 국도에는 항상 폭주족들이 산재하는 것만 같다.
한 번은 차들과 함께 국도를 달리던 도중, 내 옆을 지나가던 차량에서 정체불명의 소름 끼치는 한 남자의 괴성이 들렸다. 어두컴컴한 차길을 달리고 있는 와중이었어서 정말 간이 철렁하고 자전거가 휘청거릴 정도로 깜짝 놀라 위험한 순간이 될 뻔했다.
목소리도 초등학생~중학생은 될 법한 앳된 목소리였기에, 나를 놀리기 위해 굳이 국도 한복판에서 유리를 내리고 내게 소리를 지른 것임이 분명했다. 차량 속도를 따라갈 수만 있었다면 따라가서 욕을 뱉고 싶을 만큼 화가 났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계속해서 페달을 밟았다.
오후 8시가 되어서야 드디어 후쿠오카 시내에 도착했다. 여행 중 가장 늦은 시간까지의 라이딩이었다. 후쿠오카 거리는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유명한 야타이(포장마차)들이 거리마다 즐비해 있었고 대부분 길게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냥 쉬고 싶었기에 포장마차에 들를 여유는 없었다. 사실 후쿠오카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왔다. 최소 1만 엔 이상의 비싼 호텔들밖에 예약할 수가 없었다(심지어 호스텔 가격이 8천 엔이었다). 다른 도시를 가면 아무리 주말이더라도 항상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의 공실이 보이는데, 후쿠오카에서는 모두 만실이라 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오늘도 '그래, 이제 넷카페 한번 갈 때 되었지' 하며 넷카페로 향했다. 오호리 공원의 근처 넷카페에서 체크인 후 전광석화의 속도로 샤워를 하고 나와서 바로 옆에 있던 사이제리야로 향했다. 오늘도 저녁을 사이제리야의 값싼 피자로 때웠다.
후쿠오카까지 지금까지 총 달려온 거리를 어플로 계산하니, 이미 3000km가 넘은 3200km가 찍혀 있었다. 아마 남은 거리를 고려하여 최남단까지 간다면 3700km 정도가 찍힐 것으로 예상되었다. 글 제목은 3000km라고 썼는데, 4000km로 바꿔야 하나? 어쨌든 남은 종주 거리는 대략 500km. 4일이 걸렸던 서울~부산 국토종주거리인 633km보다 짧은 거리였다. 죽을 만큼 힘들지만 조금만 힘내자. 딱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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