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종주 30일차 : 이와쿠니~야마구치
일본종주 30일차 : 이와쿠니~야마구치
일찍 잤던 덕분에 오전 7시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어제 감기 때문에 불과 40km밖에 가질 못했기 때문에, 오늘 만회해야겠다는 집념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 170km 떨어진 기타큐슈까지 잘만 하면 오늘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감기기운과 몸상태도 어제보다 나아진 기분이었다.
어차피 이틀 뒤 목적지인 후쿠오카에 도착하면 하루 정도 쉴 예정이었기에 오늘 적게 타면 내일 많이 타야했고, 오늘 많이 타면 내일 적게 타도 될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 기타큐슈까지 가서 혼슈 라이딩의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길고 길었던 혼슈만 벗어나면, 일본종주라는 마지막 결승선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이른 시간이다 보니 일본 학생들도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고 있었다. 띄엄띄엄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 차림의, 정말 만화나 미디어에서만 보던 전형적인 일본 남학생의 모습이다. 히로시마까지는 나름 해안선을 따라서 달렸더라면, 여기 야마구치 현에서부터는 많은 산간 도로를 달려야만 한다. 사실 이곳에서도 바닷가 쪽으로 달릴 수 있었지만 달려야 할 거리가 길어지므로 쭉 내륙으로 직진해서 거리를 줄이고 싶었다. 웃픈 일이지만 종주를 시작하기 전 구석구석 일본의 시골과 자연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마음속에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이 고생길을 하루 한시라도 일찍 끝내자는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산간 도로이지만 높은 산맥을 통과한다던지 경사가 심한 곳은 없었다. 쌩쌩 국도를 달리는 차들과 함께 차선 끝을 달리던 와중 갑자기 바퀴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 항상 생각의 흐름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설마? 아닐 거야. 노면 문제일 거야. 노면 때문에 덜컹거리는 거야…'
라고 하지만, 덜컹거림이 계속해서 지속되면, 바퀴에서 일정한 속도의 덜컹거림이 느껴진다면 그때서야 노면이 아니라 내 자전거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전거를 갓길에 멈춰 세우고는 자전거 바퀴를 만져보았다.
그렇다. 드디어 펑크가 터진 것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네….’
불과 이와쿠니 시내를 빠져나온 지 40분밖에 되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170km 이상을 달려야 하는 오늘 같은 중요한 날에 펑크가 터진 것인가. 신이 원망스러웠다. 또 하필이면 도시 부근도 아니고 이런 망망대해 같은 산 중턱 한가운데에서 펑크가 난 것인가….
사실 생각해 보면 이미 3000km 가까이 달렸는데 펑크가 나지 않았던 것이 신기했던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어쨌든 마음이란 간사하고, 지금 살고 봐야 할 일이니까.
다행히 갓길이 아니라 바로 근처에 도로에 작은 주차공간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타이어 수리를 하기로 했따. 여분의 타이어 튜브와 공기 주입기까지 모두 철두철미하게 들고 왔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직접 펑크를 수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국토종주에서 몇 번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때마다 자전거 수리점에 출장수리를 불렀다. 그야말로 펑크도 잘 수리할 줄 모르는 막무가내로 험한 외국에 왔던 나다.
일본에 출장수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화를 하지 못하기에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트렁크백에서 튜브와 공기 주입기, 타이어 장갑, 작업용 장갑까지 준비해 온 것들을 모두 꺼냈다. 한번 해보자. 막막했지만 이번 여행 이후 자전거를 더 이상 타지 않을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출장수리에 계속 의존할 수는 없었다.
한쪽에는 유튜브에서 다운로드해 둔 타이어 수리 방법 영상을 휴대폰에 켜두고, 차근차근 배운 대로 타이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안에 있던 튜브를 새 튜브로 갈아 끼워 넣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아무리 공기 주입기를 꽉 끼우고 펌프를 눌러도 튜브에 채워지는 느낌이 없었다. 공기가 새지 않도록 제대로 주입기 입구를 끼우지 않아서일까? 공기 주입기가 문제인 건가?
그렇게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바람을 넣으며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바퀴를 부여잡고 낑낑대고 있던 찰나, 펌프에서 작은 쇳조각 같은 것이 나가떨어졌다. 공기 주입기가 이미 고장이 나 있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인내심을 붙잡고 있던 정신줄도 나가떨어진 것만 같았다. 누굴 탓하랴, 이것 역시 부피와 무게를 고려해서 작고 싼마이의 10000원짜리 제품을 가져온 내 탓이겠지…
결국 오늘도, 자전거 펑크를 수리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었다.
출장을 부를 수도 없으니 이제 자전거 수리점까지 직접 걸어가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구글맵에 ‘자전거 샵’을 검색하자, 최소 걸어서 2시간 30분 정도를 가야만 했다. 걷기도 싫지만, 그것보다 문제는 오늘 기타큐슈까지 170km를 달려야만 하는데 펑크를 고치던 시간을 포함해 약 4시간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폭풍을 휘두르며 옆에서 화물차들이 쌩쌩 지나다녔다. 이런 외진 도로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두 손으로 질질 끌고 걸어가는 나를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펑크 수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여기까지 자전거를 끌고 온 거야? 하고 누군가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뭐 어쩌겠어,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전거를 고치느라 1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지도 않았는데도, 30분 정도 걷자 피로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체력적인 부분보다는 정신적인 소모와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잠시 회복을 위해 주유소 옆에 아무 공터에 앉아서 미리 사두었던 메론빵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내 눈앞에서 주유소를 쌩 하고 두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쳐갔다. 딱 한눈에 봐도 일본 장거리를 여행 중인 것 같은 라이더들이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공기 주입기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그들을 향해서,
“스미마셍!!!”
하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가던 길을 달려갔다. 저들을 무조건 잡아야 된다,라는 생각에 튜브가 터진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았지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고장 난 자전거로 그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러 번이나 뒤에서 목이 터져라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무시를 하는건지 들리지 않는건지 전혀 내 목소리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라이더 둘을 놓쳤따.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들이 시야의 사각 뒤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기나긴 국도를 처량하게 걷기 시작했다.
한 번은 터널이 나왔는데, 정말 좁은 가도를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야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끌고 걷다가, 중간에 벽에 튀어나온 뾰족한 날을 보지 못하고 어깨를 부딪히고 말았다. 어깨는 상처가 났는지 욱신욱신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벽면에 묻어 있던 먼지가 온통 옷에 묻어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전거 수리점이 있는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전거 수리점에는 일흔은 되셨을 것 같은 주인인 듯한 분이 계셨다. 가게 단골손님인지 주인 분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시는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주인 분의 말을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워 옆에서 손님 분께서 통역하듯 대화를 도와주셨다.
특히 로드 자전거의 경우에는 튜브의 펑크를 패치로 때우기에는 너무 폭이 좁아 튜브를 아예 교체해버리는데, 이곳 주인 분께서는 직접 펑크를 패치로 막아주셨다. 패치로 펑크를 수리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신기하게 그 광경을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주인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 뒤, 수리비를 건네드리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오후 12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마땅히 주변에 점심을 먹을 가게도 없어 그냥 길가에 보이던 마트에 가서 식빵과 우유를 산 후 벤치에 앉아서 느긋하게 먹었다. 이미 오늘 기타큐슈까지 가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였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식빵을 씹어먹었다. 어느 청소하시던 일본 아주머니 분께서 종주 푯말을 보셨는지 말을 걸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힘없고 처량한 모습이었을텐데, 그래도 응원의 말씀을 건네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4시간의 공백을 메꾸기엔 불가능했지만 조금이라도 오늘 더 많은 거리를 가기 위해 오로지 라이딩에만 집중해서 페달을 밟았다. 지나가면서 야마구치 현의 아름다운 일본 시골 풍경을 많이 보았지만 그 경치를 유유히 즐길 만큼의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보다 더 시급했던 것은 기타큐슈까지 갈 수 없게 되었으니 어디서 라이딩을 끝내야 할지 다시 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 시골이다 보니 숙박할 게스트하우스가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고, 넷카페들도 정말 40~50km 단위로 하나씩 있었다.
처음에는 호후 시라는 곳에 있는 넷카페에 머물려고 했다. 호후에 도착했을 때 오후 4시 30분이어서 아직 꽤 날이 밝았다. 너무 일찍 라이딩을 끝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한참을 넷카페에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솔직히 넷카페의 좁은 부스에서 담요만 깔고 자는 것은 고역이기도 하고, 특히 넷카페에 들어가기가 항상 망설여지는 이유는 넷카페와 게스트 하우스의 금액 차이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숙박 어플의 지도를 뒤지던 도중 값싼 금액의 캡슐호텔이 야마구치에 있었다. 하지만 야마구치는 내가 가는 루트에는 다소 떨어져 있는 도시였다. 하지만 도저히 넷카페만은 가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넷카페를 지나쳐서 다시 출발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짱구를 계속해서 굴리며 페달을 밟았다.
야마구치로 가려면 적어도 루트가 아닌 길로 10km를 더 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싣고 전철을 타자니 소위 ‘점프(종주 중간에 대중교통 혹은 차량의 힘을 빌려서 루트를 건너뛰는 것)’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루트에 있는 신야마구치 역에 자전거를 세워둔 다음에 짐만 들고 야마구치 역으로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전철을 타고 신야마구치역으로 돌아와서 자전거를 타는 것. 그러면 점프를 하지 않은 셈이었다. 시험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거기에 얽매어야 하냐고 누군가는 묻겠지만 내 자존심이 점프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야간라이딩 없이 정말 해가 지기 직전에 신야마구치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본의 역 근처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이곳에 세워둘 생각이었다. CCTV가 없는 공용 무료 주차장이라 자전거 도난 위험도 있었다. 만약 자전거가 도난당한다면… 그건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할 문제였다.
피폐해진 정신과 함께 전철에 올라타자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도 야마구치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되니 잠깐 눈만 붙이자,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눈을 떴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야마구치 역이라 생각하고 덩달아 내렸는데, 알고 보니 야마구치 역보다 한 정거장 일찍 내리고 말았다.
유다온센이라는 곳이었다. 현을 통과하는 전철이다 보니 역 간 거리가 길어서, 한 정거장 차이인 유다온센 역과 야마구치 역도 거리가 3km나 되었다. 아침에 10km를 걸었는데 또 3km를 걸어서 야마구치의 숙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일본 종주인지 일본 국토대장정인지…
오늘 간의 고생에 보상 심리라도 발동했는지 가는 도중 마트에 들러서 먹고 싶은 음식이란 음식은 산더미처럼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결국 1시간이나 걸려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캡슐 호텔로 예약했는데, 건물이 호텔이어서 이곳이 맞나 싶었다. 알고 보니 숙소 자체는 호텔이지만 2층만 캡슐 호텔로 따로 운영하는 듯했다.
빨리 저녁을 먹고 싶어 부랴부랴 샤워를 마친 후, 세탁기에 200엔을 넣고 옷을 세탁했다(세탁비도 다른 곳에 비해 정말 저렴한 편이었다). 원래 호텔이어서 그런지 로비도 너무 넓고, 씻을 수 있는 세면대 및 샤워장도 정말 넓고 깨끗하고 잘 되어 있었다. 넷카페를 가지 않고 전철을 타고 야마구치에 오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득 장바구니에 담았던 음식들을 책상에 차리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꼬치 한 입과 새우초밥 하나를 입에 집어넣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타큐슈까지 가자라는 결의에 찼던 아침도 무색하게 근처도 못 가고 야마구치에서 끝난 라이딩. 그렇지만 그렇게 하루종일 고생하고 먹었던 저녁이어서 그런지 이 날 먹었던 저녁이 가장 행복했던 저녁 식사였던 것 같다. 이런 행복을 위해서 신이 나를 고생시켰던 걸까. 내일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펑크가 나든 사고가 나든 내일은 무조건 혼슈를 벗어나도 큐슈로 넘어갈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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