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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Apr 25. 2024

히로시마에서 만난 동갑 여성

일본종주 28일차 : 마츠야마~히로시마

  아침에 눈을 뜨자 뭔가 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한 침방울을 삼킬 때마다 느껴지는 목의 따가움… 편도가 일어나 보니 부어 있었다. 어제 환절기의 아침 찬바람을 맞으며 라이딩을 한 탓이었을까? 자주 목이 붓는 체질이라 직감적으로 감기의 초기 단계임을 알고서는, 평소보다 양치질을 더 열심히 하고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내일이면 거의 70~80% 이상의 확률로 감기가 더 심해질 것이 뻔했다.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붓지 않기 위해선, 오늘 몸 컨디션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여정의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라이딩을 해야만 했다. 늘어나는 여정에는 숙박비라는 엄청난 세금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게스트하우스 1층의 주방으로 내려와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돼지고기를 프라이팬에 구웠다. 일본 마트에는 삼겹살을 팔지 않는다. 정확히 삼겹살을 팔지 않는다기보다, 우리가 먹는 구이용 삼겹살의 ‘최적 두께’의 고기를 팔지 않는다. 샤브샤브용으로 얇게 썰어둔 것이 많다. 하지만 삼겹살의 두께보다는 조금 과하지만, 통삼겹살이라고 하면 괜찮을 만큼의 삼겹살 부위를 마트에서 발견해서 사 왔었다.


‘두꺼워서 잘 안 굽히네… 빨리 출발해야 하는데.’


삼겹살은 10분 이상 구워서 잘라봐도 붉은 빛깔을 띄고 있었다. 대충 익었다고 보이는 색깔이 되었을 즈음에, 전자레인지에서 데워둔 햇반과 함께 고기를 먹었다. 한국식이라고 만들었지만 쌈장도, 상추도 없는 고기와 밥뿐인 식사…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에는 삼겹살 냄새가 온통 퍼져 있었다.




마츠야마에서 시코쿠 종주의 끝 야와타하마까지는 70km밖에 되지 않아 오늘 여유롭게 가도 도착할 수 있었다. 야와타하마에서 배를 타고 큐슈로 건너갈 생각이었다. 완전히 스즈메의 루트였다(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스즈메가 고향에서 시코쿠로 건너갈 때 이 루트로 갔기에).


마츠야마와 야와타하마로 가는 길에 ‘고양이 섬’으로 한국 매체에서도 자주 소개된 아오시마가 있다. 내가 예상했던 여행 루트는, 마츠야마에서 출발해 중간에 배를 타고 아오시마에 들렀다가, 야와타하마까지 가서 그날 당일 배를 타고 큐슈의 오이타로 건너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많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아오시마로 가는 배는 하루에 단 두 번 있으며, 그러므로 나는 아침 8시 배를 타야 한다. 마츠야마에서 항구까지는 40km. 항구에 8시 전에 도착하기 위해선 적어도 새벽 5시 30분 전에는 출발해야 하고, 8시 전 도착하더라도 탑승 인원이 초과되면 갈 수가 없다. 사실상 늦게 일어난 지금 이미 가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두 번째, 야와타하마에서 오이타로 가는 마지막 배 시간 전엔 야와타하마에 도착해야 한다. 그리고 오이타에 숙소를 잡아야 한다.


세 번째, 야와타하마에 알아 둔 소금빵이 최초로 탄생한 가게라는 ‘팡 메종(Pain Maison)’의 본점이 하필 휴무일이었다. 왜 난 이렇게 운이 좋지 않은 것인가.


네 번째, 막상 여기까지 와서 오이타에서 최남단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지도를 자세히 보니 난항이 예상되었다. 숙소를 찾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도시라고는 미야자키 한 군데였다.


다섯 번째, 목이 아프고 감기기운이 있다…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복잡한 머리를 싸매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는 길, 아침햇살에 어젯밤과는 또 다른 느낌의 도고 온천이 보였다. 봇짱 열차와 봇짱 시계탑 앞에서는 지역 방송국에서 나온듯한 아나운서와 카메라맨이 보였다.


아침에 본 도고 온천과 봇짱 시계탑

도고 온천 쪽을 빠져나와 마츠야마 시내를 달렸다. 아침 8시 30분, 도로를 달리는 많은 차량과 함께 스쿠터를 타고 있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스쿠터에 탄 사람들 중 여자도 많다는 게 참 신기했다. 모두들 다 출근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때까지도 나는 어디로 갈지를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길에는 마츠야마 성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하지만 오늘 안에 야와타하마에 가서 큐슈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마츠야마 성을 들러 둘러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목이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하니, 도저히 페달을 밟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왜 이러고 있을까. 왜 나는 일생일대에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일본의 도시들을 지나면서 제대로 구경도 즐기지도 못하고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까짓 돈 때문에?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 개고생 하려고 여기에 온 거야?


몸이 아프고 견디지를 못하자, 더는 나의 투지와 현실 감각으로 똘똘 무장했었던 헝그리 정신마저도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성엔 관심도 없는데 꼭 어린아이가 오기를 부리듯이, 그래. 마츠야마 성에 갈 거야. 성도 둘러보면 기왕 늦어버린 거, 히로시마로 건너가자. 히로시마에서 시모노세키, 그리고 후쿠오카까지 모두 다 후회 없이 둘러보고 가자,라고 마츠야마 길거리 한복판에서 결정했다.


그렇게 단 하루의 결정으로 큐슈에 도착하는 나의 여정은, 결과적으로 거의 일주일만큼 더 늘어나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호주머니 사정에 쪼들리는 돈 없는 대학생 여행객 신세였기에, 마치 스트레스를 돈으로 산 느낌이었지만 여행이 아니라 점점 고생길이 되어가고만 있는 종주를 견디고 있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은근히 마음속에 걸리던 삿포로와 도쿄, 그리고 오사카와 나고야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인 후쿠오카를 가지 않는다는 것에도 마침표도 찍을 수 있었다.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히로시마로 가는 배편은 언제든 있으니 시간에 쫓길 일 없이 마츠야마 성을 갈 수 있었다. 히로시마에는 값싼 게스트 하우스가 정말 많이 보여서 숙소를 찾는 데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나는 곧장 바퀴를 돌려 마츠야마 성으로 향했다.


보통 해자로 둘러싸인 채로 평지에 있는 성들과는 달리, 마츠야마 성은 특이하게 산 위에 위치해 있다. 직접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마츠야마 시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마츠야마 성의 정상 부근까지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


자전거에서 내렸더라도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었다. 270엔 티켓과 함께, 조금이라도 부은 목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자판기에서 따뜻한 유자 음료를 하나 뽑아 마셨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조금 위로 걸어 올라가자, 마츠야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나는 성에 왔는데, 마치 전망대에 올라간 듯한 도시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꽤나 신선한 느낌이었다. 야경으로 보면 더욱 이쁠 것만 같았다.


정상 부근에 오르고 나면 일반 일본 성과 다를 바 없는 평지가 나타난다. 실제 마츠야마 성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선 다시 입장료를 내고 티켓을 사야 한다. 아침 일찍 왔는데도 줄이 어마어마해서, 아무리 여유가 있다지만 줄을 기다리는 데에까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아 마츠야마 성 내부를 보는 것은 포기했다.



마츠야마 성에 있던 기념품샵에는 귤이 특산물인 에히메 현이다 보니  다양한 귤 관련 굿즈들을 팔고 있었다. 꼭 제주도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귤 과자, 귤 초콜릿, 귤 인형, 귤 모자… 나는 그렇게 쓱 성을 둘러보고 감흥 따위 느낄 새도 없이 성을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미친듯이 화장실이 급해져서 뛰어 내려가듯이 내려갔다. 아침에 돼지고기가 역시 제대로 익지 않았었다.


여유롭게 페달을 밟아 히로시마로 가는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 말고 또 다른 외국인 한 명이, 현지인인지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전거와 함께 배에 탑승했다. 하코다테에서 아오모리까지 가는 페리 이후로 두 번째 페리 탑승이었다. 거의 20년 만에 배를 한 달 만에 두 번이나 탔다.


배는 하코다테에서보다 더 작았지만 오히려 내부는 더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다. 그때는 누울 자리밖에 없었더라면 좌석도 많고, 콘센트도 많고 다양한 종류의 쉴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작은 간의 편의점도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에비센 과자를 먹으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히로시마로 향하는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내게 아까 들렀던 마츠야마 성은 ‘마츠야마 성을 견학하고 왔다’라는 사실보다는 ‘고질적인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나의 습성’을 깨었다는 사실이 핵심 포인트였다.



2시간 30분 정도만에 배는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기분이 좋아져서 그랬던 걸까,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내리는 외국인에게 나도 모르게 “have a nice trip!”이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 사람도 내게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었다. 왠지 이런 상황은 항상 붙임성 있다는 서양인이 말을 거는데, 반대로 MBTI조차 I인 내가 용기를 내서 먼저 말을 걸은 것에 뿌듯해했다. 여행이 내 많은 것을 바꿔가고, 성장하고 있었다.


점심시간과 배 시간이 겹친 탓에 아무것도 제대로 먹질 않아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초밥 가게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초밥을 집어먹었다. 히로시마 시내도 가까워서 얼마 안 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에 체크인하기 전에 미리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히로시마 평화 기념공원은 마치 교토와 비슷했다. 무슨 뜻이냐고? 바로 서양인과 수학여행을 온 일본 초, 중, 고등학생의 조합과 다시 조우할 수 있었다. 이럴 때면 ‘일본 종주’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가 참 부끄러울 때가 많다. 특히 초등학생 옆을 지나갈 때 말이다(“일본 종주다!”라고 초등학생들이 엄청 떠드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럴 때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저주와도 같다…).



엄청난 학생들의 인파에 평화기념관에 가는 것은 진작에 관둬 버렸다. 교토에서부터 꼭 일본 학생들이 가는 수학여행 코스를 모두 나도 따라서 밟아 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히로시마 원폭을 추모하는 여러 조각상들이 보였다.


가운데 큰 강이 흐르는 공원의 강변에는 조를 편성한 듯한 다양한 일본 학생들이 지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니 한국 학생들과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의 역사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학생이 있는 반면, 듣는 둥 마는 둥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있고… 어쨌든 힘겹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학생 무리를 헤집고 지나며 히로시마 원폭돔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한 컷 찍었다.



펜스로 둘러 쌓여 있어 원폭돔은 밖에서만 구경할 수 있었다. 부서진 잔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출입금지 원폭돔 내부에 불법으로 잠입하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보였다.


평화기념관 앞에는 사람들이 그전보다는 줄어 있었다. 알고 보니 다행히도 단체 관람객과 개인 관람객 줄의 입장이 달라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가격도 성인 200엔으로 매우 저렴했다.



역사 관련 박물관 혹은 기념관을 방문할 때에는 으레 이러이러한 자료가 있겠지, 하고 유추하기가 쉬웠다. 학생일 때에 수학여행을 갈 때에도 그런 곳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도 당연히 원폭 관련 자료 및 영상, 사진들이 있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그저 검색해 찾아보는 것과, 실제 역사의 현장인 히로시마에서 직접 전쟁의 잔해와 기록 자료들을 보고 있노라면 확실히 체감이 달랐다. 일본 학생들 때문에 기념관 내부는 꽤나 부산스럽고 시끄러웠지만, 원폭의 실제 잔해들과 당시 사진들을 보다 보면 몰입하게 된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그린 원폭 당시 상황은 사진보다 더 그 당시의 아픔을 생생하고 날카롭게 묘사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의 깊은 역사와 갈등은 여기서 논외로 하고서,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본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이 남일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비싼 전시들보다 단 200엔으로 깊은 마음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라서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나오는 길에 기념관에서 원폭 돔을 바라보니, 원폭 희생자 위령비로 이어지는 공원의 한가운데 축을 기점으로 정확히 원폭 돔이 이어지도록 공원이 설계되어 있었다. 새삼 이럴 때 조경학이라는 내 전공에 관해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그렇게 평화기념관을 마지막으로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나와서, 히로시마 시내로 빠르게 이동해 숙소에 도착했다. 카운터에는 그때 교토와 마찬가지로 뭔가 일본어가 서투른 듯한, 워킹홀리데이로 게스트하우스에 근무하고 있는 듯한 여자가 내 체크인을 받았다.


“혹시, 자전거는 어디 세워두면 될까요?”


항상 내가 게스트하우스에 물어보는 질문을 오늘도 되풀이하자, 여기 게스트하우스의 여자는 몹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온 손님은 처음 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자전거 세워두는 곳은 없는데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게스트하우스 직원과 얼마간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선가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나타나서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이야기했다.


“죄송한데 자전거 세워둘 곳은 없어요. 이 근처에 주차장이 있으니 자전거를 거기다 세워두시면…”


그 말에 나는 몹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외부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면 주차 요금을 내야만 했다. 아니, 주차 요금보다는 멀리 걸어가서 자전거를 타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고 짜증 났다. 물론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둘 곳을 제공한다는 약속은 예약 어플에 적혀 있지 않았기에,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온 것이 잘못이지 내가 성을 내고 불만을 표출할 이유는 없었다(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숙소 요청사항에 '자전거 주차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나요?'라고 적어두면 대답을 해주거나 주차 장소가 없어서 예약을 캔슬하는 숙소는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스트하우스에 자전거 거치에 대해 물어보면 장소를 마련해 주거나 친절히 함께 방법을 모색하곤 했다. 하지만 그냥 외부 주차장에 세워두라니…


“아니면 그냥 여기 세워두실래요?”


게스트하우스의 2층으로 향하는 곳의 좁은 공간에 세워둘 곳이 있었다. 그곳에 먼저 자전거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스태프 것이라고 주인은 말했다. 염려되는 것은 공간이 완전히 바깥으로 개방된 곳이라서 주인은 아마도 내 자전거가 비싸다고 생각하고 이 장소를 처음부터 말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여기에 세우겠다고 이야기하고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웠다. 뭐, 누군가 훔쳐가면 다시 사면되겠지.


오늘도 어김없이 근처 마트에 들러서 오늘 먹을 저녁과 내일 먹을 아침거리를 샀다. 감기에 좋을 것 같아 오로나민 C도 샀다. 생각해 보니 오로나민 C가 대체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유롭게 해가 지기도 전에 체크인을 했기에 저녁을 먹고도 꽤 시간이 일러 게스트하우스의 로비에서 태블릿을 켜고 글을 쓰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로비에 앉아 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단발머리의 한 여자도 나와 같은 오랜 시간 동안 노트북을 꺼내둔 채 앉아 있었다. 흘긋 바라보니 노트북으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까…’


일본에 와서 제대로 일본인과 오래 대화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가와고에에서는 여러 국가의 사람들과 어쩌다 끼여서 함께 대화를 나눈 것이니까). 유튜버들은 잘만 대화를 하고 다니던데… 내 얼굴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일본인과 일본어를 오래 쓰면서 직접 일대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함께 앉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여성도 딱히 함께 여행 온 일행이 없는 것 같았다. 혼자 히로시마 여행을 온 건가?


“저, 일본 야구 보시는 거예요?”


“아, 네. 맞아요. 야구 보시나요?”


“아뇨, 사실 전 야구를 잘 몰라서…”


다행히 여자는 그다지 싫은 내색이 없이 내 대화를 받아주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나 며칠 전 비젠에서 보았던 야마모토의 사인 티셔츠를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여자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라면서 호들갑을 떨며, 가게가 내게 어디냐고 물었다. 위치를 알아도 갈 수 있을 거리는 아닌 것 같은데…


겉으로는 23-4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동갑내기였다.


“히로시마 여행 오셨나 봐요.”


“아, 전 여행이 아니고… 여기 스태프예요. 오늘 쉬는 날이라 그냥 여기서 야구 보면서 쉬고 있었던 거라서.”


나는 깜짝 놀라서 “네?”하고 되물었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그녀 역시 아까 스태프와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아닌, 대만인이었다. 서로 한국에, 혹은 대만에 간 적도 없었다. 누군가 상황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한국인과 대만인이 일본어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상한 풍경이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오히려 일본인이 아니다 보니, 얼추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일본어 실력으로 길게 2-3시간 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녀는 겨울이 되면 홋카이도의 스키장에 가서 일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꽤 멋졌다. 따지자면 나는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지만, 같은 처지에 일본에서 한 번쯤 살아본다는 내 꿈을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라이딩을 출발해야만 했기에, 나는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어 인스타그램을 교환한 후 작별을 고하고 도미토리 룸으로 돌아왔다. 작은 종이를 하나 구해서 만나서 반가웠다는 짧은 인사말을 적어서 침대 위에 두었다. 내일 근무일이라고 하니, 아마 떠난 손님들의 침구류를 정리하면서 내 쪽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거의 페리에만 있었기에 라이딩을 쉰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돌아온 혼슈에서, 내일 다시 라이딩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몸 상태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결국 내일 갈 숙소도 정확히 결정하지 못한 채 잠을 청했다. 제발 목 상태, 감기가 더 악화되지만 않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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