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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로우 Apr 22. 2024

죽기 전에 달려야 할 세토내해 라이딩

일본종주 27일차 : 후쿠야마~마츠야마

  10월 30일이었지만 낮에는 얇은 라이딩 반팔 져지만 입고 타도 춥지 않은 날씨였다. 하지만 환절기여서 그런지 아침은 꽤나 추웠다. 최고 기온은 22도이지만 아침은 10도. 하지만 추울 때 입고 따뜻할 때 벗는 것이 귀찮고 번거로워 그냥 반팔 져지만 입고 벌벌 떨며 나왔다. 라이딩하다 보면 더워지겠지, 뭐.


오늘은 드디어 길고 길었던 지긋지긋한 혼슈 라이딩을 끝내고 시코쿠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혼슈에서 시코쿠 섬으로 ‘자전거’로 유일하게 넘어갈 수 있는 코스를 지나게 되는데, 세토 내해 바다 위 총 6개의 섬을 연결하는 7개의 다리를 자전거로 건널 수 있었다. 시코쿠로 자전거로 넘어갈 수 있다니, 너무 설레는 라이딩이었다.




자전거에는 무거운 캠핑 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비와호 캠핑 이후 여태 매일 해왔던 생각은 ’아, 버릴까?’였다. 홋카이도에서 여정을 시작한 이유는 출발이 9월이었기에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반대로 따뜻한 남쪽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속도는 아무리 열심히 내려가도 날씨가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며칠 전 비와호에서도 입이 돌아갈 뻔했는데, 이 정도 환절기에 더 이상 캠핑을 하기에는 최대한 경량으로 맞춰 온 내 캠핑 장비로서는 무리였다. 코스에 있는 모든 지역의 날씨를 검색해도 밤이 되면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꽤나 부피가 되는 짐들을 도대체 어떻게, 어디다가 버려야 할지가 문제였다. 호텔 방에 전부 놓아두고 나올까 하는 마음이 나를 유혹했지만, 오른쪽 팔에 태극기를 달고 일본 라이딩을 하고 있는데 어글리 코리안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거의 거절당할 것을 각오한 채로 호텔 로비에 성큼성큼 걸어가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다.


“저, 혹시… 제가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제가 한국인이라, 일본에서는 도대체 어디에 쓰레기를 버려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어… 혹시 무슨 쓰레기이신가요?”


“텐트요.”


로비에 있던 여성 직원분은 내 말을 듣자 매우 당황한 표정과 함께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텐트를 버리기 어려워서 당황했다기보다 난생 텐트를 버려달라는 사람은 처음 봐서 그런 듯하다. 하긴, 호텔에 숙박을 하고는 가장 ‘숙박’이라는 행위에 있어 대척점에 있는 도구인 텐트를 버리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음… 일단 가져와 보시겠어요?”


직원의 대답에 나는 괜히 묶어둔 짐을 풀었다가 거절당하면 다시 묶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몇 번씩이나 “부피가 꽤 커요. 정말 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제가…”라고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결국 나는 걱정 반과 함께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각종 에어매트, 침낭, 텐트들을 몽땅 가져왔다.


“어… 음… 저희가 처리해 드릴게요. 그냥 여기다 두시고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연신 직원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건넸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건네고 싶다. 여러분, 후쿠야마에 가실 일은 거의 없으시겠지만 꼭 ‘후쿠야마 오리엔탈 호텔’에서 묵으시길. 온천 욕탕도 정말 크고, 수건도 무제한으로 로비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자전거는 달려있던 프론트백들을 떼어낸 것만으로도 마치 다이어트를 한 것처럼 엄청나게 날씬해졌다. 자전거가 이렇게 날렵한 물건이었었나? 탑승감도 확실히 가볍고 경쾌해졌다.

아침에 보았던 후쿠야마 성



세토내해 코스로 넘어가는 첫 다리까지는 20km니까 1시간 정도만 달리면 되었다. 표지판에는 드디어 히로시마도 보이기 시작했다. 히로시마도 큰 도시 중 하나라 가보고 싶었지만, 히로시마 쪽으로 계속 라이딩하게 된다면 시코쿠를 갈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히로시마는 다음에 오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가던 길에 한 번쯤 일본에서 들러보고 싶었던 프랜차이즈 카페 <코메다 커피>에 들렀다. 아침에 커피를 한 잔 주문하면, 식빵과 계란, 그리고 버터나 잼까지 선택할 수 있는 모닝세트를 먹을 수 있다. 나고야만 모닝세트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전국 코메다 커피 모든 곳에서 모닝세트를 먹을 수 있는 듯했다. 커피 한 잔으로 간단한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500엔의 행복이라니. 한국에는 왜 이런 서비스가 없는가? 


코메다 커피의 모닝 세트


가게를 나와 다시 페달을 밟았다. 저 멀리 건물들 뒤에 어렴풋이 현수교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세토내해로 진입하는 첫 관문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때까지 눈치채고 있지 못했던 것은… 결국 다리를 타기 위해서는 다리로 올라가는 업힐을 올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7개의 다리를 건너야 하므로 계산해 보면 7개의 업힐을 올라야만 한다. 다리 아래를 통과할 때 머리 위로 붕 떠 있는 다리의 높이를 체감하며 ‘하… 이걸 7개나?’라는 생각이, 한숨과 함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업힐 코스와 함께 기어를 낮추고 페달을 밟아 열심히 다리 위로 올라갔다. 정말 구름 한 점 없는 최고의 날씨였다. 군데군데 보이는 섬들 사이로, 넓고 청량한 다도해 바다가 햇빛을 반사하면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평소 이전까지 달려왔던 모든 바다 라이딩은 모두 바다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고 달리는 것었지만, 이렇게 다리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달리니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첫 번째 섬으로 내려와서 섬 주변을 빙 두른, 파란 선이 그려진 코스를 따라 움직였다. 섬에는 별 거 없다. 그냥 일본의 흔한 시골이었다. 이곳도 비와호와 함께 일본의 ‘National Cycle Route’로 지정되어 있다. 유명한 라이딩 코스이니만큼 이곳도 쫄쫄이를 입고 본격적인 소위 ‘자덕’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다(비와호보다 더 많이 본 것 같다). 


세토 내해에서는 어딜 가나 자전거들이 몇 대 멈춰 서 있고, 타고 있던 사람들이 세토내해의 풍경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 있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그곳에서 멈춰 서서 그러고 있었다. 다리도 지나갈 때마다 항상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퍽 귀엽다.



두 번째 현수교 위에도 올라왔다. 사실 다리가 꽤 높아 보이는데 막상 업힐 오르는 게 그렇게 힘겹지 않아서 신기했다. 예전에는 몇 번씩이나 쉬면서 헉헉대며 올라갔겠지만 이제 한 번에 쉬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이제 라이딩한 지 40일이 남짓 넘었는데 내 체력과 실력이 그만큼 올라간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리를 지나가며 점점 풍경도 익숙해져 가고 지겨워지기 시작했을까. 지금이 몇 번째 다리인지도 까먹을 만큼 다리를 지나고, 섬을 지났다. 그러나 항상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세토 내해의 눈부신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코쿠 방향으로 라이딩을 했고, 반대 편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다.


중간에 잠시 들렀던 미치노에키에는 수많은 렌탈 자전거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만큼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볍게 여행으로 놀러 온 사람들도 자전거를 많이 빌려서 타는 코스인 것 같았다. 


휴게소에서 팔고 있던 귤로 유명한 에히메의 귤 주스. 사실 맛은 제주도 한라봉 주스가 더 맛있는 것 같다...


지나는 다리 중 가장 길었던 쿠루시마해협대교를 건너서 드디어 시코쿠에 도착했다. 가장 일본 스럽다고 할 혼슈와 또 다른 홋카이도의 이국적 풍경을 이번에 모두 처음 맛보고 왔던 나는 시코쿠에는 어떤 또 다른 시코쿠스러운 풍경이 펼쳐질까, 하고 기대를 잔뜩 안고 다다랐다.


하지만 시코쿠의 풍경은… 정말 그냥 혼슈에서 수많이 지나쳐 왔던 많은 시골 마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홋카이도가 유독 특이한 케이스가 아닐까. 어쨌든 시코쿠에 대한 내 마음은 30분 만에 촛불처럼 꺼져버리고 말았고 나는 그저 오늘의 목표 지점이었던 마츠야마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열심히 페달을 밟을 뿐이었다. 오후 4시, 그리고 오후 5시의 석양, 오후 6시에 마츠야마 시내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하늘이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마츠야마는 높은 빌딩들이 많은 꽤나 큰 도시였다. 먼저 숙소에 가기 전에 저녁을 먹으러 들렀던 가게는 ‘니시키 이와모토’라는 라멘 가게. 마츠야마에 ‘도미솥밥’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나는 솥밥이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는 않아 이 라멘 가게의 주 메뉴인 도미 라멘을 먹으러 왔다.


가게 주인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내게 바로 한국어 메뉴를 건넸다. 그냥 쫄쫄이 차림인데, 누가 봐도 얼굴만 봐도 나는 한국인인가 보다. 사실 도미 시오 라멘 맛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애매했다(오히려 한국에서 내가 자주 사 먹는 합정 근처의 라멘 전문점의 도미시오라멘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라멘만 먹으니 오늘 140km 라이딩에서 소모한 체력이 채워지질 않는다. 그냥 아예 도미솥밥과 우동까지 다른 가게에서 시켜서 돼지처럼 먹어버렸다. 도미 라멘보다 사실 더 맛있었다. 




숙소는 도고 온천 근처에 있었다. 도고 온천은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장소로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거대한 온천이 이 장소를 모티브로 했다고 해서 유명한 곳이다.


도고 온천은 현재 공사 중이라서 반쯤 커다란 구조물로 의해 덮여 있고 전면만 개방되어 있다. 공사 중이긴 하지만 온천은 계속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숙소에 체크인 후 가보기로 했다. 그래피티가 벽화로 그려져 있는 듯한 구조물만 보았을 때에는 꼭 미술관인 것만 같았다.


마츠야마의 도고 온천


온천 내 이용객 수를 제한하기에 미리 9시 30분에 씻으러 가겠다는 예약을 하러 왔다. 이후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고 다시 나왔다. 낡은 내부 복도를 지나서 옷을 벗을 목욕탕 로커로 갔는데, 정말 비와호에서 갔던 동네 목욕탕처럼 정말 작았다. ‘아니, 명색이 도고 온천인데 이렇게 목욕탕이 작다고? 이건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목욕탕보다 작잖아?’ 공사를 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도고 온천이 실제로 정말 이렇게 작은 곳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와 달리 큰 실망만 안고서 목욕을 하고 나왔다. 본관 말고 별관이 따로 있다는 데 그곳에 갈걸 싶기도 했다. 


그렇게 시코쿠에서의 첫날밤, 사실 알아보고 온 것은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 마츠야마의 도고 온천 마을이 실제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도고 온천 주변에 실제 운행되었었다는 봇짱 열차(도련님 열차)를 비롯하여, 일본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던 많은 <도련님>과 관련한 조형물을 찾아볼 수 있었다. 가벼운 가을 밤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도고 온천 주변을 산보하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시코쿠는 길지 않아서 2~3일 내로 큐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의 끝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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