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올해 세웠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바로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유기동물 봉사 동아리
러닝 동아리
자전거 동아리
무려 이렇게 세 개를 한 번에 들어갔는데요
무슨 동아리 들어가는 걸
버킷리스트로 목표로 세웠냐고 물어보면은
사실 저는 학교를 다니며 2주 이상 나갔던
동아리가 없을 정도로
조직이나 모임에서 잘 버티질 못하고 나가곤 했습니다
요즘 소개팅이든 사람 만나는 자리든
필수가 되어버린 MBTI 심리테스트
저는 해보니
ISFP라고 나오더라고요
제가 아는 I는 에쵸티 문희준씨의 곡밖에 없는데요
대략 I는 말 그대로 introvert
내향형이라
남들과 함께하거나 모임보다는 혼자가 잘 맞는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간 동아리 뒤풀이에서
벌컥벌컥 맥주잔에 따른
소맥만 들이키면서
멍하니 가만히 앉아 있던 기억이 납니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도
그 대화가 1분이 채 이어지질 않고
어색한 침묵과 정적을 참 깨기가 어려운데요
뒤쪽에서 키크고 잘생긴 인싸 동아리회장과
누가 봐도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외모의 여자 임원이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제 마음을 더욱 뒤흔듭니다
'아 다음부터 나오지 말까 ㅋㅋ'
하지만 그 민망하고 짜증 나는 순간들을
버티면서 여러 번 동아리에
억지로 나가다 보면
조금씩
한 명씩
한 명씩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뒤풀이에 같이 앉았던 사람
저번주에 모임에서 봤던 사람
한 명씩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대충 동아리 돌아가는 흐름이 보이고
그러다가 딱 한 학기를 버티면
뒤풀이 테이블에서 어느 누군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새로 들어온 부원
그에게서 바로 몇 개월 전
소맥만 연거푸 마시고 있던
제 모습이요
동아리 사람들과 알음알음
어울리다 보면
"민성님 저희 달리기 동아리 내에서 따로 모임이 있는데..."
"민성님 타이어 교체하셔야 할 것 같아요"
"민성님 그렇게 TT만 찍으려고 러닝하면 백퍼센트 부상당해요"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었을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거 다 책에서 배울 수 있다'
'내향적인데 스트레스받으면서 억지로 모임에 갈 필요 없어요'
'요즘 유튜브가 잘 되어 있어서...'
저도 그런 말을 인생 내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믿었지만요
무엇보다 뭔가를 빠르고 가장 쉽게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정작 중요한 정보들은
책에 나와 있지 않고
바로 사람들이랑
직접 부딪혀보면서 알게 되는 것이더라고요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고
건네온 누군가의 한마디에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데
그 적응 기간을 못 참고 탈주하면서
나는 A형이라서...
나는 내향형이라서...
나는 사람들과 맞지 않아서...
그렇게 나 자신에게
스스로 변명해 온 날들을 반성하게 됩니다
어제는
달리기 동아리 회원님들과
5km를 열심히 뛰었는데요
처음 이 동아리에 나왔던 3개월 전
단 한 명도 제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없었을 때
이제야
세 명 정도는 알음알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날 러닝을 하면서
통성명을 두 명 정도와 했으니
다음번에는
다섯 명과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언젠가 모든 분들과
인사할 수 있을 때까지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