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스 Oct 27. 2022

예쁘고 날씬한 여자가 모든걸 갖는다

47kg이 되면 인생이 달라질까?

여자는 예쁘고 날씬하면 장땡!


이게 우리가 맹신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어떤 여자가 이런걸 믿어? 믿는다. 믿는 정도가 아니라 맹신이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세상의 믿음이었고 우리가 받은 가르침이다. 기원을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뿌리깊게 내재해있어 의식하지 못했을수도 있지만 그것이 못 느꼈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그 증거는 통계자료에, 우리가 들어왔던 말 속에, 뷰티산업의 고속 성장에, 그들이 벌어들이고 있는 돈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신의 구원은 거짓말이다. 모든걸 갖기는 개뿔. "모든 것"을 세속적으로 해석하든 정신적으로 해석하든 어느 경우에도 예쁜 여자가 모든걸 갖지 않는다.


저 믿음을  주입한 신은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여기서 날씬해지면 뭘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당신의 지금 상태에서 말이다. 어차피 당신은 지금 상태에서 날씬해지려고 다이어트 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한다고 부모님이 바뀌거나 당신의 능력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약 47kg이 된다면? 나는 뭘 입어도 태가 날 것이다. 166에 47정도면 어딜가도 날씬하다 몸매좋다 같은 소리를 들을테고 길에서 누가 말을 걸지도 모르겠다. 직장에서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나에게 관심을 표하는 남자가 생질지도 모르지. 어쩌면 조건이 좋은, 즉 돈이 많거나 돈을 잘버는 남자들이 그 중에 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관심들로 당신의 자존감이 쑥쑥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근데 대체 여기서 어떤 큰 이득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이득은 있다. 예뻐지면 좋지,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적이면 좋고, 이성에게 인기가 많으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득들은 실제적이라기보다 잠시의 기분 혹은 신기루같은 이미지에 가깝다.

한마디로 나는 좀 더 예쁜 회사원이 된다. 그 뿐이다. 내 실제 삶이 크게 달라질까?


그렇게 열심히 애써 일상을 관리하고, 돈을 쓰고, 위험을 감수한 후 내가 되는 것이 고작 좀 더 예쁜 회사원이 되는 것이라니. 게다가 회사에서는 내가 여자로 인식되어서 좋을 것도 없다. 인간, 직장동료로서 인식되기보다 여자로 인식되어서 좋을 일은 단연코 없다.


남자들에게 얻는 인기도 생각해볼수록 아무것도 아니다. 잘 생각해보라. 당신이 인기가 좀 생겼다. 그래서 그 다음에 뭐? 잠시 기분이 좋아질 순 있겠지만 그냥 그 뿐이다.


날씬하고 예쁜 것이 실제적 이익을 얻는 것은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이다. 그러나 그들은 얼굴도 예뻐야되고, 끼도 있고 마케팅 능력도 있어야 한다. 나는 아마 내 성격 상 계속 회사원이나 할 것이다. 얼굴도 그렇게 안 예쁘고 끼도 없고, 날 상품화해서 마케팅하는 능력도 없다. 날씬해진다고 돈을 더 버나, 회사에서 인정을 받나, 남자를 10명씩 사귀나.


그 다음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는게 예뻐져서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는 건가? 그래서 팔자 피는거 그런걸 생각하는건가? 그걸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사람이 많으니까 어떤 경우의 수든 다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예쁜 여자와 돈많은 남자의 조합이 대대적으로 선전되니까 많아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당신 주변에 예뻐서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해서 팔자피고 행복하게 사는걸 자주 봤는가?


우리 회사에는 예쁘고 귀여운 외모를 가진 후배가 있다. 그녀는 비슷한 회사원과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둘은 성격이 잘 맞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나는 자신의 외모를 강점삼아 아주 특별한 부자와 결혼한 여자들을 실제에서는 거의 본 일이 없다. 물론 고만고만한 내 세계의 이야기지만, 연예계나 재벌계와 관련없는 사람이 보통은 더 많을테니까 하는 말이다.


실제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랑 비슷하고 말 통하고 무난한 사람들과 결혼한다. 좀 예뻐진다고 부자랑 결혼해서 팔자 피는 것도 아니고, 설사 돈많은 사람이 날 좋다고 한대도 당신이 그를 무조건 좋아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세상을 좀 살았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걸 알테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실제적 이득은 없다. 살을 뺀다고 당신의 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혹시 클럽에 가서 눈길을 끌고 플러팅 많이 당하는걸 원하나? 들어갔는데 나한테 쏠리는 시선들, 뭐 그런거? 그럴 수 있다. (일단 솔직해져야 한다. 인정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쪽팔려서 말은 대놓고 못하지만, 남자한테 인기있고 싶어서, 또는 집단에서 관심받고 싶어서 열심히 관리하는 여자들도 있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몸매관리한다는게 좀 창피하거나 자존심 상하지 않나. 나는 이런게 좀 자존심 상했으면 좋겠다.


클럽와서 어떻게 한번 해보려는 남자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게 행복한 일인가? (그게 길거리든, 직장이든, 동호회든 중요한게 아니다.) 진짜 자존감이 올라가는가. 그 관심, 그게 진지한 관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신도 알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플러팅의 빈도를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로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제부터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건 당신의 가치와 하등 관련이 없고 오히려 당신의 가치가 타인, 주로 남자로부터 나오기에 자존감이 더 낮아질 일만 남은 것이다.


날씬해져서 여성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을 언어로 정리해보면 할수록 그 이득이라는 것이 상당히 변변찮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특히 글로 옮겨보니 너무 변변찮아 쪽팔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변변찮은 것마저 실제적이지 않고 이미지적이다.


인기를 느낀=플러팅을 당한= 집적거림을 당한 순간, 그 즉시의 기분은 좋을 수 있다.  나는 여성들이 시선을 받을 때 "너보라고 그런 것 아니야." 의 이중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싶은 말이 여성들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이나 비웃음일리도 없다.

-너 보라고 이렇게 입은거 아니야.

-너한테 잘보이려고 다이어트 하는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솔직히. 시선을 받고 관심을 받으려고 그러는 것이 맞다.

여기서 '너'는 남자다. 그냥 개별의 남자를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여기서 쓰인 남자라는 단어는 그런 맥락이 아니다. 남자친구가 아니라 불특정다수의 남자. 남성 사회. 남성 중심의 사회. 남성이 여성을 보는 시각을 모든 사람이(여자든 남자든 누구든) 공유한 사회. 즉 우리 사회다.


젊은 여성들 중에는 외모 자원을 충족시키기 위해 안 먹고 운동하고 주사맞고 수술까지 감행하는 여성들이 많다. 심지어 건강에 유해한 다이어트들이 시기를 바꿔가며 유행하고 청소년들이 그런걸 따라한다. 솜에 쥬스를 적셔 먹는다거나 어떻게든 나비약을 구해서 먹는다거나 먹고 뱉는다거나 등등.


나는 여성들이 남성들의 관심, 즉 남성의 시각을 내재화한 이 사회의 인정과 관심을 얻기 위해,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날씬해지려 애쓰고 몸매를 드러내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을 원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지극히 원한다. 그저 드러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관종을 조롱하지만 그건 오히려 내밀한 욕망을 들켜버려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에브리바디 관종이라고 생각한다. 내적 관종인 한이 있어도 관종이 아닌 사람은 없다.


여성들에게 다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루트가 있었다면 여성들은 외모에 덜 매달릴 수 있을 것이다. 인정과 관심은 모든 사람이 열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그걸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외모밖에 없었을 뿐이다. 나의 현타는 그 인정과 관심조차 진짜가 아니라는데서 온다.


외모를 통해 진지한 관심, 진자한 존중, 진지한 대우가 이루어진다면 오케이, 거기까지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외모를 통해 여성이 얻는 인기와 관심은 일시적이고, 가볍다.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전락시켜야 하고, 인간으로 서려 하면 할수록 혼란스러워져 생각을 멈춰야 한다.


그 증거는 외모자원을 가진 여자들의 고백이다. 허무함만 있을 뿐이다. 이 공허를 겪지 않으려면 그 자신도 남성들의 시각을 내면화하면 된다. 그런 여성들은 외모꾸밈과 다이어트를 할 때 혼란을 겪지 않는다. 아 물론 공허함은 저 빙산의 지하에 깊이 묻어놓은 것일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오직 그 자원만을 허락한 후에 외모관리에 매달리는 여성은 비난한다. 그것이 이중규범이고, 그것이 다이어트하는 젊은 여성이 더 우울한 이유다. 이중규범 속에 있는 존재는 혼란스럽고, 언제든 비난받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이중규범에 시달렸다.


한편으로 "너 보라고 이렇게 입은거 아니야."는 맞기도 하다. 여자는 개별 남자의 시선만을 위해 날씬해지려고 애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 라고 지목당한 그 개별 남자를 위해 관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개별 남자를 의식해서 다이어트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개별 남자가 남자친구여도 그렇다. 차라리 여자는 왜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는지 모르는게 맞을 것이다. 한번 언어로 정리해보면 놀랄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이렇게 나를 혹사시켰단 말이야? 당신이 쪽팔려지기를 나는 바란다.


그리고 여자들은 내가 원하는 남성의 관심을 원한거지, 내가 원치 않는 외모, 나이, 성격을 가진 남성의 불쾌하고 끈적한 시선을 원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중요하다. 혹여나 남자들이

-거봐 여자들이 남자한테 잘보이려고 그렇게 입는거라니까~

하면서 당당하게 불쾌한 시선을 합리화할까 하는 노파심에 덧붙인다.


여자가 인기를 얻고 시선을 끌고 싶은 의도로 자신의 몸, 여성적인 자신의 라인을 한껏 드러내고 외출했다 하더라도, 그걸 쳐다보는 남자가 별로이면 기분이 상한다. 그러니 "너" 보라고 이렇게 입은게 아니라는 말도 맞는 것이다. 진짜 "네"가 봐서 싫었기 때문이다. 또 남자의 외모가 괜찮았지만, 그 눈빛이 끈적거리고 그 언행이 불쾌했다면 그 또한 싫어한다.


그러니 여자들은 뭘 어쩌자는건가. 지가 관심받으려고 그렇게 관리하고는, 막상 관심을 주면 싫다고 해?

남자들은 어이없을만하다.... 그래서 남자들도 종종 말하지 않는가? 어쩌라는거냐고?


맞다. 여자들은 남성사회의 인정과 관심을 받으려고 자발적으로 애를 썼다. 그런데 남성/ 남성사회가 그 관심을 주면 또 싫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건 여자가 원하는 형태의 관심과 인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런 불쾌한 시선과 대상적 관심을 원하는게 아니다. 나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인간으로서의 존중, 사랑을 원한 것이다.


즉 여자는 관심받고 싶어서 다이어트하고 꾸미고 나간 것은 맞는데, 막상 마주치는 눈길들이란 대개 불쾌한 것이 현실이다. 좋든 싫든 이게 현실이니까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여자들도 자신의 느낌과 마음이 왜 이런지에 대해 잘 모른다. 자기가 꾸미고 나가놓고, 그런 시선을 받으면 싫으니까 ‘내가 이상한가, 내가 나쁜가.’ 라는 생각을 한다. 당신은 이상하지 않다.


끈적거리는 시선을 받았을 때 불쾌함은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왜 불쾌한지는 생각해야 알 수 있다. 날씬해지고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 역시 거의 자동적으로 든다. 어렸을 때부터 이 세계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자기가 아는 방법을 쓴다. 여자가 아는 방법은 예뻐지고 날씬해지는 것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 방법은 틀렸다. 그래도 여자가 아는건 이 방법밖에 없기에 계속 이 방법을 쓴다. 근데 그래서는 당신의 마음을 채워줄 진지한 관심은 절대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듯이 막상 마주치는 관심들이란 대개 불쾌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날씬해지고 예뻐진다고, 당신이 얻을 거라고 기대한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이게 진실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렇게 여겨지는 일만 있을 뿐이다. 외모꾸미기 특히 다이어트는 예전의 내겐 당연히 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여자는 날씬해야 하니까.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는 치열한 레이스 트랙 위에 서 있었다. 옆 사람들을 보면서 더 빨리 달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완전히 소진된 후에야 “이걸 왜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고 이제 그 경기장에서 빠져나왔다.


인간에 대해서 가장 놀란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달라이 라마는 이런 대답을 했다.

인간은 돈을 벌려고 건강을 희생합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으려고 돈을 희생하죠.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즐기지 못합니다.
결국 현재에 살지도 못하고 미래에 살지도 못합니다.
절대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다가,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현답을 듣고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건강잃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당신은 여자들의 극심한 다이어트가 옳지 않다는것을,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날씬해지기 위해 건강읽기, 자존감잃기, 돈 잃기, 에너지 잃기를 마다하지 않을수도 있다. 괜찮다. 세상에 한 번에 되는 것이란 없으니까. 그래도 예전보다 조금씩 나아진다면 됐다.

                    

이전 10화 시지프스의 형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