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보다 못한 존재

아시아인 VS 개

by 모니카

날씨 좋은 10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별반 다름없이 유모차를 끌고 길을 나섰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깜짝 놀라는 일을 마주했다. 내 뒤에서 커다란 개가 갑자기 짖으면서 내 옆을 쓱 지나갔다. 보통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많이 놀랬다. 목줄을 하지 않은 커다란 개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어서 무서웠다. 파리에는 특히 대형견을 많이 키우는 편인데, 목줄을 하지 않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마침 2017년 그 당시 한국에서는 개가 행인의 정강이를 물어서 사망까지 이르게 한 사건이 화제가 된 시기라 평소 개를 무서워하지 않던 나도 개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개가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면서 내 다리를 스치며 지나칠 때 나는 너무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 넘어질 뻔했다. 유모차에 아기도 있었기 때문에 책임감에 더욱 몸을 움츠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는 그 개 주인에게 미안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30대 여성으로 보이는 개 주인이 그때부터 욕을 마구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집은 거대한 편이었고, 인상은 험상궂었다. 오전 10시 정도, 개 주인은 근처 공원에서 개 산책을 시키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 여자 뒤에는 그녀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자도 함께 있었다. 개 주인은 내게 욕을 약 5분 정도 쉴 새 없이 했다. 개와 마주친 좁은 인도 시작점에서부터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기까지 쉴 새 없이 내게 욕을 퍼부었다. 팔을 마구 뻗치며 흥분하며 말하는 모양새가 마치 나를 한 대 칠 것만 같았다.


나는 도로를 건너 반대편 인도로 아이와 함께 옮겨갔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서로 평행으로 나란히 걸으면서 끊임없이 내게 욕했다. 침을 질질 흘리는 개가 내 다리를 스쳐 지나가서 놀랬고 순간 멈칫했고 게다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하고 싶어도 그 당시 프랑스어를 못해서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내가 자기 개를 보고 놀랬다고 오히려 화를 내는 상황이라니. 개 주인의 마음을 내 식대로 해석해보자면, 이렇게 순한 개(프랑스인이게 개는 자식과 다름없다)를 보고 어떻게 너 같은 아시아계 여자가 놀랄 수 있냐, 우리 개가 너를 물을까 봐 그렇냐, 우리 개(=자식)는 그런 개(=자식)가 아닌데 웬 오버 액션이냐며 매우 화가 난 것 같았다.


프랑스를 전혀 못하는 내가 개 주인이 내게 욕설한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많은 사람의 얼굴 및 눈빛을 통해 '어떻게 저런 말을...' 이란 문장을 읽었다. 한 할아버지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개 주인을 안타깝게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5분 내내 나는 너무 수치스러웠다. 뭐라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프랑스어도 못 할뿐더러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영어와 한국어조차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무척이나 얼어 있었고, 머릿속이 하얀 상태였다.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시누아'(중국인)라는 단어가 순간 내 귀에 들어왔다. 중국인이라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영어로 "I am not Chinese(나는 중국인이 아닙니다)"라고 내뱉었다. 그녀는 "Shut up(입 닥쳐)"이라 말하면서 더욱 소리를 질러댔고 마치 길 건너 내게 다가와서 내 뺨을 한 대 세게 때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나는 생명의 위협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개 주인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욕설 받이는 끝이 났고 한동안 나는 멍한 상태로 있었다. 길을 걷는 내내 욕설을 들으며 가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내가 이방인이고 동양인이라서 그들 눈에 나는 가난한 이민자로밖에 안 보이는 힘없는 존재로 한순간에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분명 같은 나인데 공간의 차이로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타인에게 비친 내 모습이 전혀 다른 내가 되는 놀라운 상황이었다. 서글펐다. 말 한마디 대꾸 못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최소한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 아니다. 그 여자는 이미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도 프랑스인이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일 수도 있다.


INED(프랑스 인구 통계 연구소) 2018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민자는 약 650만 명으로 프랑스 전체 인구(약 6,700만 명)의 9.7%이다. 410만 명은 외국인이고, 240만 명(37%)이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2018년 프랑스 이민자의 13%가 알제리에서 태어났고, 모로코에서 11.9%, 포르투갈에서 9.2%, 튀니지에서 4.4%, 이탈리아에서 4.3%, 터키에서 3.8%, 스페인에서 3.7%를 차지했다.


이처럼 프랑스는 수많은 다양한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이며 그만큼 가치관과 성장 배경이 각양각색이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들이 파리에 초기 정착했을 당시 프랑스인 또는 다른 이민자들로부터 무시당한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들도 초기에 언어 및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갖은 무시와 차별을 당했을 수 있고, 그래서 그들 눈에 만만해 보이는 동양인에게 자기가 받은 감정을 똑같이 쏟아내는 것일 수 있다.


프랑스 살이 5년 차에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모로코, 알제리 사람들이 프랑스에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아랍어권으로 아랍어를 사용하며, 히잡을 쓴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는 선거를 앞두고, 극우 세력의 반이슬람 정서를 고조시키는 발언을 하는 등 프랑스 내 이민자에 대한 정치 공방이 늘 뜨겁다. 그만큼 프랑스는 다인종 다민족 국가이며, 수많은 이민자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인종차별 관련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코로나19 이후로 이러한 인종차별은 더욱 심화됐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종 차별은 ‘인종적 편견 때문에 특정한 인종에서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요하는 일. 나치의 유대인 박해, 백인의 황화론에 따른 황인종 배척, 미국과 남아프리카의 흑인 차별 따위가 대표적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더해, 프랑스는 종교에서 비롯된 차별도 심각하다. 프랑스에서는 가톨릭교 다음으로 이슬람교가 두 번째로 자리 잡고 있다. 서아프리카, 중동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로 인해 서방 국가 중 가장 많은 무슬림을 가진 프랑스다.


Pew Research Centre에 따르면 무슬림 인구는 2017년 기준, 프랑스의 5.8%에 해당하는 370만 명이었으며, 꾸준히 증가하여 2020년에는 8.8%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프랑스에 머문 2017년 7월부터 현재까지 무슬림 관련 크고 작은 테러 사건들을 꽤 접했다. 그중 대표적으로 2020년 11월, 파리 외곽 도시 콩플랑생트오노 린(Conflans-Sainte-Honorine)에서 중학교 역사 교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참수 살해를 당해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코로나로 인해 중국인들을 살해하겠다는 글도 온라인상에 퍼져서 프랑스 내 동양인들인 두려움이 떨었다. 프랑스 내에서 종교 간, 인종간 대립이 팽팽하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 당시의 개 사건은 내게 실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파리 살이 6개월도 안되어서 호텔 도난에 이은 두 번째 충격이었다. ‘내가 개 주인에게 웃지 않고 째려보았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졌을까? 내가 동양인이 아닌 백인이었다면 그 주인이 내게 그렇게 심한 욕을 했을까? 내가 유모차를 끌지 않고 혼자 길을 가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맞벌이가 대부분인 프랑스에서 대낮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여성은 베이비시터일 가능성이 높다. 하물며 나는 아시아 여성이니...) 내가 한국어 또는 영어로 욕을 했다면 내 태도에 겁먹지 않았을까?’ 집에 와서 마구 널뛰는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고 한참 생각했다.


어디 속풀이를 할만한 곳도 없고 그 당시 프랑스에서 사는 이야기를 공유하며 함께 공감해주는 한인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겪었던 일을 글로 썼다. 댓글이 하나둘씩 달리기 시작하는데 나를 위로해주는 댓글,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댓글 등 인종 차별 경험들이 우후죽순 달렸다.


어느 날 한인 커뮤니티에 인종차별 관련한 경험을 나눠주실 분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영화를 전공하는 석사생인데 프랑스 내 아시아계 여성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경험을 나눠줄 수 있다고 했고, 학생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개 사건 외 겪은 크고 작은 인종차별 사례를 얘기했다. 빵집에서 돈을 정확히 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며 우기는 바람에 사람들 많은데 졸지에 장발장이 된 어느 겨울 저녁, 마트에서 계산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다 인사하는데 유독 나에게만 늘 인사 안 하고 불친절한 직원, 길거리 가다가 중국인이라며 놀리는 사람들, 말이 통하지 않으면 한숨 쉬며 노골적으로 하대하는 프랑스인들 등 수많은 인종차별적 언행을 겪었다. 학생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생각보다 프랑스 내 인종차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소중한 경험을 나눠줘서 감사하며, 영화 제작에 잘 쓰겠다며 인사를 하며 전화 인터뷰를 마쳤다.


한국에 살 때는 무슬림, 테러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이곳 프랑스에서는 가는 곳마다 흑인, 아랍인, 동양인, 인도인, 백인 등 다양한 인종 무리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인종 차별적인 눈빛과 싸늘하고 차가운 공기를 피부로 직접 느낀다. 테러의 위험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리고 다니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인들도 해외 살이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형태의 인종 차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사건에 대한 많은 분들의 댓글로 인해 위로를 받긴 했지만 낭만과 예술의 도시라는 파리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현실이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고귀한 척하지만 인간에 대한 경멸과 무시를 동시에 지닌 인간 군상에 대하여, 이중성의 도시 파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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