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시크하다

장발장 될 뻔한 이야기

by 모니카

인종차별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 오묘하고 애매한 느낌을 알 수 없다.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도 있지만 애매하고 교묘한 인종차별도 있다. 동등한 인간인데 피부색, 머리카락 색깔, 눈동자 색깔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내 곁에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에 오늘도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 다시 한발 두 발 앞으로 나아갔다.


육아로 지친 어느 날 저녁, 나는 집 근처 빵 가게에서 내일 아침에 먹을 바게트와 크루아상을 몇 개 사려고 유모차를 끌고 집에서 입고 있던 후줄근한 운동 복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왔다. 머리는 부스스했고, 얼굴은 하루의 피곤함이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다. 빵 하나를 사기 위해 초저녁에 옷매무새를 하고 머리를 빗고 할 에너지도 겨를도 없었다.


집에서 빵가게까지는 걸어서 단 5분 거리. 터벅터벅 빵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시계는 저녁 7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퇴근 후 각자 집에서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빵 가게 안에는 대여섯 명의 손님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들 직장인들인지 잘차려 입은 오피스룩이다.


유모차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나도 줄을 섰다. 서툰 불어 실력으로 바게트 1개와 크루아상 2개를 달라고 말했다. 3유로 40썽띰을 자동 계산기의 동전 넣은 곳에 넣으라고 했다. 나는 대충 알아들었다. 쨍그랑 동전이 마치 블랙홀 안으로 빠져들어가듯 하나둘씩 기계 속으로 빙글빙글 들어갔다.


계산을 마친 후, 빵을 손으로 집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빵 가게 주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20썽띰이 부족해요.”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아직 프랑스 동전을 세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는 동전 셀 때 몇 번이고 세고 또 세는 습관이 있었다. 특히 이번만큼은 더욱 확신했다. 여러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날따라 말도 잘 안 나왔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프랑스어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확실하게 3유로 40썽팀을 넣었어요. 여러 번 세었기 때문에 확신합니다. 기계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한번 봐주실래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연신 “노노”만 외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고 있던 손님 중 한 명이 내게 영어로 말했다.


“주인이 당신에게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옳거니! 이 사람에게 통역을 좀 해달라고 해야겠다.’


“나는 확실하게 3유로 40썽팀을 넣었다고 주인에게 전달해 줄래요?”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친절해 보였던 그 백인 여성이 마치 구글 번역기가 말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인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상황에 개입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 한 문장이면 되는데 이조차도 해주고 싶지 않단 말인가! 차갑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리며 빨리 이 상황이 끝나서 내 바게트나 사서 집에 가고 싶다고 온몸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 뒤로 줄 선 사람들도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각자 자기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 파악이 충분히 되었음에도 누구 하나 내 일에 관여하거나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20썽팀을 주고 그 자리를 서둘러 빠져나왔다. 나만 빼고 다 하얀색 피부에 금발 또는 브라운 컬러의 머리카락, 그리고 파란 또는 갈색 눈을 가졌다. 주황색 형광등 아래에 비친 노릇노릇 잘 구워진 빵들은 윤기가 좌르르 흘렀고 향기로운 버터향을 내뿜고 있었다. 저녁 8시 어두운 밤거리 속에서 검은색 머리카락의 노란 피부를 가진 나는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의 아시아 여성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겠지. 자신의 저녁거리를 사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일 테니까. 그들은 내가 단돈 20썽띰도 아끼려고 거짓말하는 가난한 이민자로 생각하고 있겠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발을 씻고, 아이를 바닥에 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씁쓸한 마음에 5분 정도 그저 멍하니 앉아있었다.


파리에는 파리지앵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책과 각종 온라인 사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유학을 했던 조승연 작가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프랑스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쥬멍푸(Je m’en fous.)’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개인주의가 심하고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관심 없어요. 나는 상관 안해요.’ 영어의 ‘I don’t care.’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을 종종 내뱉는다.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문화와 사회의식을 담고 있다. 프랑스는 '쥬멍푸', '쀠떵(Putant, 제길)' 등 자조적이고 시니컬한 표현이 많다. 파리에 소매치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개인주의 때문이라는 말도 농담처럼 있다. 워낙 남의 일에 신경을 안 쓰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사람한테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남이 소매치기를 당하든 말든 나와 상관없는 일, 심지어 다른 사람이 현재 소매치기를 당하고 있어도 내가 알바 아니라는 극단적 이기주의 덕분에 지금도 파리 소매치기들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면, 커피숍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 알 수 있다는 한국에서는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리기 힘들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는 만큼 들렸다’. 그 후로 카페를 지나가다가도 테라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끼리 쥬멍푸라고 말하는 것이 종종 내 귀에 들렸다. 이 날 이후, 프랑스 또는 파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육아로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하고, 에너지도 많지 않았지만, 틈나는 대로 프랑스와 파리 관련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나는 일단 이 나라를 아는 것이 시급했다.


<당신에게 파리>,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프랑스 아이처럼>, <시크하다>, <파리에서 살아보기>, <파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프랑스 육아의 비밀>, <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 <프랑스 엄마처럼 똑똑하게 야단쳐라>, <프랑스 뽀아뽀 육아법>, <파리를 생각한다>, <다른 삶>, <외교관 엄마의 떠돌이 육아>, <쿨한 부모 행복한 아이>, <아이의 뇌는 스스로 배운다>, <나는 파리에서 당당하게 사는법을 배웠다>,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어느 프랑스 외인부대원 아내의 이야기>, <나는 프랑스어로 행복한 인생을 배웠다> 등 전자책을 다운로드해서 읽었다.


어느 날 그 문제의 빵집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갔다(그날 이후, 절대 저 빵집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다른 빵집들이 모두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하필이면 그때 나에게 면박을 준 그 여성이 있었다. 나를 못 알아봤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두려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날 못 알아봤으면 했는데, 그 여자 주인은 나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러고는 내게 말을 건넸다. 속으로 ‘이 여자 또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야?’하며 조마조마했다.


“그때 일은 미안해요. 기계를 열었더니, 20썽팀이 안에 걸려있었어요.” 그러면서 20썽팀을 내게 돌려주었다. 나는 “괜찮아요”라며 어색한 표정을 살짝 지으며 빵을 사고 바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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