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엄마 vs 프랑스 엄마

내 아이에게 맞는 육아가 최고의 육아

by 모니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국인 마인드로 프랑스라는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양국 문화 차이를 많이 느꼈다. 그중에서도 한국 엄마와 프랑스 엄마의 차이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 엄마는 프랑스 엄마에 비해 아이의 성장 발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좋게 말하면 관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걱정 또는 불안이다. 요즘은 각종 방송 채널에서 육아 관련 동영상이 많다. 올라오는 댓글들도 유심히 읽어본다. 글을 읽고 있으면 한국 엄마들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참 많다. 그만큼 아이가 자신의 일부이며, 아이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라는 생각에 아이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피고, 걱정하고, 때로는 불안해한다.


자신의 아이가 만 3살이 다 되었는데도 말을 잘하지 못해서 걱정이라는 사연을 보았다. 많은 엄마들이 댓글로 같이 걱정을 해줬다. 그 엄마는 그 밑에 또 댓글을 달았다. ‘아이가 언어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프랑스라면 만 3살 아이가 말을 잘 못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우진이는 언어가 늦은 편이었는데 지금까지 여러 기관의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단 한 명도 내게 아이 언어 발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들 속도는 모두 달라요. 아이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말은 차츰 잘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다.


자칫 아이의 언어 발달 시기를 놓쳐서 큰 문제가 되기 전에 잡아주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만 3~4세 아이들이다. 아이의 성장 속도는 제 각각이다. 아이 성장 속도에 명확한 기준이란 없다. 옆집 아이가 말을 한다고 내 아이도 말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각자 고유한 성장 속도 및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언젠가는 말을 하게 되어 있다. 어찌 보면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프랑스 육아 환경 덕분에 나는 다른 아이와 비교 없이 오로지 내 아이에게 집중하며 아이 발달 속도에 크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둘째, 한국 엄마는 아이가 또 다른 나다. 반면 프랑스 엄마는 아이와 나는 다른 존재라 고 생각하는 경향이 한국보다 짙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내가 잘못해서인 것 같고, 아이가 아프면 곧 내가 다 아프다. 아이가 친구에게 잘못을 했으면 엄마가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프랑스 엄마는 아이 문제가 내 문제는 아니며, 아이가 아프다고 내가 아픈 것은 아니다. 아이가 친구에게 잘못했으면 아이가 잘못했다고 직접 말해야지 엄마가 대신해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엄마들이 그렇다고 모성애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프랑스 엄마들도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애틋하게 보살핀다.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나와 너를 구분한다. 이는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개인주의가 강한 편이다. 한국처럼 공동체 집단의식이 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를 구분하고,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내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내 아이가 곧 내 것은 아니다.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한다. 아이를 내 뜻대로 이끌어가려는 경향이 적다. 아이의 삶을 인정하고,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간다.


셋째, 한국 엄마들은 프랑스 엄마들에 비해 아이와 더 많이 놀아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프랑스 엄마들은 대부분이 일을 한다. 맞벌이가 일반화되어 있다. 임신하면 출산 전부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맡길 기관부터 알아본다. 생후 3개월부터 다닐 수 있는 크레쉬에 아기를 맡기려면 보통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경쟁이 치열한 탓에 크레쉬에 등록이 안되면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한국은 아이와의 애착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만 3살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직접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편이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와의 애착 형성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에게 올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경단녀라는 말이 생겼다. 아이가 중요하고 그만큼 내 것을 포기해서라도 아이에게 희생을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더라도 여전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의 창의력 계발을 위해 엄마가 부단히 노력한다.


프랑스는 조금 다르다. 이곳은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직접 아이를 키우는 프랑스 여성은 거의 없다. 물론 프랑스 엄마들도 자신의 아이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다고 엄마가 아이와 종일 붙어 있지는 않는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아이는 사랑하지만 내가 키우지는 않는다. 아이는 국가 기관, 베이비시터, 조부모들에게 맡기고 엄마는 일하러 나간다. 간혹 일하지 않는 아기 엄마도 베이비시터에 맡기기도 한다.


옆집에 만 2살, 8개월 아기를 키우는 프랑스 가족이 살았다. 엄마는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간간히 밖에 나가서 일하기도 하는데, 그 집 2살 여 자 아이 클라라와 우진이가 친해져서 종종 옆 집에서 같이 놀았다. 프랑스 베이비시터를 누누(Nounou)라고 부른다. 콜롬비아 출신의 살로메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클라라가 태어날 무렵부터 일을 시작해서 자기가 거의 엄마처럼 클라라를 키웠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프랑스에는 누누가 왜 이렇게 많아요? 놀이터, 학교 하굣길 등 대부분 누누가 아이들을 케어하더라고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여성들은 자신이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지 않아요. 일을 하지 않더라도 24시간 자신이 아기를 보지 않고, 일정 시간은 누누에게 맡기죠.”


그럼 왜 프랑스 여성들은 직장 여성이건 주부이건 엄마인 자신이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지 않는 걸까? 나는 프랑스 여성의 삶의 가치관에서 그 답을 찾아보았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일은 온전히 아기에게 자신을 맞추는 일이다. 자신의 삶은 한동안 없다. 아기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시간이다.


프랑스 사람은 개인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쉽 게 볼 수 있다.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혼자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잔 시켜놓고 2시간을 멍 때리는 사람도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고유한 시간을 터치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란 사람이 2~3년을 자기 시간 없이 타인을 위해(아무리 내가 낳은 아이지만 아이가 나는 아니다) 내 삶을 희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적당한 자신만의 시간은 한 개인, 한 여성, 한 엄마의 정신 건강을 위해, 또 아이를 위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엄마들은 한국 엄마들에 비해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 가족이 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


넷째, 프랑스는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많이 돌본다. 프랑스에 누누가 많은 또 다른 원인으로는 정부 지원을 들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생기면 임산부 검진부터 출산까지 전액 무료이며, 출산 후 자녀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해 누누를 채용하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준다. 각 가정의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데, 우진이 같은 반 친구 니콜 엄마는 간호사인데 자녀들을 누누에게 맡긴 적이 있다고 했다. 누누 비용의 4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프랑스는 여성이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아이를 키우는 과정, 그리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까지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 양육을 위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도 적다 보니 유럽 국가 출산율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다.


나는 개인적으로 태어난 지 적어도 1년도 안된 아기를 기관에 보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 3살까지는 엄마와 아이의 애착 관계 형성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엄마가 최대한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엄마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해외 두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며 2년 반 동안 혼자서 아이를 키웠다. 해외 육아는 힘든 점이 많았지만 아이와의 애착 형성 및 아이 정서를 위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아이가 편안한 마음과 안정된 정서를 가지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겼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프랑스 아이들이 크레쉬 또는 베이비시터의 손에 맡겨지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종종 목격했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울부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베이비시터, 아이가 저 멀리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베이비 시터들끼리 대화하고 있는 상황, 학교에 픽업하러 온 베이비시터와 서로 멀찌기 떨어져서 각자 집으로 걸어가 고 있는 아이의 쓸쓸한 뒷모습. 내가 한 번도 베이비시터를 쓰지 않았던 이유다.


다섯째, 한국 엄마는 프랑스 엄마에 비해 교육열이 높다. 한국은 조기 교육이라고 해서 어릴 적부터 영어 공부 등 아이 학습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유아 때 이미 전집을 사서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지능 발달 학습 체험도 많이 접하게 한다. 이는 공부 잘하는 것이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회 문화적 분위기도 한몫한다.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교육열이 덜하다. 만 3세~5세 유치원 아이들이 영어 공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수업을 듣곤 한다. 방과 후 수 업 과목에는 예체능이 많다. 수영, 테니스, 미술, 음악 등등. 프랑스 아이들은 자연에서 많이 뛰노는 편이다. 공부 스트레스가 한국보다는 덜할 수밖에 없다.


수요일은 오전 수업만 하거나 아예 학교를 가지 않는다. 프랑스 학교는 1년 중 무려 4개월이 방학이다. 여름 방학이 두 달 정도 된다. 그 외에도 학교를 6주간 다니면 2주간 방학이다. 그야말로 돌아서면 방학이다. 방학이 되면, 조부모님을 만나거나 가족 여행을 간다. 물론 일하는 부모님들도 있다. 그러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방학 학교에 아이를 보낸다. 방학 학교는 공부보다는 예체능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나는 조부모님 찬스를 쓸 수도 없으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며칠간 방학 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교육 부분에 있어서는 아이에게 어릴 적부터 너무 과도하게 교육을 주입하거나, 아이가 원하지도 않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모 욕심에 과한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유치원 아이들 중에서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는 거의 못 봤다. 교육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여섯째, 한국 엄마들은 프랑스 엄마보다 모유 수유에 대해 남다른 책임감, 의무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모유 수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모유 수유를 하지 못했을 때 죄책감을 가지는 것도 자주 보았다. 내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갖가지 이유로 인해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 엄마들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모유 수유를 덜한 편이다. 모유 수유를 안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도 않는다. 프랑스 엄마들은 자기 삶이 중요하고 자기 몸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한국보다 강한 편이다. 조금 심한 얘기지만, 길거리에서 유모차 끌고 가면서 담배 피우는 엄마도 봤다. 아무도 이를 보고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이 더 신기했다.


나도 모유 수유를 15개월 동안 했지만, 모유 수유가 힘든데도 억지로 한 것은 아니다. 내 경우는 분유 타고 젖병 씻기가 귀찮았던 이유가 컸다. 모유 수유로 인해 면역력이 바닥난 줄도 모르고, 살이 잘 빠지고 있다며 잘 먹지도 않고 모유 수유만 하다가 한쪽 눈에 심한 염증이 생겼다. 주변에 모유 수유가 힘든데도 죄책감, 의무감 때문에 참고 하겠다는 엄마가 있으면 말리고 싶다. 자기 몸이 중요하다. 결국, 모유 수유는 내 몸과 내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하면 되는 것이지,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유 수유 하나를 가지고도 한국 사회와 프랑스 사회를 비교할 수 있다. 모유 수유를 해야 모성애가 있고 분유를 먹이면 모성애가 없다는 식의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도덕적 속박이 그 사회에 속한 개인을 자기 의지와는 달리 억지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는 완모를 무려 1년 넘게 했어”라고 자기 과시의 문화도 한몫하는 것 같다. 심지어 출산 방식에서도 자연 분만과 제왕 절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사회에 묘하게 깔려있기도 하다. 진통을 오랫동안 힘들게 해서 출산하는 것이 마치 난 아이를 위해 이렇게 까지 고생하고 내 모든 것을 희생한 엄마라며 스스로를 자축하고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심리가 은연중에 있는 듯하다.


프랑스인들은 굳이 고생해서 아기를 낳을 필요가 있냐며 최대한 힘들지 않게 출산하려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프랑스는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사회의 잣대에 자기를 맞추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자기 과시욕도 덜한 편이다. 프랑스인들은 내 삶에 대한 나만의 철학과 기준을 바탕으로, 내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모유 수유를 하든 말든 그건 개인의 자유이며,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곳에서 사는 동안 “모유 먹였어요? 분유 먹였어요? 자연분만했어요? 제왕절개 했어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일곱째, 프랑스 가정은 한국 가정에 비해 아이와 따로 자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파리에 처음 왔을 때, 아이를 데리고 PMI라는 공공 보건소에 필수 예방 접종을 하러 갔었다. 의사가 내게 아이와 같이 자는지 따로 자는지 물었다. 아직 만 2살도 안된 아기인데 당연히 같이 잔다고 했더니, 지금부터 따로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따로 잘 수 있다면 따로 자는 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밤에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서 잠을 자지도 못하고 계속 울고 있는데, 부모는 수면 교육시키겠다고 아이 감 정을 무시한 채, 원리원칙대로 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아이는 기계가 아니다. 아이의 욕구와 감정을 온전히 받아줘야 그 아이는 안정되고 편안한 정서를 가질 수 있다.


한국 엄마와 프랑스 엄마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나라 육아법 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어느 나라의 육아법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리는 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내 아이를 잘 관찰해서 내 아이에게 맞는 육아를 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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