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우체국이 없어진다면?

아날로그의 끝판왕

by 모니카

주재원 신분일 때는 자동차가 제공됐지만, 3년간의 주재원 계약이 끝나면서 우리가 직접 자동차를 사야 했다. 자동차 보험 및 각종 서류 작업을 회사에서 조금 도와줬다. 자동차 등록 절차 및 보험 등록을 위해 어떤 서류가 집에 오면 그것을 받아야 한다. 작년 11월 중순, 우체국에서 온 편지 한 통. 나는 대충 읽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 보자면, 그 당시 나는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그 편지 한 통이 내 눈에는 설문조사로 보였다. 날짜만 수기로 적혀 있을 뿐, 그 어떤 란에도 볼펜으로 적은 글자는 없었다. 나는 쉽게 무시했다. 설문 조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뿔싸. 그것이 바로 자동차 관련 서류가 도착했으니, 우체국으로 받으러 오라는 편지였다. 그것을 그때 처리하지 못한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그 자동차 관련 서류는 우리나라로 치면 프랑스 교통부에 되돌아갔다. 교통부에서 날아온 편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당신의 자동차 등록에 관한 서류가 우체국에 15일 동안 보관되어 있다가 반환되었으니, 다시 우체국으로 보내라는 요청을 직접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의 서류를 우체국으로 반환해드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그 편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안내 서비스 멘트가 계속해서 나올 뿐 직원한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여러 번 들어본 결과, 인터넷에 들어가서 절차를 밟으라는 안내 멘트였다. 전화를 하라고 하면 전화로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해야지, 인터넷에 들어가면 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전화를 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이곳 콜센터 직원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서류를 우체국을 로 반환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문 용어에 프로세스가 복잡했다. 오헬리엉 작가의 말처럼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다. 며칠 동안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내가 그때 설문 조사로 잘못 봤을까라는 자책도 한참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자동차 관련 서류는 중요하다. 그럼 이러한 중요한 서류를 서신으로만 연락하고 주고받고 확인하는 게 도대체 2022년에 일어날 법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연락처도 다 기재되어 있고, 이메일 주소도 알고 있는데, 당연히 문자 또는 이메일로 연락이 왔을 것 같다. 문자와 이메일이라면 놓칠 수가 없다. 전화가 온다면 더욱 좋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문자 또는 이메일만으로도 실시간 체크가 가능하다.


프랑스는 오로지 우체국을 통한 서신 통보 및 알림 밖에 없고, 15일 동안 보관되어 있다가 결국 교통부로 되돌아갔다.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프랑스에서 우체국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우체국을 통해 서신으로 소통(이라 쓰고 통보라고 읽는다) 하니, 만약 이 나라에서 우체국이 한순간에 갑자기 싹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많은 중요한 서류들이 통째로 없어진다면? 아마도 전 국민이 패닉 상태가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혼자 사는 사람인데 한 달 동안 장기 해외 출장을 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그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중요한 서류들을 받지 못한다. 15일 동안 우체국에 있다가 해당 부서로 다 되돌아간다. 그럼 한 달 출장 후, 집에 돌아와서 각종 고지서를 받는다. ‘당신 서류가 반환됐으니 다시 찾아가세요’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설상가상으로 그 사람은 프랑스어 한마디도 못하는 외국인이다. 그럼 일은 완전히 꼬여버리고, 도움받을 곳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도움받을 곳 없고 초기 정착인이라서 아는 이웃도 친구도 없다면, 완전 패닉 상태가 된다. 그래서 프랑스 정착하는데 힘들었다는 외국인들 사례가 많은 편인 프랑스 살이다.


프랑스는 행정적으로 매우 아날로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생각해본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나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걸까? 해외 출장 중인 외국인에게 문자 또는 메일로 알려준다면, 그 사람은 해외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나름대로 자기 선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최소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식은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그들만의 언어와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외국인, 고객,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우체국, 서신, 편지, 이런 아날로그 방식만 계속 고수한다면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일은 더욱 느려지고, 복잡해질 뿐이다. 일은 단순하고, 빠르게 해결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들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일부러 느리게 처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관 때문에? 어떤 이념 때문에?


프랑스 행정 처리가 느리다는 말은 이미 예전부터 나온 말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왜 프랑스 행정이 느릴 수밖에 없는지 더욱 알게 됐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방식 고수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편지가 중간에 어떤 이유로 분실되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프랑스에서는 라 포스트(La Poste), 즉, 우체국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프랑스의 아날로그를 대변하는 우체국, 편지, 서신 통보 이 모든 것들이 프랑스라는 나라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후퇴하게 만드는 것인지 프랑스인들 스스로 인식하고 깨어나야 한다. 뭐든 빠른 한국인은 이 부분이 쉽게 보인다. 하지만 이미 어릴 적부터 이런 행정 절차에 익숙하고, 프랑스 리듬에 젖어든 프랑스인들은 변화가 필요한 것인지, 느린 것인지, 불편한 것인지, 개선해야 할 것인지,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다들 맞춰 살아갈 뿐이다. 그러면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대문이 전자식이 아니다. 열쇠를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만약 열쇠를 안에 놔두고 밖에 나가면 답도 없다. 그때는 열쇠 기술공을 불러야 하는데, 이때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노인분들은 열쇠 꾸러미를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 한국에서 살 때는 전자식 도어록으로 생활하다가 프랑스에 와서 열쇠를 늘 들고 다녀야 했다.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어느 순간 한국에 가서 전자식을 사용하자 다시 어색했다. 나도 열쇠 꾸러미가 있는데, 이것을 늘 몸에 지니고 다닌다. 특히 어린 아기가 있는 집은 열쇠 챙기기는 필수다. 실제 이곳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중에서 열쇠를 안에 놔두고 나와서 애를 먹었다는 후기가 잊을만하면 들려온다.


문이 잠기면 열쇠 수리공 부르는데 바로 오지도 않을뿐더러, 비용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경우는 100만 원을 불렀다는 곳도 있다. 상대가 말이 잘 안 되는 외국인이면 바가지 씌우기도 쉽다. 갓난아기가 집안에 있고, 열쇠는 안에 두고 나와서 들어갈 수 없으며, 열쇠 기술공은 연락도 안되고 오지도 않는다는 상상을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기본 100년 넘은 오스만 스타일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매우 좁다. 4명이 최대 정원이다. 좁고 낡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갑자기 문이 안 열리면 어떡하지 늘 긴장이다. 갇히면 사람도 바로 안 올 것 같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는 탈 때 마다 늘 긴장의 연속이다. 아니나 다를까, 파리에 살고 계신 브런치 작가님 중 한 분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경험을 쓰신 글을 읽었다. 갇힌 지 4시간 만에 기술공이 도착했다는 내용인데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프랑스는 이렇게 삶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전 방식을 쉽사리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 생활 전반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프랑스 살이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나는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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