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최종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깨끗함이었다. 인테리어를 새롭게 마친 새 집이었다. 하지만 이사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화장실 한쪽 벽면에 습기가 차면서 벽면 페인트가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급기야 벗겨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무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전셋집에서 나갈 때, 에따 데 리우(État des lieux)라고 해서, 처음 이사 왔을 때의 집 상태와 비교해서 이상이 없는지 아주 꼼꼼하고 세심하게 체크하는 절차가 있다. 별것 아닌 걸로 트집 잡는 경우도 있다. 언어가 잘 되지 않는 외국인일 경우, 바가지 씌우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다. 검사 업체는 이때다 싶어 사사건건 트집 잡아 건건이 가격을 매기기도 한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이전 집 에따 데 리우 때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벽에 페인트 칠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부분당 십만 원 정도 가격을 매겼다. 내가 직접 페인트 칠해도 될 것 같은 수준인데 여러 곳을 체크하더니 견적을 내버렸다. 아이가 다칠까 봐 욕조 유리문을 처음부터 떼어 놓았고, 이 사실을 업체에 미리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리문을 다시 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장실에 습기가 많이 차서 문을 교체해야 하는 데 100만 원 정도 가격을 불렀고, 프랑스어도 잘 못하는 아시아인 잘 걸렸다는 심보인지, 이참에 싹 레노베이션을 할 생각인지, 굳이 새로 손대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도 새로 해야 한다고 견적서를 들이 내밀었다.
에따 데 리우에만 약 300만 원 이상 비용을 지불했다. 이곳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이방인의 삶이란. 그때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 고, 어이없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 집에서 만큼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쓰자고 다짐을 했는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집에 문제가 생겼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아파트는 회사가 건물 전체를 사들여서 회사가 집주인이다. 업체를 보내서 확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리저리 체크하더니 다시 오겠단다. 그다음에는 다른 업체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더 고쳐야 할 곳은 없는지 물었다. 이 참에 손을 다 봐주나 싶어서 베란다에 금이 간 것, 마루에 틈이 벌어진 것 등 세세하게 사진 찍어 보냈다.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함흥차사다. 두 업체에 서 견적을 내기 위해 체크하러 왔었고, 그 후 한 달 동안 연락이 없어서 집주인에게 어떻게 돼가고 있냐고 물었다. 알아보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 후 4군데 정도에서 연락이 왔다. 집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약속도 잡지 않았는데, 갑자기 어느 날 아침 어떤 건장한 남자가 초인종을 누르더니 화장실 고치러 왔다고 연장을 가지고 왔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한 남성의 뜻하지 않은 출현에 무서웠지만, 약 세 달 동안 10군데와의 커뮤니케이션한 끝에 성사된 오늘의 성스러운 만남이었기에 얼른 들어오라고 했다.
각종 연장을 가지고 이곳저곳 체크하더니, 드릴로 화장실 한쪽 벽면을 뜯었다. 내부가 훤히 드러났다. 바로 맞은편이 주방 싱크대가 있는 곳인데 그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공사를 할 때 이쪽은 손을 보지 않은 것 같았다. 내부가 많이 낡았다. 노후화된 수도관을 손보지 않고 그냥 겉만 깨끗하게 공사를 했나 보다. 기술공은 내부 수도관이 노후화되어 물이 새고 있다고 말했다. 시멘트로 그곳을 막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하고는 시멘트가 마를 때까지 놔두면 된다고 했다. 벽면을 다시 덮은 작업은 이후에 다시 와서 하겠다고 하며 가버렸다. 일단 원인은 알았고, 문제점을 발견해서 그 부분을 막았으니 더 이상 물은 새지 않을 것이며, 벽면이 부풀어 올라서 벽 시멘트가 떨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겠지라며 한숨 돌렸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온다고 약속한 사람은 오지 않았다. 업체에 연락을 했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집주인한테 연락을 했는데도 어떠한 후속 조치도 없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나갔고, 화장실 벽면은 여전히 개복해서 배를 훤히 드러낸 상태다. 내부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안에서 바퀴벌레, 쥐가 갑자기 나오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벽면을 다 뜯어 놓고는 뒤처리를 하지 않고 가버리고, 온다고 해놓고는 깜깜무소식에 설상가상으로 세면대와 싱크대가 막히기 시작했다. 다른 욕실에서 늘 손을 씻고, 샤워를 하기 때문에 이곳 세면대는 우리 가족은 손도 안 댔는데, 세면대 물이 내려가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GMF라는 보험 회사에 연락을 20통 정도 했는데도 뾰족한 답이 없다. 상담원의 전화 연결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한국 콜센터 직원, 그것도 엄청나게 친절한 콜센터 상담 직원의 목소리가 그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울 수가 없다. 이곳 콜센터 직원은 목소리 한번 듣기도 힘들지만, 그 한 번의 기회를 겨우 잡았다 해도 빨리 말하고, 불친절하게 말해서 뭘 편안하게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평균적으로, 개인적으로 볼 때, 한국과 프랑스 상담 직원의 서비스는 하늘과 땅 차이다고 본다.
결국 오페라에 위치한 GMF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자기들은 잘 모르고,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한마디로 퇴자 맞았다. 그 후, 신랑과 함께 한 번 더 찾아갔다. 우리 집 수도관이 윗집 아랫집과 연결되어 있어서 너희 집만의 문제는 아니니,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집주인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집 만의 문제면 GMF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취지였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뾰족한 해답은 못 찾고 돌아왔다.
여전히 화장실 벽면은 열려있다. 이 집에서 나갈 때, 에따 데 리우 할 때, 우리 보고 돈 내라고만 안 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한테 돈을 내라고 덮어씌울 수도 있기 때문에 그전에 어떻게 해서든지 손을 보긴 봐야 하는데 집주인도 보험회사도 그 누구도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하고, 여전히 알아보겠다고만 했다. 액션은 없고, 말만 오고 갈 뿐이다. 한국이라면 이 정도 일은 수리 업체가 와서 하루 만에 뚝딱뚝딱 해결할 것 같은데 프랑스는 다들 이렇고 사는 건가.
그래서인지 프랑스는 DIY(Do It Yourself) 관련 제품이 많은 나라다. 이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Mr.Bricolage, Leroy Merlin, Castorama, Bricomarché 등 DIY 제품 판매하는 매장이 많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Leroy Merlin이 36%로 가장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그다음 Castorama(14%), 그다음 Brico Dépôt(13%)이 차지했다. 또한, 프랑스인의 61퍼센트 정도가 스스로 집에 고장 난 부분을 고친다고 답했다.
마레(Marais) 지구에 위치한 BHV 백화점 지하에 가면 DIY 제품들로 가득하다. 페인트 종류도 많고, 보도 못한 각종 신기한 공구들도 많다. 전에 살던 집에서 하수구가 막혀서 영 해결을 못하고 있자, 윗집 이웃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는데 기다란 용수철을 주면서 이걸로 하수구 안에 집어넣어서 이물질을 빼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한 신기하게 생긴 도구가 이곳 프랑스는 가정집마다 하나씩 구비해 두고 있다. 그만큼 하수구가 잘 막힌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기술공을 부르면 돈도 많이 들고 불편하니 각자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처럼 집을 새롭게 짓기보다는 100년, 200년 된 건물을 부수지 않고, 계속 고쳐쓰기 때문에 굵직굵직한 파이프관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점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현재 우리 집 맞은편에 살고 있는 이웃 이사를 왔는데 약 6개월 동안 뚝딱뚝딱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조금씩 천천히 하나씩 집주인 아저씨께서 각종 연장을 가지고 집안 구석구석을 스스로 고치고 계셨다. 이런 것들이 몸에 밴 듯 보였다. 기술공을 불러 봤자 느리고, 돈은 많이 요구하고, 속 시원하게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혼자 스스로 하는 것이 더 나은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