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준비되었습니다. (...) 더 공정하고 강한 프랑스를 건설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와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9월 22일, 프랑스 루앙에서 내년에 있을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안 이달고 파리 시장.
그녀는 스페인 이민자 출신이다. 1950년 후반, 스페인 경제가 좋지 않아서 두 딸을 데리고 1961년에 프랑스 리옹에 자리를 잡은 안 이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술공과 재봉사 직업을 통해 가족을 먹어 살렸다. 스페인 가난한 이민자가 프랑스 파리 첫 여성 시장이 되었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우진이 학교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필리핀 가족이 있는데, 이들도 이민을 왔다. 필리핀은 경제가 좋지 않을뿐더러 교육 여건도 좋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을 위해 프랑스로 어렵게 이민을 왔다. C는 우진이와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 C의 아버지는 에어비앤비 관리직을 맡고, 어머니는 청소일을 한다. 이번 여름 바캉스 때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C는 위로 언니가 있는데 10살 초등학생이다. 두 딸은 엄마 아빠가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집도 스튜디오에서 살다가 최근 방 1칸짜리로 옮겼단다. 그들은 만날 때면 늘 밝은 얼굴이다.
나는 필리핀 사람들에 대해 조금 안다. 결혼 전 직장 생활을 할 때, ASEAN 10개 국가(미얀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라오스, 인도네시아)와 일을 하였다. 10개국에 출장을 자주 갔었고, 현지 사람들을 만나 일을 했으며 업무 교류도 잦았다. 현지 국가 경제 및 사회 문화와 더불어 국민성을 조금 알 수 있었던 직장 생활이었다. 10개국 중에는 필리핀도 있다. 나라 사정이 좋지 않다. 지금은 더욱 악화되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독재적 정치 스타일로 인해 정치 사회도 불안정하다.
결혼 후, 홍콩에서 2년가량 살았다. 그곳은 헬퍼라는 제도가 있는데, 각 집마다 말 그대로 집안 온갖 일을 도와주는 필리핀 헬퍼들이 상주한다. 홍콩에서는 임신하면 헬퍼부터 알아본다. 헬퍼는 값싼 노동력으로 많은 일을 해주기 때문에 집집마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퍼들을 볼때면 그들의 고달픈 삶을 엿볼 수 있다. 홍콩 물가로는 얼마 안되는 월급도 필리핀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가족을 떠나 홀로 일하는 여성들이 많다.
업무상으로 알게 된 필리핀 동료들이 있다. 같이 일했던 가까운 한국인 동료는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필리핀 사람들을 내 집에서 일을 시키기가 뭔가 미안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헬퍼 없이 혼자 힘으로 아이를 돌보았다.
프랑스에 오니 여기도 필리핀 가정부가 많다. 홍콩과 다른 점은 상주하지는 않고, 아이들 학교를 픽업해서 집에서 몇 시간 봐주거나, 청소일을 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많다. 처음에는 C의 부모도 가정부 일을 하는 줄 알았다. 그들은 아이들 교육으로 인해 이곳까지 왔고, 일은 힘들지만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 부부가 아이들에게 화내지 않고, 서로 싸우지 않고, 삶이 힘들지만 그저 하루 하루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는 모습을 보이는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큰 교육이 된다. 아이들은 분명 알고 있다. 우리 부모가 자기들 때문에 이곳 먼 나라까지 왔고, 필리핀 보다 나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이곳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제2의 안 이달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비교적 능력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E는 집이 부유하다. 해외에도 별장을 가지고 있어서 방학 때마다 몇 달, 몇 주씩 자주 가서 쉬다 온다. 현재 사는 집도 크고 좋다. 초대받아 간 적이 있는데, 비싼 그림이 곳곳에 걸려있고, 방은 많으며, 곳곳에 cctv도 있었다. (중요한 물건이 있나 보다...) 방도 온통 핑크빛으로 공주같이 꾸몄다. 하나뿐인 딸을 위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며, 최근 생일잔치에서는 에이전시 및 케이터링 업체를 불러서 3시간 동안 초대받은 아이들이 놀았는데, 케이터링에 사용된 접시, 물병, 그릇 등 모든 도구 및 식기에 E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생일 콘셉트는 유니콘으로 정해서 유니콘 풍선, 유니콘 케이크, 유니콘 그릇 등 온통 핑크빛 유니콘이었다. 오늘은 E가 주인공.
우진이는 E와 올해도 같은 반인 데다 친하게 지내서 그 엄마와 자주 같이 다니는데, 나는 E와 엄마 F를 유심히 관찰한다. 엄마는 E에게 별것 아닌 것으로 혼을 낸다. 예를 들어 E가 모르고 F의 발을 밟았다. F는 짜증을 낸다. 왜 내 발을 밟냐며... 아이는 무안한 표정이다. 모르고 한 것인데 별것 아닌 것에 자주 화를 내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는 화내는 엄마가 싫을 테지만, 엄마는 내 목숨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니 엄마 말에 찍소리 못하고 있다.
어느 날은 F가 우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E가 말 많이 하더니?" 하고 묻는다.
우진이는 솔직하게 말한다. "조금만 말했어요."
엄마 표정도 안 좋아지고, 동시에 아이 표정도 안 좋아진다.
엄마는 아이에게 말을 많이 해야지... 하고 말한다.
아이는 뾰로통해지면서 뒤돌아선다.
"나 다시 학교에 갈래."
엄마는 화가 나서 다시 돌아오라고 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려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학교에 다시 가서 말 많이 하고 올게...라는 뜻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혼을 낼까 봐 미리 방어기제가 작동했고, 말 많이 하고 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의 의도와 마음은 보지 않은 채, 그저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화를 낸다. 그렇자 아이도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해서 갑자기 아빠를 찾는다. 엄마는 왜 이 상황에서 아빠를 찾냐며 더욱 다그친다. 아이는 급기야 울음을 터트린다. 어찌어찌해서 집으로 끌고 가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툭 하니 넘어진다. 기분이 안 좋고 에너지가 내려가다 보니, 평소에는 잘 걸어갈 수 있는 도로에서 그만 넘어지고 만다. 무릎이 까졌다. 엄마는 아이 다리를 보고서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걱정한다. 아이도 엄마도 모두 다 마이너스다.
E의 엄마가 E가 보는 앞에서 자기 친구에게 자신의 학교 생활에 대해 물어본 그때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물어보긴 왜 물어보는가? 아이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왜 아이 친구한테 물어보는가?
아이를 평가하면 안 된다. 아이를 비교하면 안 된다.
아이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겠지만, 그건 이따 기분이 좋을 때 직접 물어보면 된다. 아이가 대답하기 싫어하면 재차 물어서도 안된다. 아이 생활에 대해 자꾸 캐물어서는 안 된다.
그저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 말을 들어주고, 아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저 아이 눈을 쳐다보며 한번 빙그레 웃어주자. 자주 안아주자. 맛있는 음식과 화려한 생일잔치, 휘황찬란한 공주옷, 핑크빛 침대보다 엄마의 소박하지만 따뜻한 눈길과 포옹을 아이들은 더 원한다.
C는 가난하다. 필리핀 이민자다. 엄마 아빠가 노동자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많이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늘 아이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손을 잡고 걸어가며, 맡은 일을 묵묵히 하며 힘든 내색 없이 아이를 키운다.
E는 부유하다. 프랑스 현지인이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명품 옷을 입힌다. 하지만 아이를 자주 다그치고 혼을 내며, 엄하게 키우는 편이다.
이 두 아이의 미래가 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물론 미래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인생에는 많은 변수가 작용하고, 부모도 아이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기적은 만들어지고 있다. 내년 대선 주자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을 보며, C에게, 우리 미래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