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시스템 하나

유저가 외면한 이유

by 루니


주니어 기획자 시절, 제게 가장 큰 트라우마이자 동시에 가장 큰 배움이 된 시스템이 있습니다.

바로 블레이드 앤 소울의 '무기 성장 트리'입니다.

이 시스템은 게임 내 퀘스트 동선과 보상을 전면 개편해야 할 만큼 수개월 동안 막대한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오픈 후, 유저들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고 게임 지표는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담당 기획자들이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뼈아픈 실패였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지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콘텐츠 소모 속도가 너무 빠르니, 이를 늦추면서 반복 활용하는
시스템을 만들라."


이 지시는 게임의 초기 기조와 완전히 엇나간 것이었습니다.

블레이드 앤 소울은 본래 빠른 성장과 자유로운 플레이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부의 저항은 무력화되었고, 우리는 유저의 관점을 배제한 채 시스템 개발을 밀어붙여야 했습니다.

그 결과는 결국 유저에게 '고통'을 주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화면 캡처 2025-08-01 183401.jpg


복잡한 논리와 부재한 '욕망의 루프'

우리가 만든 시스템은 논리적으로는 완벽했습니다.

상위 던전 재료를 모아 중간 트리를 성장시키고, 다시 영웅 등급 재료로 강화하는 꼬리를 무는 구조.

여러 갈래의 성장 트리를 통한 '선택의 여지' 제공.

명확한 성장 경로와 목표 설정.

모든 것이 체계적이었지만, 이 시스템은 왜 실패했을까요?

문제점 1:
진입 장벽과 피로도 방대한 정보를 UI에 효율적으로 담아내지 못해 시스템은 복잡했고, 그에 비해 보상은 미흡했습니다.

문제점 2:
강제된 플레이 무엇보다 공격력의 핵심인 무기 성장을 강제하는 '필수' 시스템이었습니다. 유저들은 이 복잡한 구조를 따르지 않으면 좋은 무기를 가질 수 없다는 '강제된 동기'에 묶여 버렸습니다.

그 결과, 게임이 주던 본래의 재미와 자유도는 모두 사라졌고, 유저가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욕망의 설계'는 완전히 부재했습니다.


기획자에서 '관찰자'로 시선을 바꾸다

이 시스템의 실패 원인을 복기하며 저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기획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관찰자'의 시선으로 유저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화면 캡처 2025-08-01 183249.jpg 무기 트리 일부분 정리본

단순히 지표를 보고 정체 구간에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저는 '무엇을 주었는가'보다 '유저가 어떤 욕망을 건드리지 못해 외면했는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복잡하고 강제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자유로운 플레이를 통해 유저 스스로 재미를 찾던 그전의 구조야말로 유저의 욕망을 진정으로 충족시키고 있었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미 너무 거대한 시스템이었기에 되돌리기엔 늦었습니다.

결국 시스템의 피로도를 줄이고자 내놓은 해결책은 퀘스트 보상으로 무기 트리의 일부를 제공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부터도 이 시스템이 적용된 이후부터는 게임을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만큼, 정해진 루트에 끌려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개발자인 저조차 외면하게 된 이 시스템을 보며, 저는 한 가지 확고한 원칙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저의 외면은 시스템의 결함이다."

그것은 기능의 문제가 아닐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욕망의 흐름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보상이 아니라, 감정

완성도가 아니라, 연결감

기능이 아니라, 설득력

이것을 만들지 못하면, 그 어떤 시스템도 유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유저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느끼고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논리적 루프가 아닌, 감정적 흐름을 따라가는 '욕망의 루프'를 설계해야 합니다.

✅ 성공하는 시스템의 공통점:

자발적 선택: "해야 해서"가 아닌 "하고 싶어서" 움직입니다.

즉시 만족: 노력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쾌감을 줍니다.

성장 실감: 어제보다 나아진 자신을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듭니다.

사회적 인정: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인정받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 실패하는 시스템의 경고 신호

"유저들이 적응하겠지"라는 안일한 희망.

강제성을 '필요악'으로 합리화하는 태도.

오로지 지표 개선만을 목표로 하는 시각.

기억하세요. 논리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이 감정적으로는 최악일 수 있습니다.


"완벽한 논리가 항상 완벽한 경험을 만들지는 않는다."

유저의 외면은 '욕망'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놓치지 않는 설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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