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던 2023년이었지만 결국엔 탈이 나고 말았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요즘, 길고 긴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다.
그중의 하나가 글쓰기 모임이었다. 글을 쓰고 사람들과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기에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도 글쓰기 모임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과욕이었던 걸까. 잘해오던 글쓰기 모임이었지만 이번 모임은 쉽지 않았다.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았다. 모니터 앞을 한 없이 바라봤다. 마감시간은 다가왔지만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던 그날 밤, 힘겹게 한 자씩 타이핑을 시작했다.
결국 내 안에 갇혀있던 또 다른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 바로 글쓰기다. 그 글 속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솔직해질 수 있었다. 혼자서 끙끙 앓아왔던 고민과 두려움을 그날 밤 글로 풀어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겉으로 보는 거와 속은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그때의 그 글은 가식적이었던 스스로에 대한 고해성사였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또 다른 나를 글로 드러내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런 저라도 쓰담쓰담해주세요.
잘했다고 칭찬해 주세요.
생각해 보니 난 답정너였다.
그 글을 통해 상대방에게 원했던 말이 있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나는 좀 더 사람들에게 솔직해졌어야 했다. 그 글도 결국엔 진실되지 못했었나 보다.
글을 발표했을 때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니, 완전 정 반대의 대답을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 대답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나다. 그렇기에 뭐라 반응해야 할지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의 글이 다른 사람들에겐 이렇게도 보일 수가 있겠구나. 당혹감을 뒤로한 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쓴 거지?
생각해 보면 내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별 뜻 없이 지나갔을 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지금 나에게 고슴도치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뾰족하게 가시를 드러내고 있지만 사실은 조심조심 쓰다듬어 주길 바라는 고슴도치 한 마리 같다고. 사실이었다. 그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싶었던 나는 그 한 마디에 아무 말 못 하고 한 없이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이후 나는 한동안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나 자신을 어느 때보다도 정직하게 드러낸 글에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으니 자신감이 상실되었다고나 할까. 공감받고 싶어 쓴 글에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제 나는 무엇을 써야 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글은 또 다른 나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나를 세상 앞에 내보일 준비가 아직 되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뾰족한 고슴도치 한 마리를 어떻게 잘 키워야 할까? 좀 더 솔직하게 뾰족하게 나를 드러내도 괜찮은 걸까? 누가 뭐라고 하든지 말이다.
아직도 나는 글쓰기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