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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Nov 29. 2023

내 인생에 친절 한 스푼

그거 한 스푼 넣는다고 큰일 나지 않아요

최근 몇 년간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특히 최근 1년 간 원치 않았던 일들을 떠맡게 되면서 결심한 게 있다.


나 이제 좀 이기적으로 살아 보련다. 


남들을 위해 시간 쓰고 돈 쓰고 기력 쓰지 말고!! 그 시간과 기력 돈!! 나를 위해 쓰자!!!라고,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왜 내가 그때 나서서 지금 이런 곤경에 처해 있나. 이런 내 성격이 싫어서 나도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안 돼요~ 못해요~"를 연습해 보자고 다짐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래간만에 고향을 다녀왔다. 


실로 오래간만에 1n 년 동안 알고 지낸 동생을 만났다. 내가 흔히 말하던 '덕질'을 같이 했던 동생. 지금은 같은 덕질을 하지 않지만 그때의 인연으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었다. 코로나와 육아 등으로 도통 만날 시간을 낼 수 없었기에 어렵사리 시간을 냈다. 오래간만에 떡볶이를 먹으며 잠시 20대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언니, 기억나? 언니가 나 퇴근하던 길에 언니집에 들러서 잠시 삼겹살 먹고 가라고 했던 그날 말이야.


우리 집은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모임도 우리 집에서 할 때가 많았고 집 근처에 있는 고깃집에서 친구들을 같이 불러서 먹고 놀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친구들이 좋았고 우리 집을 아지트처럼 써도 부모님은 이해해 주셨다. 아파트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 비슷하게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이라 밖에서 놀고먹는 것도 부담스러웠으니 집으로 자주 초대해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함께 한 수많은 친구들 중에 단 두 명만이 내 곁에 아직까지 남아있다. 오늘 만난 이 동생을 포함해서. 




잠시 그때를 회상했다. 나는 정확히 그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았다. 항상 늘 누군가를 불렀고, 무언가를 대접했다. 그게 나의 삶의 일부였다.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이 좋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만들고픈 나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생은 그때의 그 전화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던 길에 받은 친한 언니의 전화,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들려 맛있는 걸 먹고 가라는 배려,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 망설이며 식당의 문을 열었을 때 누구보다 자신을 환하게 맞이해 주던 나. 


와 그게 도대체 몇 년 전 일이야? 17년? 기억도 안 나네 


나는 기억 속에 희미해진 그날의 기억을... 친구는 나의 대화 하나하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친절과 환대가 친구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흔히 말하던 퍼주던 인생을 살았다. 그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어도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최대한 그들을 원망해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간 자리를 그리워하며 흐르던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에는 더 이상은 퍼주지 않으리라, 나도 좀 못되게 살아보련다! 를 외쳐봤다.(그렇다고 내가 무슨 성인군자같이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날, 친구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십몇 년간 남을 수 있는 친절이라면, 베풀어봐도 나쁘지 않겠는데?라는 생각. 말 한마디가 천냥빛을 갚는다는데. 이왕 사는 거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말만 하며 친절하게 사는 게 그렇게 손해 보는 인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도 떠나갈 사람은 떠나가니까. 


내 옆에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한 거 아닐까? 


오늘도 내 인생에 친절 한 스푼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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